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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경의선 숲길 본뜬 철도 지하화, 구상은 좋지만 문제는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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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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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숲길 가좌역 구간은 가을이면 은행나무가 한껏 멋을 부린다. [사진 서울시, 중앙포토]

경의선 숲길 가좌역 구간은 가을이면 은행나무가 한껏 멋을 부린다. [사진 서울시, 중앙포토]

경의선 숲길. 경의중앙선 가좌역(서울 서대문구)에서 용산문화체육센터(용산구) 사이 6.3㎞ 구간에 조성된 도심 공원이다. 산책로와 휴식공간이 잘 갖춰져 있는 데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고, 가을엔 은행나무가 한껏 멋을 부리는 구간도 있어 주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마포구 연남동 구간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명소로 탈바꿈해 ‘연트럴파크’로도 불린다.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따온 별칭이다. 공덕역과 홍대입구역에는 각종 식당과 상점·호텔까지 갖춘 복합상업시설도 들어섰다.

지하로 철도 넣고 지상 공원 조성 #낙후된 지역 살리고 명소 탈바꿈 #곳곳서 철도 지하화와 개발 추진 #특성 맞는 재원조달 방식이 과제

경의선 숲길은 원래 용산역을 오가는 화물열차가 다니던 철길이었다. 거대한 성벽을 연상시키는 철도 제방(철둑)이 길게 늘어서 지역을 단절시켰고, 개발에도 제약이 많은 탓에 주변은 대부분 낙후된 동네였다.

2004년 문산~용산 복선전철화사업이 추진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해당 철도구간이 지하로 들어갔고, 지상구간을 무상으로 받은 서울시가 2011년부터 457억원을 투입해 공원화를 진행했다. 그 결과 끊어졌던 동네가 이어지고, 사람이 모이면서 생기가 넘치는 명소가 됐다. 철도 지하화가 불러온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연남동의 경의선 숲길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 ‘연트럴 파크’로도 불린다. 아래 도면은 서울시가 구상 중인 서울역 철도 지하화 방안. [사진 서울시, 중앙포토]

연남동의 경의선 숲길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 ‘연트럴 파크’로도 불린다. 아래 도면은 서울시가 구상 중인 서울역 철도 지하화 방안. [사진 서울시, 중앙포토]

이러한 성공 사례에 자극받아선지 철도 지하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러 지역에서 이어지고 있다. 서울·부산·대구·인천 등이 대표적이다. 시장 보궐선거가 진행 중인 서울과 부산에서는 공약으로도 등장했다. 서울은 서울역~용산역 철도 지하화가 주요 이슈다. 서울역과 용산역 사이를 오가는 KTX와 일반열차·전철 선로를 모두 지하로 넣고, 그 위를 문화시설과 업무시설·주거단지 등으로 개발하자는 내용이다. 부산은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는 구포~부산진 구간의 지하화와 지상부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관련 연구용역 결과가 6월쯤 나올 예정이다.

대구는 KTX 통과구간을 지하화해 지역단절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천은 구로~인천 사이 국철 구간의 지하화를 요구 중이다. 앞서 2013년에는 경기 안양·군포시와 서울 구로·금천·동작·영등포·용산구 등 7개 지자체가 공동으로 경부선 서울역~당정(군포시) 구간의 지하화를 추진했으나 막대한 사업비 부담을 우려한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별 진척을 보지 못했다. 당시 노량진~당정 구간 지하화에만 16조원 넘게 필요한 것으로 추정됐다.

서울역 일대 철도 지하화 어떻게 하나 그래픽 이미지.

서울역 일대 철도 지하화 어떻게 하나 그래픽 이미지.

전문가들도 철도 지하화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고준호 한양대 교수는 “철도로 인해 단절됐던 도심 공간의 통합과 쾌적한 도시환경 조성, 그리고 가치 높은 토지의 효율적 활용을 생각하면 철도 지하화는 매우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정진혁 연세대 교수도 “철도 시설물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며 “철도 시설로 인한 지역 분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하화가 긍정적인 방안”이라고 했다.

문제는 철도 지하화에 투입될 재원 조달이다. 사업 규모에 따라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조원까지 소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는 상당 부분을 정부의 재정지원에 기대려 한다. 하지만 정부는 수익자 부담원칙을 내세우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현행 ‘철도의 건설 및 철도시설 유지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노선을 이전(지하화 포함)하는 경우 원인자(지자체 등)가 관련 비용을 전액 부담하게 돼 있다. 이 규정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철도 지하화 사업비를 자체 충당할 수 있는 지자체는 거의 없어 보인다.

경의선 숲길은 단순히 기존 철도를 지하에 넣는 것이 아니라 단선 철도를 복선전철화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공사비(4357억원) 전액을 국가철도공단이 조달했다. 최근 당정이 부산지역의 경부선 지하화를 철도사업이 아닌 한국형 지역균형 뉴딜 사업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도 수익자 부담원칙을 우회하고,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등을 통해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한 취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자유치도 재원조달의 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민간사업자에게 철도 지하화를 맡기는 대신 지상구간 개발권을 줘 투자비를 회수토록 하는 방식이다.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이 대표적으로 이 방안을 주창한다. 이를 통해 민자를 대규모로 끌어올 수만 있다면 확실히 돈 걱정을 덜 수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철도는 선로 주변의 부지가 넓지 않고 길쭉한 선형(線形)이기 때문에 용지 모양이 개발사업에 상당히 불리하다”며 “선로 주변을 따라 일정 폭 이상을 추가로 확보해서 개발할 수 없다면 민자 유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유 교수는 “철도를 지하화하는 면적만큼 본래 기능을 상실한 그린벨트를 풀어서 개발하고, 그 이익을 지하화 사업에 투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구로~인천 국철 지하화 연구용역을 담당한 정성봉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도 “철도가 가진 선형 문제로 인해 사업성을 제대로 갖추기 힘들다”며 “경인선 전철도 선로 주변뿐 아니라 인근 주택가와 공장지대까지 합쳐서 개발해야만 사업성이 나올 수 있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재생을 위한 철도 지하화라는 요구는 같아도 지역별로 상황은 제각각이다. 부지 규모도 다르고, 필요한 사업비 역시 차이가 크다. 결국 지자체별로 특성에 맞는 개발 방식과 재원 조달방안을 어떻게 찾아내느냐가 제2, 제3의 ‘경의선 숲길’을 만들기 위한 첫 단추가 될 듯싶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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