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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빙글빙글빙글‧‧‧지금 내 몸은 커다란 바람개비

중앙일보

입력

놀사와 같이 놀자 13화. 바람개비

두 팔을 벌리고 제자리서 빙글빙글 도는 바람개비 놀이는 준비물 없이 시간과 장소만 허락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어지러운 상태로 균형‧불균형을 넘나들며 즐거움을 느낀다.

두 팔을 벌리고 제자리서 빙글빙글 도는 바람개비 놀이는 준비물 없이 시간과 장소만 허락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어지러운 상태로 균형‧불균형을 넘나들며 즐거움을 느낀다.

저는 전래놀이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년 단위로 수업 계획을 짜서 아이들과 놀고 있어요. 하지만 그날 준비한 놀이를 하자고 먼저 이야기하기보다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놀이를 물어본 뒤 최대한 그 놀이를 하려고 하죠.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놀이, 축구·피구 등 특정한 아이들만 원하거나 잘하는 공놀이, 흔히 체육시간에 할 수 있는 놀이는 최대한 배제하고 말입니다. 한두 가지 놀이로 적게는 한 달, 많게는 일 년 내내 놀아도 아이들은 각자가 가지고 싶은 부분을 각자의 양만큼 가져갈 것이라는 생각, 놀이를 체험이 아닌 일상생활로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누군가가 놀이를 정해주는 것이 아닌 아이들 스스로 정하고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 등등이 모여 나만의 놀이 지도 철학이 생긴 것 같아요.

제주도의 외곽지역에 위치한 A초등학교를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한 학년에 10명 남짓 다니는 작은 학교. 제 소개를 하고 몇 번 수업이 진행되었을 무렵, 어느 정도 저의 수업 스타일을 알았는지 하루는 인사를 나눌 틈도 주지 않고 2학년 여자아이들을 중심으로 ‘바람개비’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다들 어떻게 하는 건지 아느냐고 물어보자 다 안다고 했죠. 그러고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두 팔을 벌리더니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입니다.

돌고 나서 멈추더니 “이렇게 하면 돼요. 선생님은 그냥 ‘시~작’ 하고 말해주세요”라며 해맑게 말했죠. 그러고 보니 전에도 몇몇 아이들이 같은 동작으로 빙글빙글 도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4~5명만 모여도 이 학교에서는 1개 학년의 절반이나 되죠. 솔직히 저는 이것이 놀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그냥 혼자 제자리에서 도는 것이라 여기고 빨리 수업을 진행해서 여럿이 놀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것이 자기들만의 놀이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승패를 나누기도 하고 여럿이 할 수도 있다고 하니 참 신기했어요. 내가 아이들의 놀이를 너무 가볍게 여겼구나 싶기도 했죠. 여하튼, 그 날 아이들이 하고 싶은 놀이는 ‘달팽이’, ‘앉은뱅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바람개비’였습니다. 그중 원하는 놀이는 가위바위보로 정했어요. 각자 원하는 놀이에 한 줄로 길게 늘어진 후 가위바위보를 해 마지막까지 남은 모둠이 하고 싶어 하는 놀이를 같이하기로 했습니다. 그 날은 아쉽게도 바람개비가 아닌 달팽이 놀이를 하기로 결정되었죠. 편을 나눠 땅에 달팽이집 모양으로 그린 놀이판을 따라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뛰며 달팽이를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문득 이상호 선생님의 책 『전래놀이 101가지』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달팽이 놀이를 하다 보면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낍니다. 이는 ‘균형 → 불균형 → 균형 상태’의 과정에서 생기는데 균형 상태로 돌아온 뒤에도 불균형 상태에서 느낀 묘한 기분을 기억하여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달팽이 놀이가 그렇듯, 바람개비 놀이도 이와 유사한 원리의 놀이일 것이라 추측해 봤습니다. 바람개비 놀이는 바로 한 주 후에 할 수 있었어요. 놀이를 해보니 돌다가 부딪혀서 넘어지는 아이, 나름대로 전략을 짜서 천천히 도는 아이, 초반에 빨리 돌다가 바로 주저앉는 아이 등 참 여러 부류의 아이들이 나왔죠. 하지만 다시 보아도 신기한 건 이렇게 밋밋한 활동이 놀이가 되고 몰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바람개비’라는 너무나 딱 맞는 이름을 가진 채로 말이죠.

언제부터 누군가에 의해 이 놀이가 전파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색종이로 바람개비를 만들다가 불현듯 자신도 바람개비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죠. 문득, 이 놀이는 바쁜 요즘 아이들의 하루 일과에 어울리는 맞춤형 놀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약간의 시간과 장소만 허락되면 되니까 말이죠. 이렇듯 바람개비는 아이들에 의해 생명력을 가진 채로 지금도 아이들을 놀이라는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있습니다. 그 재료가 색종이든 아이들 본인이든 말이죠.

글=김종훈(놀이하는사람들 제주햇살지회), 사진=중앙포토, 정리=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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