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윤설영의 일본 속으로

아베 이어 스가 위협 '분슌포' “특종의 시대 끝나지 않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지난 26일 일본 총무성은 위성방송사 도호쿠신샤의 위성방송사업권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가 총무성의 특혜를 받아 사업권을 따냈다는 게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특혜의 배경에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아들 세이고(剛)가 있었다. 총무성 장관을 지낸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도호쿠신샤 직원이었던 그가 총무성 간부들을 접대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슈칸분슌' 신타니 마나부 편집국장 #"특종은 핵심역량, 이를 지키는게 기본" #"한국 때리기 보도, 더 신중했어야"

이 사건으로 현재까지 총무성 간부 11명이 징계를 받았고, 차관급 관료 1명과 춘추관장에 해당하는 관저의 관료 1명이 사직했다. 두 달 가까이 스가 정권을 흔들고 있는 이 스캔들을 처음 보도한 것은 메이저 언론사가 아닌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 이었다.

슈칸분슌의 보도로 자리에서 물러난 정치인, 관료는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난 정권에선 ‘아베 잡는 저격수’로 통했다.

지난 2월 발간된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에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장남 세이고가 총무성 고관을 접대했다는 의혹과 함께 세이고가 총무성 관료에게 선물을 주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실려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발간된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에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장남 세이고가 총무성 고관을 접대했다는 의혹과 함께 세이고가 총무성 관료에게 선물을 주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실려 있다. [연합뉴스]

2019년 개각 뒤 한 달 만에 장관 2명이 슈칸분슌의 보도로 낙마했다. 유력 검찰총장 후보는 신문기자들과 내기 마작을 한 사실이 슈칸분슌에 보도돼 옷을 벗었다. 지난 25일 가와이 가쓰유키(河合克行) 자민당 의원의 의원직 사퇴는 아베 정권 법무장관일 때 선거운동원을 고액에 매수했다는 슈칸분슌 보도가 시발점이 됐다. 아베를 계속 따라다닌 ‘모리토모 학원 특혜 의혹’에서도, 수사 도중 자살한 재무국 직원의 수기(手記)를 독점 보도한 매체는 슈칸분슌이었다.

일본 주간지가 정론지의 취재 방식이나 균형감각을 중시하기 보다는 대중 영합적인 소재에 몰두한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슈칸분슌 역시 미행, 잠복 방식을 자주 사용하고, 연예인의 사생활을 캐는데 집중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한국에 대해선 혐한 여론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단 이 잡지가 일본 국내 문제에선 특종 기사를 많이 쓴다는 데 대해선 이론이 없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주간지를 인용하는 보도는 없었다. 그런데 최근엔 NHK와 중앙 일간지도 ‘슈칸분슌에 따르면…’이라고 정식으로 출처를 밝히는 경우가 등장했다. “진짜 취재는 슈칸분슌이 다 한다”면서 이 잡지의 편집국으로 성금을 보내는 독자들도 있다. 굵직한 특종을 내놓는다는 의미로 ‘분슌포(文春砲)’라는 단어가 2016년 ‘올해의 유행어’ 최종 후보에 뽑히기도 했다.

메이저 언론사도 아닌 기자 55명 남짓(소속 기자 약 30명, 계약직 특파 기자 약 25명) 규모의 주간지가 대형 특종을 연속해 터뜨리는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 26일 도쿄 기오이초(紀尾井町)에 있는 분게이슌쥬(文芸春秋)사에서 신타니 마나부(新谷学) 슈칸분슌 편집국장을 만나 ‘슈칸분슌의 저널리즘’에 대해 들어봤다.

슈칸분슌이 특종에 강한 이유는 무엇인가
상대방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어떤 권력을 갖고 있더라도 기사를 쓴다. ‘우리는 한가운데를 지향한다’는 말을 한다. 모든 조직과 권력으로부터 등거리를 유지한다. 기자들에겐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스캔들(사건)은 있다’고 강조한다. 제보 사이트인 ‘분슌 리크스(Leaks)’에 하루 100건 이상 제보가 올라온다. 사건이란 어디선가 늘 일어나게 마련이다. 사건의 당사자는 ‘어디에 전하면 가장 확실하게 기사를 써줄까’를 고민하는데, 메이저 언론사로 가지 않고 슈칸분슌으로 들고 오는 일이 많아졌다.
스가 총리 아들의 총무성 접대 사건은 어떻게 보도하게 됐나.
처음 제보를 접한 건 지난해 9월, 스가 내각이 발족한 지 얼마 안 돼서 였다. 당시엔 “총리 아들이 접대를 한다”는 수준의 희미한 내용이었다. 기자 5명으로 특별팀을 꾸려서, 결정적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6개월간 물밑 취재를 벌였다. 접대가 이뤄지는 고급 식당에 기자들이 따라 들어가 옆자리에서 취재하기도 했다. 첫 보도가 나간 뒤 접대를 받은 총무성 관료가 “밥은 먹었지만 업무와 관련된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를 반박하기 위해 녹음 파일을 뒤졌다. 잡음이 많았는데 ‘위성방송’, ‘BS(위성방송을 가리키는 약어)’라는 단어를 잡아냈고, 전문가에게 의뢰해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복원해서 공개했다.
지난 26일 신타니 마나부(新谷学) 슈칸분슌 편집국장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지난 26일 신타니 마나부(新谷学) 슈칸분슌 편집국장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기사를 정하는 기준은 뭔가
가장 좋은 건 잡지를 많이 팔 수 있고 사회적 의의까지 갖춘 기사다. 잘 팔리는 것만 생각하면 슈칸분슌의 브랜드에 흠집이 난다. 현장 기자의 사기에도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상업 저널리즘이므로 돈도 벌어야 한다.
혐한 소재나 한국을 때리는 소재도 많이 다루는 데, 이는 어느 기준에 해당하나.
당시의 여론이나 분위기에도 많이 좌우되는 게 사실이다.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상륙했을 땐 일본 국내에서 분노가 상당히 컸다. 강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거의 매주 냈고, 많이 팔리기도 했다. 주간지마다 경쟁이 붙어서 과격했던 면이 있었다. 지금은 슈칸분슌을 보는 세간의 평가도 많이 달라져서, 지금이라면 훨씬 더 신중하게 썼을 것이다.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의 “정의의 편이 되지 말라”는 말을 당신의 저서에 담은 이유는.
정의의 편이 되어서 악을 처벌한다는 식의 보도는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반드시 독이 있기 마련이다. 독이 돌기 시작하면 위험하다. 독선적으로 빠지기 쉽다. 잘난 척하며 기사를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2017년 쓴 책에서 “우리가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만한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슈칸분슌의 제보 사이트 '분슌리크스'. 특종이 계속되면서 제보도 몰리고 있다. [웹사이트 캡쳐]

슈칸분슌의 제보 사이트 '분슌리크스'. 특종이 계속되면서 제보도 몰리고 있다. [웹사이트 캡쳐]

디지털 시대에 종이 매체로서의 전략은 무엇인가.
기본은 특종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우리의 핵심역량은 특종이다. “특종의 시대는 끝났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 종이든 디지털이든 읽을 가치가 있다고 독자로부터 신뢰를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 온라인판에선 종이 잡지 발매 하루 전에 특종기사의 일부를 공개하고, 전문은 유료로 서비스한다. TV 프로그램에서 기사를 사용할 땐 5만엔(약 51만원), 동영상은 10만엔(약 103만원)의 사용료를 받는다. 여전히 종이 매체로 인한 수입이 많지만 그 외 수입이 크게 늘고 있다.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