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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9급까지 재산 등록 "선거 앞두니 만만한게 공무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 "9급까지 130만 공직자 재산 등록" 

한국토지주택공사(LH) 發 투기 의혹 여파로 정부와 여당이 공직자 재산등록 범위를 9급 하위직까지로 확대하기로 결정하자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땅 투기 근절 '재산등록 의무화'만이 능사인가", "공무원을 땅 투기 범죄자로 만드는가" 등의 정부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선거 앞두고 공무원 희생양 삼나” 불만

‘부동산 부패 청산’을 위한 제7차 반부패정책협의회가 29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부동산 부패 청산’을 위한 제7차 반부패정책협의회가 29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29일 오후 열린 긴급 반부패정책협의회는 교사 등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 재산등록 의무화를 포함한 LH 사태 재발 방지 대책을 확정해 발표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일반직 공무원은 국가·지방직 4급 이상, 경찰공무원은 총경 이상, 소방공무원은 소방정 이상 고위공무원 등을 재산등록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발간된 행정안전부 '2020 행정안전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12월 현재 전국 공무원 수는 110만4000여 명이다. 정부는 모든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까지 더하면 재산등록 의무화 대상은 130만명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부동산 관련 업무를 하는 공직자 전원의 재산을 인사혁신처에 등록시키기로 결정했다. 대상자는 기존 4급 공무원 이상과 공공기관 임원 이상 23만명에서 LH 등 관련 기관 직원 모두를 포함한 30만명이 될 전망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운데)가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당정은 회의에서 공직자 재산 등록 확대 등 불법행위 차단 대책과 함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조직 개편 등 혁신 방안 등을 논의한다. 왼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 총리,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오종택 기자

정세균 국무총리(가운데)가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당정은 회의에서 공직자 재산 등록 확대 등 불법행위 차단 대책과 함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조직 개편 등 혁신 방안 등을 논의한다. 왼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 총리,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오종택 기자

공직사회 "공무원 모두를 투기꾼으로 규정"

공직사회에선 이날 정부 대책에 “말단 공무원까지 규제해야 하냐”는 회의적 목소리가 나왔다. 한 경제부처 과장급 직원은 “개발정보랑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공무원들까지 잠재적 투기꾼으로 규정하는 조치”라면서 “선거를 앞두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공무원을 희생양 삼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세종의 한 정부부처 사무관은 "'만만한 게 공무원이라며 억울해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다른 부처 과장급 공무원은 “애초에 문제는 부동산 관련 내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악용했다는 점”이라며 “부동산 관련 기관의 공직자에 대한 감시를 더 조인다면 동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선 "막무가내식 정책에 분노"

대구에선 공식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구공무원노동조합(이하 대공노)은 이날 성명을 내고 "(모든 공무원 재산등록 의무화는) 새내기 공무원에게 범죄집단의 굴레를 씌우는 것"이라며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재산까지 등록해야 하는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이 너무나 참담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공노는 정부의 막무가내식 정책에 분노한다. 재산등록 의무화를 즉시 중단하고 하루속히 실효성 있는 정책 수립을 엄중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재산등록 의무화가) 그럴듯한 대책 같아 보이지만 실효성도 효과도 없는 제도다"라고 주장했다. 대공노는 "자치단체 9급부터 7급 공무원은 대부분 주민자치센터나 사업소에서 민원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이들은 (LH 사태를 부른 부동산 관련) ‘특정 정보’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28일 부동산 투기 과열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세종시 밀마루 전망대에서 바라 본 아파트 단지와 정부청사 등 도심이 흐린 날씨로 온통 뿌옇다.프리랜서 김성태

28일 부동산 투기 과열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세종시 밀마루 전망대에서 바라 본 아파트 단지와 정부청사 등 도심이 흐린 날씨로 온통 뿌옇다.프리랜서 김성태

앞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도 23일 성명을 내고 “선거를 앞두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전시 행정을 중단해야 한다”며 “하위직 공무원은 땅 투기 위기 모면의 희생양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 많은 사정기관은 다 무엇에 쓰나" 

전북도 소속 7급 공무원은 "부동산값 폭등과 LH 임직원의 신도시 투기 논란 때문에 정부에 떠난 민심을 뒤집기 위해 만만한 하위직 공무원들을 제물 삼는 것 아니냐"며 "죄인 취급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와 달리 행정이 투명해져 공무원 대부분은 부동산 개발 정보 등에 접근하기 어려운 데다 설사 정보를 알아도 불법 행위는 하지 않는다"며 "보궐선거를 앞두고 보여주기식 대책만 내놓지 말고 투기 혐의가 있는 공직자라도 제대로 수사해 처벌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시 소속 공무원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취지에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공무원으로서 늘 조심하고 윤리의식과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데 공무원이 봉인가 싶다"고 했다.

교사 "공무원 표는 포기했나" 

충남도 김태신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검찰·경찰·감사원 등 그 많은 사정 기관은 다 어디에 쓰려고 이런 짓을 하느냐”고 했다. 전교조 출신인 대전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정권이 공직사회 표를 다 포기한 것 같다”고 했다.

충북 영동군의 7급 공무원도 "재산 등록할 게 집, 예금, 차량밖에 없다"며 "투기 근절 목적은 이해하지만, 대상을 너무 광범위하게 잡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한 공무원은 “청렴한 공직자가 대부분이라 생각해 등록 방침이 두렵지 않다. 다만 이번 LH사태 해결의 목적으로 하위공직자들에게까지 등록 대상을 넓히는 것은 과한 처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에 이어 공직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9일 세종시 스마트 국가산업단지 예정지인 연서면 일원에 땅 매매 전단지가 전봇대에 부착돼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에 이어 공직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9일 세종시 스마트 국가산업단지 예정지인 연서면 일원에 땅 매매 전단지가 전봇대에 부착돼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반면 경찰은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부산경찰청 소속 7급 공무원인 경위급 김모(50)씨는 "당시 다른 조직은 4급 이상부터 재산등록 의무화 있는데 경찰과 소방 등 7급부터 재산등록을 의무화했을 때 범죄자 조직으로 취급한다는 기분 때문에 반발했다"며 "그때는 받아주지 않더니 이제 와서 9급 공무원까지 모두 등록하라고 하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1994년부터 경찰 및 검찰, 소방, 세무 등 특정 분야 공무원은 7급 이상부터 재산등록을 하도록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이 적용됐다.

대구·대전·부산·제주·세종·부산=김윤호·김방현·김준희·최충일·이은지 기자, 최은경·임성빈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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