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정기의 소통카페

열린 공감·소통의 민주 공동체를 위하여

중앙일보

입력 2021.03.2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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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남도의 연붉은 하얀 매화와 노란 산수유는 포근했다. 자신을 내세우고 높이려고 감언이설을 마다치 않는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사람들 눈높이로 묵묵히 서 있었다. 혼자서도 이미 예쁜데 무리로는 장관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통제된 세상,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로 발가벗겨진 탐욕과 위선의 무법 세상에 감탄을 선사하고 있었다. 2022년, 내년에 다시 피어날 매화와 산수유를 위해 대지로 기꺼이 떨어지는 건 차라리 장엄했다.

800억원 드는 코로나 속 선거
상식·정의에 부합한 변화 확인
‘악어의 눈물’ 아님을 보여주길

사바세계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로 분주했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선거지만 불확실성이 가득한 선거라는 드라마는 민주주의의 심장 같은 장치다. 정치 권력자들과 정당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늉이라도 강제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꾼, 후안무치한 선동가, 되지도 않을 것을 공약하는 몽상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실망을 안겨주는 권력을 심판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철옹성 같은 이분법적 양당 정치의 폐해로 인해 그 밥에 그 나물을 뽑을지라도 선거를 통해 후보자를 선별하는 권한을 행사한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선거는 블랙홀이다. 성추행 문제로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시장을 ‘기억하고 기리겠다’며 여당이 길거리에 내걸었던 현수막. 박원순 전 시장 옹호자들의 확증편향에 기생하는 2차 가해로 지속적으로 펄럭이던 양심 불량을 단박에 삼켜버렸다. 가해에 대한 모호한 반성과 책임, 피해자의 일상복귀는 미완이지만 ‘피해 호소인’과 ‘피해자’라는 호칭 사이의 멀고도 멀었던 길, 길 없는 길이 비로소 트이는 셈이다. ‘사과 불가’ 체질의 진영에서 ‘죄송하다’는 분명한 사과도 있게 했다. 선거캠프에서 대변인이라는 중책을 맡았던 여당 의원이 “피해자의 일상이 회복될 수 있기를, 괴로운 날들 속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사퇴했다.

소통카페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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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는 통치하는 것과 통치받는 것을 번갈아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어느 때는 통치자가 되고, 어느 때는 통치받는 자가 됨으로써 시민은 그저 나라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정부를 만들어 나가는 존재라는 의미다(『민주주의』,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유규오). 민주주의의 원형인 아테네식 민주주의가 통치자가 일반 시민들과 분리되어 계속 통치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본 것은 통치하는 것과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 엄청난 능력이나 구호가 아니라 상식에 따르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시민과 가족, 거류외인과 가족, 노예를 합쳐서 11만~30만 명(B.C. 480년경~B.C. 360년경)수준인 아테네(『서양 고대사 강의』, 김진경 외)를 인구 960여만 명의 서울과 340만 명의 부산에 적용할 수는 없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의 수도와 2위 도시를 견인하는 시장 리더십에 경제와 정치를 다루는 역량은 중요하다. 일자리와 내 집 마련의 희망이 처참하게 무너진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후보자와 정당의 공감과 소통능력을 살펴보아야 한다. 공감과 소통 없이는 경제고 정치고 제대로 운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감은 상대의 존재와 입장을 부정하지 않고 이해하려 하고 자신의 말에 대한 시시비비를 인정할 줄 아는 것이다. 소통은 자신과 상대방 의견의 차이를 줄이고 공통부분을 넓히는 것이다. 자신의 입장만을 관철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지탱되려면 이견들 간의 대화와 토론은 물론이고 의견의 공유가 필수이다. 내편과 네 편을 가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서로 불화하고 반목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끼리끼리의 공감과 소통이 아닌, 열린 공감과 소통만이 행복하고 안정된 민주적 공동체를 낳는다.

광주를 찾아 지각 사죄의 무릎을 꿇은 제1야당,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이가 이미 견제구를 날리고 있지만) ‘피해 호소인’에서 ‘피해자’로 호칭 이동을 한 여당.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는 이런 시각 변화가 선거용 ‘악어의 눈물’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기 바란다. 코로나 사태로 한숨소리가 깊은 이 난리 통에서 800억원이 넘는 비용이 소요된다는 어이없는 보궐선거지만, 그래도 선거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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