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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힐로드, 꿈을 비즈니스로 만드는 벤처캐피털 메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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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호 30면

디지털 걸리버여행기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의 중심지가 된 샌드힐로드로 가는 길. [사진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의 중심지가 된 샌드힐로드로 가는 길. [사진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산호세 방향으로 약 30㎞를 달리면 스탠퍼드대학 북쪽 출구 샌드힐로드를 만나게 된다. 이 대학 남쪽 출구 페이지밀로드를 둘러싸고는 스탠퍼드연구공원이 펼쳐져 있다. 이곳이 바로 실리콘밸리의 산실이다.

1972년 들어선 두 벤처캐피털 #창업 투자 혁명적 변화 이끌어 #실리콘밸리 혁신 생태계 형성 #시장 파괴적 비즈니스 용광로 #쿠팡의 초기 투자 벤처도 둥지

1970년 전후 이 일대를 글로벌 혁신의 메카로 만드는 중요한 일들이 자생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태평양 건너 한국은 막 산업화의 첫 걸음을 떼기 위해 포항제철 건설에 공을 들이고 있던 때다. 72년 먼지를 날리던 샌드힐로드에 두 벤처캐피털이 들어섰다. 클라이너퍼킨스와 세콰이어캐피탈이다. 이후 샌드힐로드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의 중심이 됐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실리콘밸리 혁신 생태계의 중요한 투자 결정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쿠팡의 초기 투자자인 알토스 벤처스도 여기에 있다.

월스트리트의 전통적 금융에 비해 벤처캐피털은 능동적 투자자다. 창업자에게 필요한 자본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노하우, 필요한 인재와 네트워크를 공급한다. 벤처캐피털은 연기금과 성공한 창업자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펀드를 조성한다. 실리콘밸리는 성공한 창업자와 예비 창업자, 벤처캐피털, 스탠퍼드와 버클리대학 교수 등 각 분야의 전문가, 한때는 스타트업이었던 구글 같은 대기업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혁신 스타트업 위한 거대 네트워크 작동

벤처캐피탈 회사인 클라이너퍼킨스와 세콰이어캐피탈은 1972년 샌드힐로드에 자리 잡았다. [사진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벤처캐피탈 회사인 클라이너퍼킨스와 세콰이어캐피탈은 1972년 샌드힐로드에 자리 잡았다. [사진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벤처에 특화된 로펌은 이 네트워크에서 생겨날 수 있는 분쟁을 최소화한다. 페이지밀로드에 위치한 실리콘밸리 제1의 로펌 WSGR도 70년 전후로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50년 이상 축적된 네트워크가 이 로펌의 자산이다. 필자의 경우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해 글로벌 SW기업 SAP와 인수합병(M&A)할 때 WSGR가 큰 도움이 됐다.

클라이너퍼킨스는 유진 클라이너가 톰 퍼킨스와 함께 설립했다. 두 사람은 각각 실리콘밸리 모태 기업인 페어차일드반도체와 휼렛패커드(HP) 출신이다.

엔지니어인 클라이너는 56년 노벨상을 수상한 트랜지스터 발명자 윌리엄 쇼클리의 반도체연구소 설립을 돕기 위해 같은 해 미국 동부에서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다음해인 57년 클라이너를 포함한 이 연구소의 젊은 기술자 8명은 쇼클리를 떠나 페어차일드반도체를 설립했다.

벤처캐피탈 회사인 클라이너퍼킨스와 세콰이어캐피탈은 1972년 샌드힐로드에 자리 잡았다. [사진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벤처캐피탈 회사인 클라이너퍼킨스와 세콰이어캐피탈은 1972년 샌드힐로드에 자리 잡았다. [사진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미국 항공산업 개척자인 셔먼 페어차일드로부터 150만 달러의 투자를 받은 ‘8인의 쇼클리 배신자’ 중에는 68년 인텔을 창업한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도 있었다. 노이스와 무어가 페어차일드를 떠나 인텔을 창업할 때 클라이너는 개인적으로 10만 달러를 인텔에 투자했다. 인텔 이외에도 AMD 등 많은 반도체 회사들이 페어차일드 인재들에 의해 탄생했다. 실리콘밸리 이름에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이 들어간 이유이다.

MIT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하고 하버드에서 MBA를 마친 퍼킨스는 63년 HP 창업자 휼렛과 패커드에 의해 연구행정 책임자로 발탁됐다. 그는 계측기 시장 혁신을 일으킨 HP가 미니컴퓨터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한 DEC의 시장에 진입하도록 이끌고 HP컴퓨터 사업본부의 첫 책임자가 됐다.

