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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도약하느냐 주저앉느냐, 재정에 답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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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신해룡 중앙대 행정대학원 교수·전 국회예산정책처장

신해룡 중앙대 행정대학원 교수·전 국회예산정책처장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원동력은 한국인의 뛰어난 자질과 향상심(向上心), 그리고 잘살아 보려는 의지에서 찾아야 하겠지만, 재정의 역할도 컸던 것이 사실이다. 예산은 국가의 존립에 필요한 재화·서비스를 공급하는 재원이며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재정 중독자, 인기영합 행태 위험 #‘재정 근육’ 키워서 돌파구 찾아야

그런데 요즘엔 현안이 터질 때마다 재정을 손쉽게 끌어다 해결하려는 ‘재정 중독자’(Fiscal alcoholist)들의 거리낌 없는 인기 영합 행태로 재정 본연의 역할이 크게 흔들리고 있어 걱정이다. 재난 지원금 지급을 둘러싸고 무원칙과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가덕도 공항 등 대형 사업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예타) 면제도 논란이다.

몇천억 원짜리 국책 사업이 정치적 입김 때문에 몇조 원짜리로 둔갑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도입한 예타 제도는 1999년부터 2020년까지 타당성 확보율이 63.5%에 그쳤다. 여기에다 ‘국가 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을 포함한 예타 면제 사업의 총사업비가 2015년 1조 4000억원에서 2020년 30조원으로 급증해 세금 탕진이 우려된다.

예타 제도의 투명성과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예타 면제가 정부와 정치권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졸속으로 운용될 소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의 잘못된 결정으로 생기는 부작용은 두고두고 국민의 삶에 광범위한 해악을 끼치고 정부 사업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될 것이다.

예산은 공공경제의 중추신경이다. 사람 몸에서 중추신경이 손상되면 뇌사에 빠질 수도 있듯이 국가가 ‘재정 질환’에 걸리게 되면 종국에는 재정 파탄을 불러올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빠듯한 재정 사정으로 빚까지 얻어서(국가채무 965조 9000억원) 겨우 꾸려가는 나라 곳간은 이래저래 구멍이 날 수밖에 없다. 미래세대의 재원을 미리 당겨쓰는 ‘국가 부채 주도 성장’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국가 부채가 걱정돼 동이 틀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나랏빚의 위중함을 곱씹게 한다.

코로나19 조기 극복을 위해 재정 건전성의 훼손을 어느 정도 용인하면서 확장적 재정 정책을 운용하고 있지만, 적자재정 기조를 이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잦은 추경으로 땜질하는 정책 처방은 해법이 아니다. 새로운 정책 환경에 적용 가능한 ‘재정 근육’(Fiscal muscle)을 키우고 강화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아보자. 재정 근육이 튼튼해지면 코로나 이후에 지속가능한 재정 여력을 확보할 수 있고, 경제 활력의 복원을 도모할 수 있으며, 미래 성장동력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첫째, 분야별 재원 배분의 거시 경제적 효과 분석을 선행하고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재원을 배분해야 한다. 둘째, 개별 사업의 미시적 효과 분석을 토대로 예산 편성의 타당성 및 규모의 적정성을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해야 한다. 셋째, 불요불급한 지출로 인한 낭비 요인을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법가 사상가 상앙(商鞅)은 “나라가 부유한데도 가난한 살림처럼 아끼고 줄여 쓰면 더욱 부유해지고, 더욱 부유해지면 강해진다. 나라가 가난한데도 부자 살림처럼 흥청망청 쓰면 더욱 가난해지고, 더욱 가난해지면 약해진다”고 준엄하게 경고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국가 경쟁력을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 번영을 위해 더 나아가려는 야망’이라 정의했다. 올바른 재정 개혁만이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드높이고 지속적인 풍요와 번영을 담보할 수 있다. 도약하느냐 주저앉느냐, 그것은 재정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재정은 경제 안전판이자 경제 방파제다. 재정에 답이 있다.

신해룡 중앙대 행정대학원 교수·전 국회예산정책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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