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대 없앤 소비자들, 화장품 회사도 움직였다

중앙일보

입력 2021.03.30 00:04

업데이트 2021.03.3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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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달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재활용이 어려운 화장품 용기를 박스에 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재활용이 어려운 화장품 용기를 박스에 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리랜서인 박혜진(33)씨는 외출할 때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꼭 챙긴다. 마트에서 반찬을 살 때 담을 용기도 챙겨간다. 일회용 컵이나 비닐봉투·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예전에는 배달음식·택배를 많이 이용했지만 포장 쓰레기에 진저리가 나 3년 전 ‘친환경 소비자’가 됐다고 한다. 박씨는 “3년 전만 해도 커피숍에서 찬 음료를 주문하고 빨대를 거절하면 직원이 의아하게 쳐다봤다”고 말했다.

친환경 운동으로 기업 변화 이끌어
화장품 회사에 공병 보내기 캠페인
LG화학, 용기 재활용 플랫폼 화답
작년엔 스팸뚜껑 반납운동 벌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음식 배달이나 택배가 많아지면서 포장 쓰레기가 늘었다. 그러자 역설적으로 친환경 소비 캠페인이 활발해졌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 중에는 친환경 소비에 앞장서며 주변에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일부 소비자들은 기업에 친환경 제품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지난해 여름에는 ▶스팸 플라스틱 뚜껑 반납 운동과 ▶엔요 요구르트 빨대 반납 운동이 있었다. 소비자 모임인 쓰담쓰담이 운동을 시작했는데 온라인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운동에 참여한 소비자들은 “캔은 이미 밀봉 상태여서 플라스틱 뚜껑이 필요없다”거나 “요구르트에 빨대는 과잉포장”이라고 주장했다.

화장품 용기의 재활용 등급 표시를 요구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 [사진 인스타그램]

화장품 용기의 재활용 등급 표시를 요구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 [사진 인스타그램]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 선물용 스팸 세트에서 플라스틱 뚜껑을 없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스팸 뚜껑은 보관 편의성과 안전성을 위해 부착한 건데 내부적으로도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친환경에 역행하는 기업으로 찍히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명절 선물세트부터 시범적으로 뚜껑을 없앴다”고 설명했다. 매일유업은 엔요 요구르트에서 빨대를 없앴다. 우유 두 개를 묶은 포장은 종이 띠로 바꾸고 유아용 치즈 제품에선 플라스틱 포장재를 제거했다.

화장품 용기 재활용을 요구하는 소비자들도 있다. 2019년 말 개정한 자원재활용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화장품 용기 겉면에 재활용 최우수·우수·보통·어려움 같은 등급을 표기해야 한다. 하지만 환경부는 LG생활건강·아모레퍼시픽 등 수출 비중이 큰 화장품 기업에 예외를 인정했다. ▶단기간에 재활용이 가능한 용기를 만들기 어렵고 ▶재활용 어려움 등급 제품에 소비자 인식이 나빠질 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를 받아들인 결과다.

친환경 소비자들의 요구로 빨대를 없앤 엔요 요구르트. [사진 매일유업]

친환경 소비자들의 요구로 빨대를 없앤 엔요 요구르트. [사진 매일유업]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은 지난달 항의하는 차원에서 화장품 공병을 수거해 화장품 회사로 보내는 캠페인(#화장품어택)을 벌였다. 2주 만에 전국에서 8000여 개의 공병을 모았다. 그러자 환경부는 화장품 용기에 반드시 재활용 등급을 표기하게 하는 내용의 행정예고를 했다. LG화학은 최근 스타트업인 이너보틀과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를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우선 LG화학이 제공한 플라스틱 소재로 이너보틀이 화장품 용기를 만든다. 소비자는 이런 용기에 담은 화장품을 구매·사용한 뒤 용기를 반납한다. 그러면 LG화학이 소비자에게서 회수한 용기를 100% 재활용하는 방식이다.

다만 모든 기업이 친환경 제품을 내놓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 교수는 “장기적으로 친환경 제품 생산이 돼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단가가 높은 친환경 자재를 쓸 여력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친환경 기준에 맞추다 보면 결국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친환경 소비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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