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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정책금융 지원 대신 또 금융권 팔 비트는 금융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은행의 건전성 관리의 근간인 신용평가마저 금융당국이 개입하려 합니까.”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은 위원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에 대해 "불가피하게 신용등급이 하락한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한도, 금리 등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뉴스1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은 위원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에 대해 "불가피하게 신용등급이 하락한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한도, 금리 등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뉴스1

금융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실적이 악화한 중소기업에 대출금을 회수하거나 대출금리를 급격히 올리지 않도록 신용평가를 완화하는 방법을 추진하자 은행권에서 터져 나온 불만이다.

"신용등급 하락 중기, 금리 불이익 최소화" #은행 건전성 관리 근간 신용평가 개입 논란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9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서 “중소기업계에서 작년 매출 감소분이 반영됨에 따라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금리상승 등 대출조건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는 이러한 우려를 덜어드릴 수 있도록 금융권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은 위원장이 밝힌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신용평가 과정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실적 악화를 반영하고, 신용등급 하락 시에도 대출한도나 금리 반영을 최소화하는 것 등이다. 금융당국은 관련 내용을 놓고 시중 은행들과 협의를 시작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용평가에는 정성적 요소도 같이 보게 돼 있다”며 “코로나19로 매출이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향후 회복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평가한다면 이를 정성적 부분에서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코로나19 금융지원을 위해 중소기업에 내준 대출에 부실이 발생해도 이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비조치 의견서'도 내줄 방침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돕자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지난해 매출 감소분이 반영될 경우 신용등급이 낮아지고, 대출 금리 상승이나 한도 축소 등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은행들도 그동안 대출 만기 유예나 이자 상환 유예 등 금융당국이 낸 각종 금융지원책을 수용해왔다. 금융권이 만기 연장 등 금융지원 총액은 130조원을 넘는다.

하지만 이번 신용평가에 대해서는 “지나친 조치”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각 은행은 매년 4월 중 신용평가를 해 대출 금리와 한도를 정한다. 정량적 요소와 정성적 요소를 모두 반영하지만, 정량적 요소의 비중이 크다. 정성적 요소의 경우 심사자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많아서다.

은행권 관계자는 "신용평가는 은행의 건전성 관리를 위해 가장 선행되는 중요한 작업인 만큼 최대한 보수적으로 정량적 지표를 통해 하는 게 원칙"이라며 "은 위원장의 주문은 결국 이런 원칙을 깨고 신용등급이 떨어질 곳도 알아서 잘 챙기라는 의미 아니겠냐"고 말했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정책금융지원 등 다른 수단을 놓고, 민간 금융회사의 팔을 비트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난해 5월 조성한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원은 까다로운 지원요건 등으로 지원액이 6000여억원 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정치권에서 관련 발언이 나온 뒤 금융위가 총대를 메고 은행들에 이자상환 유예 등 각종 조치를 연장하도록 하는 게 매번 반복되고 있다”며 “이럴 거면 국회 논의를 거쳐 정식으로 세금을 더 내라고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실제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평가 완화 등은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주장한 내용이다. “금융당국은 내년도 신용등급 심사에 앞서 중소기업의 신용등급 평가 개선 요청을 충분히 경청하고 합리적으로 평가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권에서는 ‘관치 금융’을 넘어 ‘정치 금융’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요즘은 금융당국의 개입이 넘치다 보니 관치 금융을 넘어 정치 금융화되고 있다”며 “민심을 의식해 각종 금융지원책을 남발하는 탓에 좀비기업이 계속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향후 금융부실이 발생하면 더 큰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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