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정애 논설위원이 간다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투표가 됐다"

중앙일보

입력 2021.03.3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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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현장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가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 더플러스 스튜디오에서 채널A 주관으로 열린 후보 단일화 TV토론회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오종택 기자

현장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가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 더플러스 스튜디오에서 채널A 주관으로 열린 후보 단일화 TV토론회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오종택 기자

‘그래 그래 맞아 볼 때마다 미쳐/너무 좋은 파트너야 그대~’

[한국정치의 감초가 돼버린 여론조사]
오세훈-안철수 단일화에서도 위력
"0.01% 차에도 승복" 다짐할 정도
인지도 높은 사람에게 유리한 폐단
'정당이 조사기관 외주업체냐" 지적

봄비가 흩날리던 27일 오후 5시 서울 홍대 앞 국민의힘 유세차에선 트로트 ‘파트너’가 흘러나왔다. 머지않아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유세차에 올랐다. 둘 다 흰색 바람막이 점퍼와 우비 차림이었다. 안 대표가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7분여 오 후보 지지를 호소하던 그는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홍대 앞 자영업 사장님들, 이번에 재난지원금 준다고 한다. 꼭 받아라. 문재인 정부 돈이 아니라 여러분이 낸 세금이다. 그러니까 재난지원금 받고 우리 2번 오세훈 후보 꼭 찍어 달라.”

곧 오 후보의 선창으로 “안철수” 연호가 이어졌다. 유세를 지켜보던 20대 남녀에게 말 걸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신기하다. 누구에게 투표할 지 마음을 정했다.”

오세훈·안철수 단일화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한국 정치에서 익숙한 장면일 수 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부터지만 말이 나온 건 1987년 YS(김영삼)·DJ(김대중) 단일화 논의 때부터였다. 한국 여론조사업계의 대부인 박무익 한국갤럽 회장은 생전에 “당시 홍사덕 의원이 아마도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DJ가 거부했다”(『조사인으로 살다』)라고 기록했다. 외양상 승복(承服)도,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승복연설 이래 당연지사가 됐다. 이번에 차이가 있다면, 오 후보와 안 대표는 지금껏 갈등을 노출하지 않고 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1. “누가 이길지 모른다는 결과였다”

어찌 보면 관행이 됐지만 불편한 현실이 숨어있다. 여론조사의 과도한 영향력이다. “선거전략 수립 및 정당의 공직 후보 선출을 위한 평가 자료를 넘어 후보를 결정하는 경선 수단으로, 정당 간 후보 단일화의 기제로까지 활용된다”(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 전문위원의 논문)는 점이다. 바로 자발적 참여 의사를 가진 유권자들을 배제하고 정치적 조정과 타협으로 이뤄야 할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외부 기제(조사기관)에 맡기는 ‘정치과정의 외주화’ 또는 ‘외주 민주주의(outsourcing democracy)’ 현상이다.

이번에 오·안 후보는 0.01% 차이로 갈리더라도 조건 없이 승복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이 “여론조사란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고 보는 접근법이다.

여론 조사상 지지율이 단일한 숫자로 제시되지만 실제론 범위일 수 있어서다. 예를 들어 지지율이 50%인데 1000명 조사(‘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3%포인트’)라면 실제론 지지율이 47~53%에 들 확률이 95%란 의미다. 조사업계에선 “표본오차보다 훨씬 작은 변동에 대한 의미 부여는 해석이 아니라 허구(虛構)”라고 말한다. 1, 2%포인트 차이는 통계학적으론 의미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박빙의 승부로 알려진 2002년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에선 그래도 노 전 대통령이 앞섰다고 말할 근거가 있다. 근소하게나마 오차 범위 밖이었기 때문이다. 2000명 조사(표본오차 ±2.2%포인트)였는데 노 후보가 4.6%포인트 우위였다.

이번엔 두 개의 조사기관이 각각 ‘어느 후보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나’(적합도)  또는 ‘경쟁력 있나’(경쟁력)를 800명씩에, 모두 3200명에게 물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정확한 수치를 밝히긴 어렵지만 오 후보가 모두 오차범위 밖으로 앞선 건 아니었다. 조사를 잘 아는 정치권 인사는 “막판 설문에 오세훈·안철수·모름 외에 ‘지지 후보 없다’는 답변도 추가하기로 했다. 이게 오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청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여론 조사상으론 누가 이길지 모른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두 후보 간 합의한 룰에 따라 승부를 가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론조사가 아닌 여론투표”라고 비판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서울 유권자 842만 명 중 3200명이 조사에 응한 게 사실상 투표한 효과를 낳았다는 취지다.

