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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DNA도 못푼 아이 바꿔치기…"누군가 친모 도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7일 오후 경북 구미경찰서에서 3세 여아 사망사건의 친모인 A씨가 호송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오후 경북 구미경찰서에서 3세 여아 사망사건의 친모인 A씨가 호송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오후 경북 구미시 상모사곡동에 위치한 한 4층짜리 빌라. 언뜻 보기에는 주택가 사이에 있는 평범한 건물처럼 보였지만 주민들의 얼굴에선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건추적] #구미 여아 사망 사건, 팔수록 엽기행각 #혈액형·DNA 들이대도 친모는 “아니다”

대형 사건에 한적한 주택가가 언론사·유투버들로 어수선

이 건물 3층에서는 지난달 3세 여아가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이 발견될 당시만 해도 20대 엄마가 새 남편과 이사를 가면서 아이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 벌어진 엽기적 사건으로만 전해졌다. 하지만 최근 유전자(DNA) 검사 결과 외할머니로 알려졌던 A씨(48)가 숨진 아이의 친모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180도 뒤집혔다.

인근 공원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사 취재차량이 골목을 누비는가 하면 최근에는 유투버들도 진실을 밝히겠다며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통에 온동네가 어수선하다”고 말했다.

아이가 숨진 채 발견된 지 50일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사건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고 있다. 친모로 지목된 A씨가 아이를 바꿔치기했다는 혐의는 물론 자신의 출산 사실까지도 인정하지 않으면서다. A씨는 지난 8일 경찰에 긴급체포되고 검찰에 송치돼 수사를 받는 현재까지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북 구미경찰서 전경. 김정석 기자

경북 구미경찰서 전경. 김정석 기자

세 차례 DNA 검사에 혈액형도 불일치지만 혐의 부인 A씨 

경찰은 DNA 검사를 세 차례나 실시하고 인근 산부인과 100여곳을 뒤지며 A씨가 아이를 낳아 딸 B씨(22)의 아이와 바꿔치기했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구지검 김천지청도 다시 A씨의 DNA를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에 보내 검사를 의뢰한 상태다.

특히 최근에는 B씨가 출산을 한 2018년 당시 산부인과 의원 진료기록에서 결정적 단서를 확보했다. 진료기록에 나타난 신생아의 혈액형이 B씨와 전 남편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혈액형인 데다 숨진 아이로부터 채취한 혈액형과도 달라 아이 바꿔치기가 이뤄졌다는 단서가 된다는 설명이다.

경찰은 현재 구미시 한 산부인과 의원에서 당시 근무했던 관계자들을 상대로 공모 여부 수사에 착수했다. 이 산부인과는 A씨가 ‘아이 바꿔치기’를 한 것으로 경찰이 지목한 곳이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경찰은 B씨가 여아를 출산했던 2018년 당시 근무자들의 신상을 파악해 A씨와 친인척, 지인 관계가 있는지를 수사 중이다.

“숨진 아이 혈액, B씨와 전남편 사이선 나올 수 없는 경우” 

이와 함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에서도 숨진 아이의 혈액형과 유전인자가 B씨와 그의 전 남편 사이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경우의 수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는 A씨가 “(숨진 아이는) 내 딸이 낳은 딸이 맞다”고 하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증거다.

이처럼 미궁으로 빠진 사건은 재판에 넘겨져서도 진실공방이 치열할 전망이다. B씨는 지난 10일 살인과 아동복지법·아동수당법·영유아보육법 등 4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다음달 9일 대구지법 김천지원에서 첫 공판이 예정돼 있다. A씨도 검찰이 다음달 5일까지로 구속기간을 연장해 수사를 마친 뒤 재판에 넘겨질 예정이다.

