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넘도록 '롤러블폰' 특허 고심…제2 노키아 노리는 LG폰

중앙일보

입력 2021.03.28 05:00

업데이트 2021.03.28 11:52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 전면 재검토'를 선언한 지 두 달이 넘도록 뚜렷한 결론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LG전자가 '사실상 철수'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돌돌 말아서 확장되는) 롤러블폰 등 핵심 기술이 담긴 특허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MC(모바일 커뮤니케이션)사업부의 축소·매각·철수 등을 놓고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사진은 서울의 한 전자기기 매장에 전시된 LG전자 스마트폰 '윙'의 모습. 뉴스1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MC(모바일 커뮤니케이션)사업부의 축소·매각·철수 등을 놓고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사진은 서울의 한 전자기기 매장에 전시된 LG전자 스마트폰 '윙'의 모습. 뉴스1

원점 재검토 발표 두 달 넘게 고심

앞서 권봉석 LG전자 사장은 지난 1월 20일 임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현재와 미래의 경쟁력을 냉정하게 판단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스마트폰 사업 운영 방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사업을 맡은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사업본부는 지난 2015년 2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23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누적 적자가 5조원을 넘는다.

권 사장의 발언이 나온 직후 회사 안팎에서는 '해외 매각설'이 유력하게 대두했다. 베트남 빈그룹이나 미국 구글·페이스북, 독일 폴크스바겐 같은 기업과 물밑 접촉 중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24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라는 기존 입장이 되풀이되자, 매각이 사실상 무산됐다는 관측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구글 등 매각 대상자들은 MC사업부 통매각보다는 일부 조직만 인수하거나 지식재산권(IP)에 눈독을 들였고, 핵심 모바일 특허를 내놓지 않으려는 LG전자와 이해관계가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LG전자는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후 열린 컨퍼런스 콜에서 "핵심 모바일 기술은 단말뿐 아니라 스마트 가전, 자동차 전장 사업의 중요한 자산"이라며 "미래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다양한 내재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 매출과 영업이익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LG전자]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 매출과 영업이익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LG전자]

"스마트폰 특허 유지, 미래 사업과 시너지" 

누적된 적자에도 LG전자가 스마트폰 관련 특허를 매각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스마트폰 특허가 '신기술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LG전자가 보유한 스마트폰 관련 특허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한국 2396건, 미국 2162건, 중국 646건(글로벌 특허 조사업체 더웬트)이다. 삼성전자 특허(한국 2554건, 미국 5113건, 중국 1151건)보다는 적지만, 애플(한국 380건, 미국 2529건, 중국 519건)보다 많다. LG전자의 스마트폰이 더는 나오지 않더라도 이 특허들을 인공지능(AI)과 로봇, 전기차 등 차세대 기술 구현에 활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 특허의 효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구글과 모토로라다. 구글은 2012년 모토로라의 휴대폰 사업부를 125억 달러(약 13조9000억원)에 사들이면서, 모바일 특허 1만7000개를 획득했다. 이후 대다수 특허와 연구개발 부서는 남기고 2014년 중국의 PC제조업체 레노버에 29억1000만달러(약 3조원)를 받고 재매각했다. 특허청 관계자는 "구글은 모토로라 휴대폰이 아닌, 특허를 확보한 덕분에 스마트폰 안드로이드OS의 안정적 운영은 물론 전기차 OS로 사업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토로라에서 2007년 출시한 피처폰 레이저. [중앙포토]

모토로라에서 2007년 출시한 피처폰 레이저. [중앙포토]

구글·노키아·블랙베리, 특허 지켜 신사업 성공 

노키아·블랙베리는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특허를 지켜 신사업에서 성공한 사례다. 노키아는 2G폰의 절대강자로, 2008년 글로벌 휴대폰 시장 점유율이 39.8%에 달했다. 매출은 67조원이었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 등장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 2013년 특허권만 남기고 휴대폰 사업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했다.

노키아는 기존 특허는 물론 통신장비 회사인 지멘스네트워크(2013년)와 알카텔-루슨트(2016년) 등을 차례로 인수합병해 특허를 확보했다. 특허를 바탕으로 무선 네트워크 사업을 키워 2017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현재 화웨이(중국)·에릭슨(스웨덴)에 이어 5G 통신장비 부문 세계 점유율 3위다.

블랙베리는 스마트폰을 버리고 소프트웨어·전장 사업으로 탈바꿈했다. 2008년 미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44.5%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독보적인 인기를 끌었던 블랙베리 역시 아이폰 등장 이후 몰락했다. 연간 매출은 2011년 199억 달러(약 21조7100억원)에서 2017년 13억 달러(약 1조4100억원)로 곤두박질했다. 결국 2016년 스마트폰 자체 생산을 중단하고 중국 TCL에 스마트폰 개발과 생산, 마케팅 권한을 넘겼다.

사업 권한은 넘겼지만 무선 기술에 대한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 포트폴리오, 인력 유출은 최소화해 사업의 무게를 소프트웨어와 전장 사업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아마존웹서비스와 지능형 차량 데이터플랫폼 아이비(IVY)를 공동 개발한다는 소식이 발표되자 5달러 전후이던 블랙베리 주가가 20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쿼티 자판을 탑재한 양방향 호출기로 인기를 모았던 블랙베리. [중앙포토]

쿼티 자판을 탑재한 양방향 호출기로 인기를 모았던 블랙베리.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LG전자 역시 스마트폰 사업은 철수하되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을 활용해 전장사업 등 신성장 부문을 성장시키는 데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LG전자가 모빌리티와 전장, 로봇, AI 사업을 이어가려면 모바일에서 연관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며 "스마트폰 특허와 연구개발 인력을 유지하는 것이 AI 기반 통합 솔루션 기업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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