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각장애 2명에 ‘봄’ 주고 떠난 엄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지난 9월 고 최희자 씨는 시한부 판정을 받자 손자 손녀들과 사진을 찍었다. [사진 최희자씨 가족]

지난 9월 고 최희자 씨는 시한부 판정을 받자 손자 손녀들과 사진을 찍었다. [사진 최희자씨 가족]

“꽃을 참 좋아하셨는데…어머니는 떠나셨지만, 누군가 이 꽃들을 마음껏 볼 수 있겠죠?”

각막 기증 ‘마지막 선물’ 고 최희자씨 #6개월 전 뇌종양 시한부 판정에 #“김수환 추기경처럼 도움 주고싶어” #딸 “꽃 좋아한 엄마처럼 누군가…”

벚꽃 봉오리가 부풀어 오른 지난 22일 유난히 꽃을 좋아했던 어머니는 딸의 곁을 떠났다. 6개월 전 청천벽력 같았던 시한부 판정은 야속하게도 더는 늦춰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면서 시각장애인 2명에게 각막을 기증했다. 고 최희자(69)씨가 눈을 감은 날, 두 사람에게 빛이 찾아왔다.

어머니 최씨의 주변에는 늘 꽃이 탐스럽게 피었다고 딸 이모(41)씨는 추억했다. 10여년간 학교 보안관으로 근무했던 최씨는 매년 봄 교정의 꽃들을 정성스럽게 가꿨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이면 어김없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어머니 덕분에 빛을 찾은 누군가가 올 봄꽃을 볼 수 있다는 건, 그래서 딸에게는 큰 위안이자 기쁨이다.

최씨가 각막을 기증한 건 생전에 존경하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2009년 세상을 떠나며 각막을 기증한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씨는 “어머니께서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마지막 순간 각막 기증으로 세상에 고마웠던 마음을 표현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바쁜 엄마’였다. 학교 보안관으로 근무하기 전에는 은행원으로 10년 정도 일했다. 20여년 전 갑작스러운 난치병으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 가계를 책임지기 위해 여러 근무지에서 일을 했다.

생업의 틈틈이 목욕 봉사와 일손 돕기, 호스피스 병동 봉사도 했다. 최씨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여의도 성모병원은 그가 투병생활 전 환자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했던 곳이다. 평소 입버릇처럼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늘 남을 위해 살던 최씨의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난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교모세포종’이라는 이름도 낯선 병이었다. 뇌종양의 일종으로 난치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어머니는 차분하게 몇 가지 일을 했다. 사랑하는 손자·손녀들과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다.

어머니의 의연했던 마지막 모습은 딸과 남은 가족에게 큰 울림을 줬다. 이씨는 “시신 훼손에 대한 막연한 염려가 있었는데, 어머니의 각막기증을 옆에서 지켜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각막기증 후 평온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계셨다”고 말했다. 그는 “저와 남편, 남동생까지 모두 각막기증을 약속하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23일 최씨의 빈소에는 ‘세상에 빛을 남긴 고귀한 사랑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근조기가 놓였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고인의 뜻을 기리는 의미로 설치한 것이다. 박진탁 이사장은 “각막기증이라는 숭고한 결정을 내려준 기증인과 유가족들에게 감사하다”며 “화창한 봄날, 각막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도 따뜻한 희망을 전해 준 기증인의 사랑을 많은 이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생전에 동백꽃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꽃이 필 때도 예쁘지만, 질 때도 예뻐서”라는 이유였다. 좋아했던 꽃처럼 살다 떠난 어머니를 기리며 이씨는 “어머니가 선한 마음으로 했던 마지막 선택이 어떤 분들에게는 위로가, 또 어떤 분들에게는 희망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