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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하현옥의 시시각각

법 ‘불완전판매’와 ‘불완전 법’ 판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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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사이즈가 하나뿐인 유니폼에 몸을 맞추라는 겁니다.”

금소법 시행 일주일 전 시행령 확정 #준비 시간 부족에 현장은 우왕좌왕 #‘금융소외법’ 전락 막을 보완책 시급

지난 25일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업종이나 상품별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포괄적인 법(유니폼)에 제각각인 몸(다양한 금융상품)을 욱여넣은 듯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금소법에 따르면 일부 금융상품에만 적용되던 ‘6대 판매원칙’(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 금지, 부당권유 금지, 광고 규제)이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된다. 이 법의 큰 틀 안에서는 위험이 큰 파생투자상품 등과 예·적금이 같은 선상에 놓이는 셈이다.

당장 예·적금 상품 가입부터 번거로워졌다. ‘은행거래신청서’에다 ‘예금상품계약서’(예금상품 가입권유 확인서)에 대한 금융사 직원의 설명을 일일이 듣고 고객이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한 뒤 직접 작성해야 한다. 가입 시간은 2~3배 늘어났다. 손해배상 입증 책임이 금융사로 넘어오며 펀드와 신탁 상품 판매 창구는 연일 ‘녹취 전쟁’ 중이다.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과 같은 대규모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 도입한 법의 취지와 명분은 공감한다. 하지만 좋은 명분이 늘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혼란은 예견됐다. 법은 지난해 3월 통과됐다. 세부 규정을 담은 시행령은 법 시행 일주일 전인 지난 17일에야 확정됐다. 전산시스템 구축과 직원 교육 등의 일정을 감안하면 제대로 된 출발은 불가능했던 셈이다. 구체적인 업무지침(가이드라인)도 마련되지 않아 현장은 여전히 우왕좌왕이다.

금융 당국도 준비 시간 부족을 사실상 인정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기준 구축과 핵심 설명서 마련 등 일부 규정은 6개월 유예키로 했다. 이 기간 동안 금융사의 법 위반이 중대 문제가 아니면 행정 제재보다 지도 위주로 감독하기로 했다.

법 시행 이후 현장의 혼란이 심하자 금융권 달래기에도 나섰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6일 금융협회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1년 전 펀드 불완전판매로 피해자들이 눈물을 흘렸는데 벌써 잊어버리고 빨리빨리 가자는 건 맞지 않는다”며 “안타깝지만 ‘빨리빨리’와 소비자 보호는 양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빨리빨리’ 서두른 것은 오히려 금융 당국인 듯하다. 막판까지 시행령 등 관련 정보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채 법 시행에만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 때문에 출발부터 삐거덕대는 금소법은 어떤 의미에서는 고객(금융회사)에게 상품에 대한 기본 내용(시행령과 가이드라인)과 위험성 등을 안내 없이 판(금융사에 떠넘긴) 불완전판매를 닮았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법 불완전판매’로 여겨질 만하다.

금소법 시행은 당국의 ‘불완전한 법’ 판매로도 비친다. 2011년 발의된 금소법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한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환매 중단이 빚어진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가 불거지며 법안 통과에 속도가 붙었다. 소비자 보호의 필요성에 법 통과가 시급했던 탓에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등 핵심 쟁점은 쏙 빠진 ‘반쪽짜리 법’이 돼버렸다. 그 결과 법 시행 전 이미 10여 개의 개정안이 올라와 있을 정도다.

‘법 불완전판매’든 ‘불완전한 법 판매’든 설익은 금소법은 빈틈투성이다. ‘고객과 금융사의 말단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금융 당국 보호법’이라는 지적부터, 대면 판매 감소 등을 야기할 ‘금융소외법’이란 목소리까지 나온다. ‘법 위반 1호가 될 수 없다’며 금융사가 상품 판매에 방어적으로 나서면 ‘금융상품 판매금지법’이 될 수 있단 시각도 있다.

이런 불만과 우려가 억울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필요한 건 보완책 마련을 위한 금융 당국의 또 다른 ‘빨리빨리’다. 소비자 보호와 ‘빨리빨리’는 양립할 수 있다. 여기서 느릿느릿하면 ‘보여주기 입법’에만 서둘렀다는 오해를 사기 딱이다.

하현옥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