#2. “정당이 출마자 정하는 이벤트 회사냐”

사실 여론조사가 본격 도입된 건 2000년대다. 경선이 일반화되면서 당심과 민심의 괴리 현상이 두드러지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비율로 반영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곤 했다. 그러다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정당 사상 최초로 ‘국민 전체의 지지를 받는 후보’란 명분을 내세워 당원 투표 조항을 아예 없앴다. 정당 정치의 원칙에서 보면 논란이 있는 결정이었다.

여론조사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그늘도 짙어졌다. 여론조사가 본질적으론 인지도 싸움인 면이 있어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말했다.

“(여론조사 강세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등장인물들이 (박영선·오세훈·안철수 등으로) 10년 전과 판이 똑같아진 이유일 수 있다. 정치의 전문성보다 대중에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 유리해졌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 어려워졌다. 기초의회라든가 광역의회를 거쳐 착실하게 정치인으로 성장했다거나 젊은 사람들이 부각되기 힘들어졌다. 셀레브리티 말고는 명함 내기도 어렵다.”

그는 이어 “도대체 당이 뭐하기 위해 있나. 당원들은 왜 있나. 당이 출마자를 선정해주는 이벤트 회사처럼 됐다”고 꼬집었다.

실제 여론조사가 공정해 보이지만 신인들에겐 진입 장벽이 되고 있다는 증거가 적지 않다. 설령 50%의 가산점을 준들 지지율 자체가 낮기 때문에 현역을 제치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을 지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신인들은) 가산점을 받았더라도 ‘멋있게’ 떨어지고 만다. (가산점제는) 당의정을 입힌 약이라고 할 수 있다. 당의정이 벗겨지는 순간 신인들은 쓰디쓴 맛을 본다”(『총선 참패와 생각나는 사람들』)고 적었다.

여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7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결과발표 후 함께 경쟁했던 김진애 열린민주당 후보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여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7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결과발표 후 함께 경쟁했던 김진애 열린민주당 후보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3. “수치보단 추세를 보라”

그렇더라도 당분간 이런 흐름을 되돌리긴 어려울 것이다. 또 속된 말로 ‘지지율이 깡패’인 현실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4·7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3·9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가 쏟아진다. 전문가들은 “수치 자체보다, 추세를 보라”고 조언한다. 또 조사방법론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근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대로 이재명 경기지사와 혼조세인 조사와 30%대로 독주하는 조사가 동시에 나오는데 전자는 전화면접 조사, 후자는 자동응답 조사(ARS)가 많다는 걸 아는 식이다.

정치 관심도에 따른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정치 관심도에 따른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이와 관련, 장덕현 한국갤럽 연구위원은 최근 ‘정치 관심도와 여론조사’란 리포트에서 ^전화면접조사의 정치 고관심층의 응답과 ARS의 응답이 유사하며 ARS 조사는 정치 고관심층의 생각을 과다 반영한다고 볼 수 있고 ^투표율이 높은 선거에선 정치 고관심층의 영향력이 작아지므로 약관심층·비관심층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와 통화했다.

조사마다 너무 달라서 혼란스럽다.
“추세를 봐야 한다. 여론조사는 투표할 사람도, 투표하지 않을 사람도 대상이다. 투표율은 선거마다, 선거구·연령대마다 다르다. 또 어떤 성향의 사람이 더 많이 하느냐의 문제도 있다. 유보층의 3분의 1이 중도고, 3분의 1은 대략 성향이 있지만 밝히지 않는 사람들이다. 중도층이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여론조사를 바로 투표로 환산할 수 없다. 누가 조금 앞서 나왔다고 결과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건 변수가 너무 많은 얘기다.”
유보층은 얼마나 되나.
“대략 마지막까지 15~20%로 보인다. 끝까지도 응답 안 하는 사람이 선거 전날 조사에서도 10% 정도 나온다. 지금은 1주일 전이니 더 많을 것이다. 이들이 반반으로 갈라질 수 있고 여로도 야로도 갈 수 있다. 이들의 선택은 모르는 것이다.”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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