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인인사이트] 트레이더·마케터 부부, 퇴사 후 2년 '갭이어'로 얻은 것

중앙일보

입력 2021.03.29 10:20

업데이트 2021.03.2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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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했던 곽새미님과 증권사 트레이더였던 김석민님 부부는 결혼 3년차가 되던 2018년 가을, 동시에 퇴사를 했다. 퇴사할 당시만 해도 1년 반은 세계여행에, 귀국 후 반년은 각자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하기로 했다.

서로 약속한 2년간의 갭이어 종료를 한달 앞두고 두 사람은 제주의 그림같은 집을 발견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제주에서 1년 더 쉬며 각자 하고 싶은 일을, 그리고 해보지 않았던 일을 더 해보기로 했다. 스마트스토어, 주식 유튜브, 카카오 유료 연재 등을 통한 수입이 직장인이던 시절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기꺼이 갭이어를 연장하고 있다. 제주로 이주한 지 2주차 되던 날, 눈 쌓인 감귤밭을 마당으로 가진 제주집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이 콘텐츠는 폴인 fol:in 에 연재 중인 〈일하는 사람의 갭이어〉3화 중 일부입니다.

여행이든, 인생이든 대비한다고 전부 대비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제는 상황이 닥치면 거기에 맞게 해요. 제 삶의 태도가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제주에서 갭이어 보내고 있는 김석민(왼쪽), 곽새미(오른쪽) 부부. 결혼 초기 막연히,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던 부부 동반 갭이어를 정말 이룰 수 있을지 몰랐다. ⓒ 서원

제주에서 갭이어 보내고 있는 김석민(왼쪽), 곽새미(오른쪽) 부부. 결혼 초기 막연히,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던 부부 동반 갭이어를 정말 이룰 수 있을지 몰랐다. ⓒ 서원

부부 동반 갭이어, 성공한 롤모델 아홉 커플을 찾아나서다

두 분 모두 퇴사하신지 꽤 되셨죠? 부부가 동시에 갭이어를 갖기로 결정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특히 경제적인 이유로요.
곽새미: 2018년 8월과 9월에 각각 퇴사를 하고, 2018년 10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왔어요. 저는 퇴사를 결정하기가 남편보다 쉽지 않았는데 경제적인 이유보다도 갭이어 이후에 대한 막막함이 컸어요. 둘 다 회사를 5년 이상씩 다녔기 때문에 퇴직금은 넉넉했거든요. 하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돌연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마냥 즐겁게 다녀오면, 그 뒤는 어쩌지?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이 정말 컸어요.
막막함을 이겨내고, 갭이어를 실행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곽새미: 저희 둘 다 결혼 전부터 언젠가 동시에 갭이어를 가지면서 세계여행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막연했어요. 그런 삶을 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줄 롤모델도 없었고요. 그냥 매일 회사 욕하다가 퇴사하길 바란 건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2017년 봄, 우연히 퇴사학교에서 세계여행 다녀온 부부가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이랑 참석했다가 '우리도 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어요.두 분은 저희보다 더 오래 커리어를 쌓은 부부였는데 세계 여행을 다녀오신 뒤에 창업을 하셨더라고요. 여전히 사업을 하고 계시고 선택에 대한 확신도 있고요.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 회사가 아니어도 되나보다. 30대에도 전혀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가보는 게 가능한가 보다.' 저는 솔직히 세계여행에 대한 두려움보다 놀고 와서 내 커리어가, 내 인생이 망할까봐 두려웠는데 너무 잘 살고 계시더라고요. (웃음)

