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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 분노 증언 "수십곳서 같은 자료 요구, 미치겠더라"

중앙일보

입력 2021.03.29 15:34

업데이트 2021.03.29 15:59

경기도 한 요양병원에서 방역복을 입은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이 병원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해 동일집단(코호트) 격리됐다. 뉴스1

경기도 한 요양병원에서 방역복을 입은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이 병원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해 동일집단(코호트) 격리됐다. 뉴스1

"질병관리청·시청·도청·보건소·소방서·경찰서·공단(건강보험공단)…정말 수십 개 기관에서 전화해서 자료를 보내달라고 해요. 응대하느라 일도 못 하고."(A요양병원 관계자)
"코호트 격리 기간 시청·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보건소와 핫라인을 만들었어요. 어떻게 할지 모를 일이 생겨서 전화하면 안 받아요. 반면 그쪽 전화는 무조건 받아야 하고."(D요양병원 관계자)
지난해 11월~올 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 때 집단감염의 홍역을 치렀던 요양병원 관계자들이 당시 방역의 문제점을 쏟아냈다. 손덕현 대한요양병원협회 회장은 지난 26일 '2021 춘계 학술세미나'에서 요양병원 종사자의 목소리와 개선안을 담은 백서를 공개했다. 손 회장은 집단감염이 발생한 9곳의 요양병원의 이사장·원장·간호사·방역책임자 등 14명을 인터뷰했다. 8곳은 집단감염으로 코호트 격리(동일집단 통째 격리)됐다.

요양병원 코로나19 백서 생생한 증언

"가끔 나타나 잔소리하고 간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콘트롤타워(지휘체계) 부재를 성토했다. D요양병원관계자는 "공무원이 상주하면서 지휘하는 경우가 없었다"며 "같은 얘기를 보건소에, 시청에 따로 설명하고 여기저기서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자료를 보내라고 하니까 미치겠더라. 같은 전화를 여섯 군데서 받아보세요, 어떤지"라고 반문했다. B요양병원 관계자는 "공무원이 가끔 나타나 휙 둘러보고, 잔소리하거나 지적하고 가버려요"라고 말했다. H요양병원 관계자는 "시청 부서가 몇 개죠? 다 전화 온다. 현장에 전문가 보낼 생각은 않고 자료만 요구한다"고 말했다.

패닉에 빠지다 

당국의 늑장 대응 때문에 요양병원 관계자들은 피눈물 나는 대응을 했다. B요양병원 다른 관계자는 "보건소·질병청·시청에 수도 없이 확진자를 이송해달라고 요청했더니 10여일 지나서 빼기 시작했다"고 성토했다. D요양병원 관계자는 "일부 환자는 나가게 해달라고 아우성치고, 간병인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며 "이송이 지연되면서 확진자를 분리하지 못하니 패닉(공포)이 왔다"고 회상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코호트 초기)일주일간 매일 2시간밖에 못 잤다. 확진자가 더 나오면 죽을 것 같더라"고 말했다. E요양병원 관계자는 "확진자가 발생하니까 방역당국이 '너희도 의료기관이니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나왔다. 요양병원은 감염병 치료 시스템이 없는데. 그러니 무방비로 뚫릴 수밖에"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직원들이 상황이 힘들어지니까 한계에 도달했다. 절망적이었다"며 "확진자를 다른 요양병원 보내려니까 그쪽 보건소가 막더라"고 말했다.

"환자가 왜 병실에서 식사하나"

요양병원에 대한 이해 부족을 지적했다. D요양병원 관계자는 "역학조사관이 나왔는데 몇 번 말해줘도 알아듣지 못하고, 요양병원을 요양시설(요양원)으로 알더라"며 "역조관이 환자 식사 동선을 체크하면서 '왜 환자들이 병실에서 식사하느냐'고 물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B요양병원 관계자는 "역조관이 입원환자를 다 퇴원시키래요. 기저질환 있고, 산소 필요하거나 석션(가래 뽑기)하거나 코로 식사하거나 욕창이 있거나 폐렴이 있어서 집에서 모시기 힘든 환자들인데"라고 말했다.

환자 지키려 진단키트 사서 검사

코로나19 PCR 검사가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은 점을 아쉬워했다. I요양병원 관계자는 "확진자가 나온 병실은 다 감염됐다고 보고 보건소에서 3일에 한 번 PCR 검사를 하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포기하느냐. 진단키트를 사서 매일 검사했다. 검사비가 수천만 원 넘었다"고 말한다. H요양병원 관계자는 "직원 1명이 확진되자 보건소에서 밀접접촉자 10여명만 PCR 검사하라고 했다. 감염 취약한 노인 수백명이 있는데, 진단키트를 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해서 별도로 구매해서 검사했다. 5000만원 들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부산의 한 요양병원 모습. 연합뉴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부산의 한 요양병원 모습. 연합뉴스

현실에 안 맞는 격리지침

E요양병원 관계자는 "코호트 격리 후 방역당국이 환자를 1인1실에분리하라고 했다. 병실마다 환자가 꽉 찼는데 어떻게 그리하느냐. 확진자를 빨리 이송하지 않아 그 병실은 전멸했다(모두 감염을 뜻함)"고 말했다. C요양병원 관계자는 "확진자 병동 근무자는 교대를 못 했다. 보건소에서 인력을 파견하지도 않았다. 자가격리자들(직원)이 미안한 마음에서 달걀·김치·보쌈·만두·고구마·귤 등을 보내줬다. 우리가 하나라고 느꼈다"고 말한다. J요양병원 관계자는 "격리 관련 의료폐기물이 하루 수백톤 나오는데, 처리비용이 어마어마하다. 이 비용을 병원에 떠안겼다"고 말했다.

손실보상 머나먼 길

B요양병원 관계자는 "직원 월급이 한 달 밀렸다. 거래업체 결제가 밀리니까 납품을 꺼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손실보상을 요청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늦어진다"고 말했다. H요양병원 관계자는 "코호트 격리 첫달에만수억원 손실이 났다. 다음 달은 더 클 것 같다. 정부는 손실 회복 기간을 8일만 인정한단다. 8일 안에 정말 병원을 정상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보내지 말라"

요양병원 직원은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병원 관계자는 "직원의 남편 회사에서 '출근하지 말라' '그만둬라' '회의에 들어오지 말라'라고 한단다. 또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보내지 말라'고 요청한단다"고 전했다. 또 "군청이 공무원들에게 '요양병원 종사자 만남 자제' 메시지를 보냈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손덕현 원장은 "인터뷰를 하려고 택시에 올라 '00요양병원으로 가 주세요'라고 했더니 기사가 '그 병원 가도 괜찮아요"라고 망설여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내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인 요양병원 영웅들의 생생한 증언을 기록하기 위해 백서를 발간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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