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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꼬리 자른적 있다"며 청각장애인 응시 막은 애견협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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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달 7일 제2회 국가공인 '반려견 스타일리스트'(舊 애견미용사) 실기 시험장에서 청각장애인 수험생 A씨(43)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퇴실을 당해 논란이다. 한 장애인 인권단체는 "국가 공인 이전 애견미용사 민간자격을 취득한 장애인들이 있었다. '장애인 응시 불가' 항목은 명백한 차별"이라며 지난 2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지난 23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반려견 스타일리스트' 자격시험 주최 측이 '장애인을 차별했다'며 기자회견을 연 장애 인권단체 회원들. 사진 장애벽허물기 제공

지난 23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반려견 스타일리스트' 자격시험 주최 측이 '장애인을 차별했다'며 기자회견을 연 장애 인권단체 회원들. 사진 장애벽허물기 제공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시민단체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장애벽허물기)에 따르면 실기시험 당일 A씨는 감독관에게 "주의사항을 놓치고 싶지 않다"며 장애인 등록증을 보여줬다. 하지만 A씨는 "장애인은 이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는 즉시 퇴실 조치를 당했다. A씨는 이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애견미용학원에서 청각장애를 밝히고 수개월 동안 기술을 익혔고, 지난해 11월에는 필기시험에 합격한 상태였다.

지난 23일 장애벽허물기 측은 "A씨는 비록 장애가 있지만, 충분히 애견미용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며 "이번 퇴실 조치는 장애인차별금지법·국가인권위원회법에 위배되는 '차별 행위'"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A씨가 장애인 응시제한 내용을 미리 공지 받지 못해 시간과 응시료를 날려버렸다"고 했다.

19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0 반려동물박람회'에 참가한 애견미용학원 부스에서 강사들이 애견미용 시범을 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19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0 반려동물박람회'에 참가한 애견미용학원 부스에서 강사들이 애견미용 시범을 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주최 측 "반려견·미용사 안전 위해" 

장애벽허물기의 기자회견 직후 애견협회는 "장애인 응시제한 조치는 반려견과 미용사 모두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애견협회 측은 "지난해 지적장애인 미용사가 견주·반려견과 소통이 잘되지 않아 개의 꼬리를 자르는 등 사고가 있었다"며 "관련된 민원 전화가 많아 내린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과거 민간단체에서 장애인에게 '애견미용사' 자격증을 발급해 사고가 있었던 만큼, 최근 국가 공인을 받은 '반려견 스타일리스트' 자격증은 장애인에게 발급하지 않겠다는 주장이다.

'획일적 제한'이 문제 

하지만 이 같은 애견협회의 해명에 "획일적인 장애인 응시 제한은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당시 애견협회 공식 홈페이지에서 반려견 스타일리스트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고 규정한 '장애인'에는 반려견 미용 직무에 지장이 없는 왜소증으로 키가 작은 사람, 발가락이 없는 사람, 언어장애인 등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국화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PNR) 공동대표는 "반려견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협회 입장도 이해가 간다"면서도 "반려견 미용이 가능한 장애인들도 있는 만큼 장애 유형이나 정도에 따른 제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3일 한국애견협회가 운영하는 반려견 스타일리스트 자격 시험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고. 연령, 학력에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장애인은 응시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사진 홈페이지 캡처

23일 한국애견협회가 운영하는 반려견 스타일리스트 자격 시험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고. 연령, 학력에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장애인은 응시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사진 홈페이지 캡처

애견미용사는 과거 서울시 등 여러 기관에서 장애인의 추천 직업으로 소개되는 직업이기도 했다. 서울시장애인일자리통합지원센터가 2015년 발간한 장애인 취업 가이드북에는 "동물병원‧퍼피샵 등이 대기업화되며 장애인의무 고용률과 연계한 장애인 취업이 가능하다"며 "다만 시각·보행·양손사용은 필수 조건"이라고 적혀있다.

응시 불가 요건 삭제…"인권위 진정 취하 안 해" 

논란이 거세지자 애견협회는 '장애인 응시 불가' 요건을 삭제했다. 지난 26일 애견협회 관계자는 "장애인 응시제한 규정을 삭제해 응시를 제한하기보다는 자격취득 후 사후관리에 집중하겠다"며 "퇴실을 당한 A씨도 원한다면 4월과 6월에 있을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규정 철폐 소식을 들은 장애벽허물기 측은 "당초 우리의 요구는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른 세심한 규정을 마련해달라'는 것이었다"며 "애견협회 내에 장애인 취업과 관련된 직무를 신설하는 등 사후관리가 철저히 이뤄질 때까지 인권위 진정을 취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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