구체적인 사례를 듣고 나니까 훨씬 현실감이 생기셨나 봐요.
곽새미: 네, 그런데 웃긴 건 그 분들의 강연을 듣고도 1년 동안 여덟 커플을 더 만났어요. 불안해서. (웃음) 강연하는 데 찾아가는 것은 기본이었고, 책이나 인터넷에서 동반 퇴사하고 세계여행 다녀오신 분들 검색해서 다짜고짜 만나자고 하기도 했고요. 제가 이걸로 너무 불안해하고 고민하니까 주변에서 소개해주신 경우도 있었어요.
김석민: 정작 퇴사하고 집을 정리하는 절차는 정말 간단했는데, 아내가 마음을 결정하기까지 과정이 훨씬 오래 걸렸어요.
새미님은 그 분들에게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요. 가장 많이 질문했던 것이 무엇이었어요?
곽새미: 다녀와서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여행 후 정착기를 가장 많이 물어봤어요. 사실 퇴사 후 세계여행이 저희 입장에서야 '갭이어'이지만, 어떻게보면 커리어 단절이잖아요. 그런데 일종의 케이스 스터디를 해보니 여행 후에도 창업이나 재취업을 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가능하다고 모두들 말씀하시더라고요.

'돌아갈 회사 있을까?' 고민 내려놓자 시작된 2년간의 갭이어

갭이어를 준비하는 여정 중 '마음 준비'를 하는 게 가장 어려우셨나봐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돌아올 자리'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셨던 것 같아요.
곽새미: 맞아요. '내가 돌아올 회사가 있을까?' 돌아올 자리와 밥벌이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어요. 케이스 스터디를 하다보니 어느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가 아니어도 되는 삶을 찾고 싶어서 갭이어를 가지려던 건데 저는 자꾸 회사로 '돌아올'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회사원'이라는 자아를 과감히 내려놨어요.

아직 퇴사 전이었지만 이 때가 제게는 갭이어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여러 부부들의 실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막연함이 좀 더 구체화된 것도 있고요.

김석민: 아내의 결심이 선 뒤로는 사실 준비 과정이랄 게 없었어요. 저는 회사가 개인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급여를 많이 줘서 빠른 은퇴를 할 수 있게 해주거나 둘 중 하나는 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웃음) 당시 제가 다니던 회사는 둘 다 제게 주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얼른 갭이어를 가지면서 다른 삶을 모색해보고 싶었어요.
준비 과정 중 저희에게 중요했던 날이 하나 있는데요. 퇴사하기 전 어버이날에 양가 부모님들을 모셔놓고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요. 결혼 초기부터 언젠가 함께 갭이어를 가질 거라고 계속 말씀드렸긴 했지만, 정말로 저희가 '일을 저지를지'는 믿지 않으셨어요. 어렵게 들어간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냐고 반대의 기색을 보이기도 하셨고요. 이미 결혼하기도 했고, 독립한 성인이니까 그냥 저희 마음대로 해도 됐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양가 부모님에게 발표했던 내용의 일부. 하고 싶었던 일이 분명했기에 더욱 구체적으로 설득할 수 있었다. ⓒ 곽새미, 김석민

양가 부모님에게 발표했던 내용의 일부. 하고 싶었던 일이 분명했기에 더욱 구체적으로 설득할 수 있었다. ⓒ 곽새미, 김석민

어버이날에 그런 엄청난 이벤트라니. (웃음) 프레젠테이션은 어떤 내용이었어요?
김석민: 우리가 왜 퇴사를 하고 갭이어를 가지려고 하는지, 갭이어 기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세계여행을 다녀와서는 무엇을 할 계획인지, 갭이어를 위한 자금은 어떻게 확보하고 운용할 것인지 발표했던 것 같아요. 그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면서 저희 역시 갭이어를 어떻게 보낼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함께 구상할 수 있었고요.

부모님들이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하셨던 분들이라 저희의 발표를 보고 '대환영'해주시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해주셨던 것 같아요. 그랬기 때문에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 이 집을 구하기 전까지 약 9개월간 처가살이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웃음) 얹혀 사는 동안 장인어른이 단 한번도 언제까지 이렇게 백수로 살 거냐, 이 집에선 언제 나갈 거냐 등의 압박을 주신 적이 없었어요. 정말 감사하죠.