경북 구미에서 3살 딸을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 B씨가 지난달 19일 살인 등의 혐의로 대구지검 김천지청으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경북 구미에서 3살 딸을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 B씨가 지난달 19일 살인 등의 혐의로 대구지검 김천지청으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이 사건을 되짚어보기 위해서는 2018년 B씨의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수사기관들에 따르면 B씨는 2018년 3월 구미시 한 산부인과에서 정상적으로 여아를 출산했다. 수사기관은 B씨가 출산한 시기에 조금 앞서 A씨도 여아를 출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A씨가 출산이 임박했을 때 인터넷으로 ‘혼자 출산하는 법’에 대해 검색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평소 입던 옷보다 치수가 큰 옷을 입은 정황도 나왔다.

경찰, 아이 바꿔치기 이뤄진 산부인과 특정해 수사 나서 

이후 A씨는 자신이 낳은 아이와 B씨가 낳은 아이를 바꿔치기 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B씨가 출산을 한 산부인과 의원이 아이 바꿔치기가 이뤄진 장소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사라진 B씨 딸, 즉 A씨 손녀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A씨의 남편이나 B씨, B씨의 전 남편은 이런 범행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일단은 보고 있다. 실제 A씨와 B씨가 지난해 10월 주고받은 스마트폰 메신저 대화에는 A씨가 “눈썹 빼곤 둘째(B씨가 새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첫째(숨진 아이)를 닮았다”고 했고, B씨가 “엄마(A씨)가 둘째 눈썹이 없다고 놀린다”고 적었다. B씨는 아이가 바꿔치기 됐다는 것을 몰랐다는 정황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경찰의 설명대로라면 A씨는 가족들 아무도 모르게 임신과 출산, 아이 바꿔치기까지 한 셈이 된다. 이럴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A씨의 아이 바꿔치기에 가족도 가담했을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다.

B씨가 전남편과 이혼한 것은 지난해 초였다. 이후 전남편은 아이를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 남편이 B씨에게 수 차례 아이와 만나게 해 줄 것을 요청할 때마다 B씨는 “아이가 잘 지내고 있다”며 사진 등을 보내준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를 홀로 빈 집에 남겨두고 떠난 뒤에도 지인들에게 여전히 아이를 데리고 살고 있는 것처럼 연락을 했던 정황도 있다.

홀로 남겨진 방에서 숨진 여아…진실은 과연 어디에

바꿔치기 된 여아가 집에 홀로 방치된 것은 지난해 8월 초다. B씨가 여아를 혼자 남겨둔 채 새 남편 집으로 이사하면서다. 빌라 바로 아래 층에는 A씨 부부가 살고 있었지만 여아가 남겨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난달 9일 방을 빼 달라는 집주인의 연락을 받은 A씨가 6개월여 만에 윗집으로 들어갔다가 숨진 여아를 발견했다. 당시 A씨는 곧바로 신고하지 않고 시신을 유기하려 시도했다가 포기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당시 A씨는 시신 유기를 중도에 포기한 이유에 대해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어 무서웠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17일 오전 경북 구미경찰서에서 김한탁 구미경찰서장이 '구미 여아 살인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오전 경북 구미경찰서에서 김한탁 구미경찰서장이 '구미 여아 살인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아는 이삿짐을 모두 빼 아무 것도 없는 빈 방에서 홀로 남겨져 아사(餓死)한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 당시 심하게 부패가 진행돼 미라화(化)가 된 상태였다. 국과수 역시 부패 정도가 심해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경찰은 DNA 채취 등을 마친 뒤 여아의 시신을 화장했다.

이 사건에서 미스터리로 남겨진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DNA 검사 결과는 A씨가 숨진 아이의 친모라고 가리키고 있지만 A씨가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는게 가장 큰 의문이다. A씨의 남편 등 가족들이 A씨의 임신·출산 사실을 정말 모르고 있었는지도 의문이 제기된다. 사라진 아이의 행방이나 숨진 아이의 친부 등도 수사당국이 밝혀야 할 숙제다.

구미=김정석·백경서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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