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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교만하다? BTS에 화내는 중국 분노청년 세대 심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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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 [연합뉴스]

그룹 방탄소년단 [연합뉴스]

지난해 7월 가수 이효리가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자신의 예명으로 "마오 어때요"라고 했다가 중국 네티즌들의 집중 공격을 받으며 결국 인스타그램 계정을 폐쇄한 일이 있었다. 한 달 뒤 방탄소년단(BTS)도 밴 플리트 상을 수상하면서 6·25 전쟁을 두고 “(한미)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라고 언급했다가 비슷한 일을 겪었다.

홍위병과 흡사한 분노청년 세대 #맹목적 애국주의와 팬덤민족주의 #"한국은 과거를 모르고 교만하다"

당시 한국 사회가 당황한 것은 중국 네티즌들이 "중국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거나 "역사를 제대로 알라"고 분노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체 무엇이 예의에 어긋나고,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일까?

최근 출간된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은 이같은 우리의 의문에 대해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저자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20년 가까이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이런 문제를 현지에서 맞닥뜨렸던 연구자다. ‘분노청년’은 중국에서 온라인을 이용해 "맹목적으로 애국하고 광적으로 외국을 배척하고, 자유주의적 지식인을 공격하는" 청년 세대를 가리키는 용어다.
이들은 과연 중국에서는 어떤 존재이며, 한국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26일 저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마오쩌둥 전화 받고 기뻐하는 홍위병 그린 중국 '혁명화'   [연합뉴스]

마오쩌둥 전화 받고 기뻐하는 홍위병 그린 중국 '혁명화' [연합뉴스]

-'분노청년'은 무엇인가.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이다. 홍위병이 마오쩌둥의 권력을 위해 이용당했듯 이들은 중국 공산당에 이용당하고 있다. 홍위병의 사상적 무기가 사회주의라면 이들은 애국주의다. 홍위병은 자산계급을 분노청년은 외국을 공격한다. 이들을 아우르는 것은 중화주의다. 이들은 모두 서양을 비판하고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분노청년은 중국은 위대한 고대문명을 갖고 있으며 사회주의 대국인데 세상이 중국을 존경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분노청년은 시대별로 명칭이 다른데 최근의 ‘소분홍(小粉紅)’ 세력은 90년대 이후 출생자로 고학력층도 많고 한류에 익숙한 세대다. 그래서 애국주의 교육과 팬덤 문화가 기묘하게 뒤섞여 있다. 팬덤의 대상은 시진핑, 민족, 국가가 됐다.

-이들이 왜 나타난 것인가
=홍위병은 대약진운동이 실패하고 마오쩌둥이 비판받자 나타난 것처럼 분노청년의 탄생은 1989년 천안문 사건의 충격으로 나타났다. 공산당은 이후 비판적 젊은 세대가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애국주의 교육과 운동을 벌였다. 공산당의 업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당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천안문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현대사 교육을 중시한다. 국치를 잊지 말고 분발하자는 것이 목적이지만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외국에 대해 비이성적·감정적·극단적 성향을 갖게 됐다. 서양 제국주의 침략을 강조하고, 위대한 고대와 굴욕적 근대에 대한 기억이 청소년들 마음속에서 극도의 분노를 유발하고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악마화했다. 6·25 전쟁도 자신들이 미국으로부터 한반도를 구해준 전쟁이라고 교육받는다.

2015년에 나온 영화 ‘전랑(戰狼, Wolf Warrior)’은 짙은 애국주의적 색채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세련되고 은유적인 화법보다 직설적이고 거친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 중국 외교관을 중국에선 ‘전랑’이란 뜻의 ‘늑대 전사’로 부른다. [중국 바이두 캡처]

2015년에 나온 영화 ‘전랑(戰狼, Wolf Warrior)’은 짙은 애국주의적 색채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세련되고 은유적인 화법보다 직설적이고 거친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 중국 외교관을 중국에선 ‘전랑’이란 뜻의 ‘늑대 전사’로 부른다. [중국 바이두 캡처]

-한국에 대해서도 강한 공격성을 보인다.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한국에 열광했는데 지금은 한국이 교만하고 음흉하다고 생각한다. 활자, 의학 등 중국 문화의 세례를 받았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단오제 등을 자신의 문화로 꾸며 세계문화유산에 올린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한류가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한다. 일본도 과거사 문제로 미워하지만 최근엔 한국을 더 싫어하는 것 같다. 홍콩 시위에 지지를 보낸 것에 대해서도 분노한다. 보통의 중국인과 인터넷에서의 태도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간혹 나도 중국에서 열린 학술회의 자리에서 '단오제를 뺏어간 사람들'이라는 공격을 받을 때가 있었다.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한국=속국'이라는 정서가 강하다.

-'K' 열풍이 부는 한국을 돌아보면 분노청년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한국의 유사역사학자들이 '중국의 고대 문명은 다 동이족이 만든 것' '공자도 치우도 한국인'이라는 식으로 선전하는 것을 중국인들이 알게 되면서 감정이 악화했다. 그런 점에선 우리도 빌미를 준 점이 있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바라볼 지점들이 있다. 오해도 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중국에서 '파오차이’(泡菜)는 한국의 김치를 가리킨다. 한국인을 경멸적인 호칭이기도 하다. 단오제는 중국에서 초나라 때 유명한 시인인 굴원을 기리는 명절이다. 그런데 중국에선 한국이 굴원을 뺏어간다는 것으로 여겼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소식을 중국 언론에 알린 중국인 교수도 '한국처럼 전통문화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취지로 알렸는데 언론에서 '한국이 가로챘다'는 식으로 기사를 냈다고 하더라. 정작 고구려 문제는 중국에서 별 관심이 없다.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 [사진 푸른역사]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 [사진 푸른역사]

-중국에선 분노청년을 어떻게 보나
=2010년까지는 중국에서도 '병적 애국주의'라며 비판하는 책이 많이 나왔다. 랴오바이핑 같은 유명 칼럼니스트는 "아큐의 정신승리법" "머리가 없고 하루종일 반미, 반일만 생각하는 영원히 성장하지 못한 감정적인 동물" 등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 외에도 우자샹, 러산 등 중국 내 저명인사들이 '애국을 무기로 깡패짓을 하는 부랑자'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시진핑 체제 이후 국가적 압박이 강화하면서 이들의 목소리가 급격히 힘을 잃고 있다. 솔직히 1990년대부터 중국을 접한 나를 비롯한 중국 연구자들은 매우 당황하고 있다. '우리가 알던 중국이 아니다'라는 탄식을 자주 한다.

-이런 문제가 개선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쉽지 않을 것 같다. 관건은 중국 당국의 변화다. 중국 정부가 외국을 대하는 방식이 매우 공격적이고 배타적이다. 지금의 중국 젊은 세대는 유치원 때부터 애국사상을 들이부은 세대다. 빈부격차 등의 내부 문제가 아무리 불거져도 체제를 문제삼기보다는 국가의 방향을 그대로 따라간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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