주식 유튜브, 스마트스토어, 카카오 연재… 회사 대신 찾은 '일'

ⓒ 곽새미, 김석민

ⓒ 곽새미, 김석민

두 분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세계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여전히 자유롭게 지내고 계신가요?
김석민: 퇴사하면서 저희 둘이 약속한 게 있어요. 여행 후에도 바로 회사로 돌아가지 말자. 다녀와서 1년 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자유롭게 해보자. 사실 그 기한이 2020년 12월까지였고, 회사로 돌아갈지 말지 결정해야 했는데 이 집을 11월에 발견하는 바람에 계획을 수정하게 됐죠. (웃음) 1년 더 쉬기로요.
두 분의 수입원은 무엇인가요?
곽새미: 현재 남편은 주식 유튜브가 주 수입원이고요, 저는 스마트스토어와 재택으로 진행하고 있는 스타트업 업무, 그리고 저희 여행이야기와 제주살이 이야기를 카카오 플러스친구에 유료 연재하는 것이 주 수입원이에요. 둘의 월 수입을 합하면 회사 다닐 때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 돼요. 그래도 3월에 귀국했을 때 수입이 제로였던 것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거죠. 이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유롭게 살아도 될 것 같은 싹이 보이니까 갭이어를 1년 연장하기로 결정한 것도 있고요.
갭이어를 1년 연장할 수 있게 도움을 줬던 다양한 프리랜서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곽새미: 스마트스토어나 카카오 플러스친구 유료 연재도 퇴사 전에 미리 알아본 게 아니었어요. 여행을 다녀오니 스마트스토어가 엄청난 붐이었어요. 마침 부모님이 하고 계신 사업이 스마트스토어와 맞는 것이기도 했고, 판매 페이지를 쓰는 일은 마케터였던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어요. 연재 역시 시작한 계기가 정말 별거 아니었어요. 너무 긴 여행이니까 주변 지인들에게 안부를 전할 겸 소소한 간식비를 벌어보자 싶어서 시작한 일이 제주살이 연재까지 이어진거죠.
김석민: 퇴사 전에 아내는 취미로 요가 강사 자격증을 땄고, 저는 당시 퇴사하는 청년들에게 정부가 지원해주는 내일배움카드로 영상편집과 포토샵을 배웠어요. 세계여행 다니는 동안 여행유튜버로 성공하고 싶었거든요. (웃음) 정말 진지했어요. 매일 촬영하고 편집해서 영상을 60개 이상 올렸는데도 구독자가 거의 안 늘었어요. 당시 이미 유명한 여행유튜버가 많았는데 저희는 그들만큼 재미도 없고 새로운 정보를 줄 것도 없으니 반응이 처참했죠. (웃음) 1000명도 안되는 구독자분들과 소소하게 여행 일상을 서로 공유하고 안부를 확인하는 수준이었어요.

어느날 그 중 한분이 제게 특정 주식에 대해 물어보셨고, 거기에 대한 답변을 영상으로 찍어서 올렸는데 반응이 좀 다른 거예요. 이거다 싶어서 주식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채널을 새로 만들었고, 그게 지금 제 주 수입원이 되었어요. 아내도 저도 회사에서는 벗어났지만 원래 하던 일, 가장 잘하던 일을 하고 있네요. (웃음)

