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마음 읽기

꽃이 피니 마음 또한 웃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영원불멸의 사랑’ 꽃말을 지닌 산수유 큰 가지를 과감하게 꽂고 주위에 고결한 수선화를 곁들이니, 어딘지 모르게 기품 있고 그윽하다. 심지어 꽂는 이의 마음마저 그리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꽃을 불단에 올릴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데,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각별한 우아함에 마음까지 설렌다. 안 되겠다. 원중랑(袁中郞)의 ‘병사(甁史)’라도 찾아봐야지.

햇살 받은 꽃의 운명처럼 #환하게 밝아지는 선거가 되길 #꽃은 차와 함께인 게 으뜸이라네

원중랑의 설에 따르면 납매(12월 매화)에는 수선화가 어울린다고 적혀있다. 과연 그러하리라. 상상만으로도 그림이 눈에 선하다. 읽다 보니 여기 눈에 띄는 구절이 있다. “매화는 세상을 버린 학자에게, 해당화는 아름다운 손님에게, 모란은 성장한 젊은 처녀에게, 석류는 아름다운 여종에게, 물푸레나무는 영리한 애들에게, 연은 요염한 첩에게, 국화는 고인을 사모하는 고명지사에게, 12월의 매화는 파리한 수도승에게….”

파리한 수도승에게 주는 매화라니, 어찌 저리도 승려의 속내를 잘 알았을까. 밋밋한 일상에 매화 한 가지만 있어도 마음이 흡족해지고 환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처럼 요즘 나는 꽃꽂이에 푹 빠져있다. 화초를 좋아하는 데다, 산천이 꽃 대궐로 변하여도 맘 편히 움직이질 못하니, 불단에 올리는 꽃꽂이와 손바닥만 한 화단 가꾸기로 봄맞이를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절 화단은 이미 백화만발이다.

오늘 아침도 하염없이 꽃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는데, 한 어른스님으로부터 아침 문자가 왔다. ‘운명은 좋은데 마음씨가 사악하면 복덕이 재앙으로 바뀌고, 마음씨는 선량한데 운명이 나쁘면 재앙이 바뀌어 복덕이 된다’는 글이다. 마음씨는 운명을 순탄하게 변화시킬 수 있으니, 현명하고 어질게 쓰라는 말씀이셨다.

글을 꽃 앞에서 확인해서인지, 햇살 받은 꽃과 내 운명에 대한 회상이 묘하게 겹친다. 절집에서의 시작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지만, 지금은 고만 평온하게 사는 것처럼 이 꽃도 그러하리라. 내 손에 한 번 더 잘린 꽃의 운명은 비운일 테지만, 결국엔 불단을 장엄하니 어쩌면 좋은 운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는지.

꽃 타령을 하다 달력을 보니, 어느덧 선거 날짜가 다가왔다. 민주주의에도 꽃이 있어 그것을 ‘선거’라고 하던데, 글쎄… 과연 그러한지는 모르겠다. 한 번도 꽃 같은 선거를 본 적이 없고, 꽃처럼 환하게 민주사회가 밝아지는 선거도 해본 적이 없는 듯해서다. 고작해야 좋은 추억이라곤 운문사 강원시절, 트럭 뒤에 스님들과 함께 올라타고 인근 학교에 투표하러 갔던 기억 정도랄까. 물론 누굴 찍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귀 기울여 살짝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눈치껏 찍었다. 유권자가 이리도 어리석으니, 선거 후가 맘에 들지 않아도 쉬이 비난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엔 코로나19로 인해 거리두기, 체온측정, 1회용 비닐장갑까지 동원하여 투표하기가 엄청 번거로웠는데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해서 전 세계가 놀랐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하긴 나도 그 대열에 서서 까다롭게 꽃을 피워봤다. 하지만 그 꽃은 오래지 않아 시들어버린 느낌이다. 꽃이 지니 마음도 해처럼 기운다.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사람, 그러니까 정치(政治)할 사람들은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 갈등과 이해도 조정하면서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역할까지 해야 할 텐데, 더 훈련이 필요해 보이는 모습이 눈에 띈다. 뭐 나도 딱히 말할 처지는 못 되지만, 유권자라는 이유로 한마디 거들어본다.

예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라는 책을 보며 개미가 살아가는 방식이 인간보다 더 이성적이고 훈련이 잘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작가가 인간에 대해서는 미시적으로 쓴데 반해, 개미는 조직구성과 그 체계까지 매우 거시적인 방식으로 기술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개미만도 못한 인간일 리 없겠지만, 개미사회가 혼돈의 시대를 겪는 어느 국가에 비해서 안정된 형태를 가지고 있음은 분명한 듯하다.

선거에 나온 사람들은 서로 비방을 하거나 자신이 뭔가 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공약 또한 내 귀엔 자신감을 넘어 자랑처럼 들린다.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좋으나, 그렇다면 자랑해도 좋도록 해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싶다. 노자가 말했다. “뛰어난 용사는 성급하게 전진하지 않고, 잘 싸우는 병사는 노여워하지 않는다. 훌륭한 정복자는 남의 병력을 빌지 않고도 승리하며, 부하를 잘 다스리는 자는 자신을 낮출 줄 안다”고.

앗, 꽃 얘기가 너무 멀리 왔구나. 꽃은 차를 마시면서 감상하는 것이 으뜸이라 하더이다.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