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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들어가자 권력감시 잃었다…'유·시·민'의 몰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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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전직 청와대 정책실장. 세 명 모두 참여연대 출신이다. 왼쪽부터 김수현·장하성·김상조 전 정책실장. [중앙포토,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전직 청와대 정책실장. 세 명 모두 참여연대 출신이다. 왼쪽부터 김수현·장하성·김상조 전 정책실장. [중앙포토, 연합뉴스]

“이제 더 이상 참여연대 출신의 막장 정치인이나 관료가 뉴스에 도배되는 쇼는 더는 보기 힘들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전격 경질되기 전날인 지난 28일 밤 참여연대 회원 게시판에 올라온 ‘참여연대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란 제목의 글 일부다. 김 전 실장이 ‘임대차 3법’이 시행되기 이틀 전인 지난해 7월 29일 본인 소유의 서울 청담동 아파트 전세 계약을 갱신하면서 전세보증금을 14.1% 올렸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였다. 그가 전·월세 상한제에서 설정한 상한 폭 5%를 크게 웃도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여론은 “내로남불”이라며 들끓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이튿날인 29일 김 전 실장을 즉시 교체했다. 정치권에서 김 전 실장의 사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현 정부 인사 기조의 실패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 정치권에는 ‘유·시·민(유명 대학, 시민단체, 민주당)’이란 신조어가 생겼다. 시민단체 출신의 명망가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참여연대 출신은 청와대와 정부를 아우르는 알짜 인맥으로 통했다.

1기 청와대만 해도 장하성(경제민주화위원장) 전 정책실장, 조국(사법감시센터 소장) 전 민정수석, 김수현(정책위 부위원장) 전 사회수석 등 청와대 수석비서관(차관급) 이상이 3명이었다. 이들에겐 나름의 공(功)이 있겠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과(過)도 많이 알려져 있다.

현재 주중국 대사로 있는 장하성 전 실장의 경우 “소득 주도 성장을 추진하다가 양극화를 더 심하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 강남 집값이 치솟던 2018년 9월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거기 삶의 터전이 있지도 않다. 저도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지난해 10월에는 법인 카드로 서울 강남구 유흥업소에서 7000만원을 결제해 교육부가 중징계를 요구한 고려대 교수 12명 중에 그가 포함돼 고려대 재학생을 중심으로 비판이 쏟아졌다.

2018년 1월 당시 청와대의 장하성(왼쪽) 정책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1월 당시 청와대의 장하성(왼쪽) 정책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조국 전 수석은 2019년 9월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지만 35일 만에 사퇴했고, 현재 각종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김수현 전 수석의 경우 정책실장으로 승진했지만 임명 7개월 만인 2019년 6월 물러났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설계자로 통하는 그가 보유한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과천자이(옛 과천 주공 6단지)를 둘러싸고 온라인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 정부가 재건축을 억제하는 정책을 폈는데, 그의 아파트는 비교적 무난하게 재건축이 진행된 데 대한 수군거림이 있었다.

이번에 경질된 김상조 전 실장의 경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을 지냈고, 현 정부에선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냈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전직 정책실장 3명(장하성·김수현·김상조) 모두 참여연대 출신이었던 것이다.

전직 청와대 정책실장 3명 모두 참여연대 출신 

수석급 외에도 비서관급으로는 황덕순(국제인권센터 실행위원) 전 고용노동비서관, 김성진(경제금융센터 소장) 전 사회혁신비서관, 이진석(사회복지위 실행위원) 전 사회정책비서관 등 3명이 초기 청와대에 포진했었다. 행정관으로 시작해 청와대를 잠시 떠났다가 현재 의전비서관인 탁현민 비서관도 참여연대 문화사업국 간사 이력이 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 의전 등에서 역량을 보여줬지만 과거 자신이 쓴 책에서 여성을 비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여권 내에서도 사퇴 요구가 있었다.

김상조 전 실장 외에도 이효성(자문위원) 전 방송통신위원장, 정현백(공동대표) 전 여성가족부 장관, 박은정(공동대표) 전 국민권익위원장 등 행정부에도 참여연대 출신은 여럿 중용이 됐었다.

2018년 3월 임명됐던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도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함께 1994년 참여연대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한 뒤 18년 간 사무처장, 정책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19대 국회의원 시절 외유성 해외 출장 논란이 빚어지고,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기 직전 정치자금 5000만원을 이른바 ‘셀프 후원’한 데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위법으로 판단하자 임명 17일 만에 사퇴했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참여연대 설립부터 참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10년 넘게 활동한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시민단체 인사가 정부에 들어가면 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며 “정부와 비정부기구가 합쳐지면 ‘슈퍼 정부’가 탄생해 왜곡된 현상이 발생하고 결국 손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까지 한국의 시민단체는 정치적인 성격이 강하다”며 “선진국의 경우 시민단체 구성원이 정부에 들어가는 사례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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