ⓒ 곽새미, 김석민

ⓒ 곽새미, 김석민

갭이어 종료 한 달 전, 1년 더 갭이어를 연장하다  

새미님과 석민님의 집 마당 옆엔 감귤밭이 펼쳐져 있다. ⓒ 서원

새미님과 석민님의 집 마당 옆엔 감귤밭이 펼쳐져 있다. ⓒ 서원

집이 굉장히 예뻐요. 창이 커서 개방감이 좋으면서도, 두 사람이 살기에 딱 적당하고요. 동네가 고즈넉해서 들어오는 길부터 벌써 반했어요. 갭이어를 연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이런 집은 어떻게 구하신 건가요?
김석민: 2020년 11월에 보름 정도 제주도 여행을 왔어요. 그땐 1년까지 살 생각은 없었고, 제주 한달살이를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내려왔고요. 숙소나 다른 일정 등이 여의치 않아 한달살이 대신 보름살이를 했죠. 그때 보름간 머물렀던 숙소의 주인 부부가 저희와 비슷한 시기에 세계여행을 하다가 제주에 정착한 분들이었어요. 주인 부부는 1층에서 생활하시고 저희는 2층에서 지냈죠. 지내면서 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 서울로 돌아가기 싫을 정도였고, 여기서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날씨도 유독 좋았고요. 게다가 세계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2020년 3월 이후로는 쭉 소속 없이 프리랜서로 일을 해왔기 때문에 어디에 살든 크게 상관이 없었어요.
곽새미: 집 주인 부부가 영감을 주셨어요. 어차피 보름 동안 맨날 여행할 거 아니니까 제주 이곳저곳 돌아보면서 부동산도 함께 알아보라고. 알아보는데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요. (웃음) 애월 가는 김에 한 군데 보고, 한림 가는 길에 또 한군데 보고. 그렇게 여행 겸 임장을 다녔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집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1년 살 집인데, 제주 1년 살기의 로망과 현실을 모두 충족시키는 집이 잘 없었어요. 보름간 묵었던 주인 부부의 조언으로 급기야 네이버 제주 한달살기 카페에 글을 올렸어요. ‘우린 이러한 신혼부부인데, 이런 이유로 이러이러한 집을 찾고 있다'고요.
김석민: 서울로 다시 돌아가기 이틀 전 네이버 쪽지가 한 통 왔어요. '육지에 일이 생겨 올라가게 되어 1년간 집을 맡아줄 임차인을 찾고 있다. 집을 한번 보러 오시겠느냐'고요. 그러면서 홈페이지 주소를 하나 주셨어요. 링크를 클릭해보니 '제주 집을 소개합니다'라는 웹사이트로 연결이 되더라고요. 사이트의 사진이나 구성이 정말 예뻤고요, 무엇보다 집 구석구석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어요. 그게 바로 이 집이고요. 말 그대로 '대박'이었죠.
두 사람의 홈이자 오피스인 제주집. 감각이 좋은 집주인이 두 사람에게 잘 가꿔달라는 당부와 함께, 거의 대부분의 살림을 두고 갔다. 언젠가는 호스트로 이런 넉넉한 마음씀을 실천해보고 싶다고. ⓒ 서원

두 사람의 홈이자 오피스인 제주집. 감각이 좋은 집주인이 두 사람에게 잘 가꿔달라는 당부와 함께, 거의 대부분의 살림을 두고 갔다. 언젠가는 호스트로 이런 넉넉한 마음씀을 실천해보고 싶다고. ⓒ 서원

석민님이 소개 글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쓰셨나봐요. 발품을 팔아도 찾기 어려운 집이 먼저 손을 내밀다니요. (웃음)
김석민: 당시 게시물에 개인 신상을 자세하게 적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부부가 동반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 1년간 제주 살이를 하고 싶어서 집을 찾는다고 썼어요.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보신 것 같아요. 이 집 주인 부부도 세계여행을 꿈꾼다고 하셨거든요. 두 분은 디자이너인데 땅을 매입하는 것부터 외관과 내부의 모든 디자인을 두 분이 다 일일이 고심해서 지은 집이래요. 그만큼 애정이 많은 곳이라 쉽게 거래하기보다 정말 내 집처럼 가꾸고 애정하며 머물러 줄 사람을 찾으셨던 것 같아요. 시기가 맞았던 것이 저희에겐 정말 행운이었죠.

갭이어의 기쁨과 슬픔, 일의 주체성과 나를 위한 균형감을 찾는 일

3년 가까이 갭이어를 보내고 계신데요. 갭이어가 결코 자유로움의 달콤함만을 주지는 않잖아요. 갭이어를 보내면서 어려운 점이나 힘든 점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후략)

※ 이 콘텐츠는 폴인 fol:in 에 연재 중인 스토리북 〈일하는 사람의 갭이어〉 3화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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