퍼킨스가 하버드에서 MBA를 할 때 벤처캐피털의 대부 조지스 도리엇 교수가 멘토였다. 2차 세계 대전 동안 미 육군에서 전투식량, 전투복 등을 연구 개발했던 도리엇 교수는 전쟁이 끝나자 군인들의 창업을 돕기 위해 칼 콤프턴 MIT 총장과 최초의 벤처캐피털 ARDC를 설립했다.

ARDC는 켄 올슨이 57년 보스턴에서 창업한 미니컴퓨터 회사 DEC에 7만 달러를 투자했다. 68년 이 회사가 상장하자 그 가치가 3800만 달러가 됐다. 500배 이상의 투자 수익을 낸 최초의 벤처캐피털 성공 스토리이다.

도리엇 교수가 동부에서 ADRC로 성공하는 것을 본 퍼킨스는 클라이너와 함께 서부에서 벤처캐피털을 시작했다.

클라이너퍼킨스는 제넨테크, 탠덤컴퓨터 등에 초기 투자했다. 76년 제넨테크에 투자한 25만 달러는 80년 상장할 때 640배로 불어난 1억6000만 달러가 됐다.

세콰이어캐피탈은 페어차일드와 내셔널반도체의 세일즈 임원 돈 발렌타인에 의해 설립됐다. 발렌타인의 첫 투자는 워너커뮤티케이션즈에 팔린 세계 최초의 게임기 회사인 아타리컴퓨터였다. 아타리에서 엔지니어 스티브 잡스를 만난 그는 78년 애플에 15만 달러를 초기 투자했다. 그는 오라클, 시스코에도 투자해 성공시켰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나이가 들자 발렌타인은 세콰이어캐피탈을 마이클 모리츠, 덕 레오니가 이끌도록 했다. 타임스 기자 출신인 모리츠는 인터넷 붐이 일자 스탠퍼드 대학원생 제리 양의 야후에 투자했다. 수작업으로 포털을 관리하던 야후의 문제를 알고 있던 모리츠는 스탠퍼드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 브린이 웹 검색 엔진을 개발해 찾아오자 이 회사에 투자했다. 모리츠도 일선에서 물러나고 현재는 필자도 만난 적이 있는 덕 레오니가 세콰이어캐피탈을 이끈다.

한편 페이지밀로드 남쪽의 스탠퍼드연구공원에는 70년 전설적인 제록스팔로알토리서치센터(PARC)가 들어섰다. PARC는 복사기 사업에서 큰 수익을 얻고 있던 제록스의 재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미래 오피스’ 창조 비전을 가지고 알랜 케이 등 세계 최고의 연구자들을 불러 모았다.

제록스PARC는 설립 다음해인 71년 레이저 프린터를 발명했다. 이어 73년 비트맵 윈도우와 마우스를 갖춘 세계 최초의 현대적 PC 알토(Alto)를 발명했다. 또한 이 알토PC들을 연결하는 이더넷 통신 기술과 알토의 소프트웨어 환경으로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 스몰토크와 GUI를 최초로 발명했다.

한국 벤처 생태계 업그레이드 시급

실리콘밸리의 두뇌 역할을 하는 스탠퍼드대학 교정. [사진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실리콘밸리의 두뇌 역할을 하는 스탠퍼드대학 교정. [사진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문서를 다루는 복사기 회사인 만큼 세계 최초로 비트맵 윈도우에서 마우스와 키보드로 문서 편집을 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으며 문서를 분석하기 위한 인공지능 자연어 처리 기술, 인공지능 언어 LISP에 최적화된 PC인 LISP 머신을 개발했다.

80년대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나는 PARC의 계산언어학 대가 마틴 케이 박사의 스탠퍼드 강의를 수강했다. 이후 박사논문을 쓰기 위해 많은 시간을 제록스 LISP 머신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보냈다. PARC에서 알랜 케이를 포함해 세 사람이 컴퓨터 분야 노벨상인 알랜 튜링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제록스는 PARC의 이 획기적 발명들을 사업화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79년 PARC를 방문한 24세 스티브 잡스는 알토의 데모를 본 후 흥분해서 물었다. 왜 이런 혁명적 기술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느냐고.

5년 뒤인 84년 애플은 비트맵 윈도우와 마우스, GUI로 인기를 끈 최초의 PC 매킨토시를 출시했다. 잡스는 후에 제록스가 이 중요한 발명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이해했더라면 IBM, 마이크로소프트(MS)를 합한 것보다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해 컴퓨터 산업 모두를 지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클라이너퍼킨스와 세콰이어캐피털은 초기부터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고객이 거부할 수 없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객이 고통스러워 하는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스텔스 모드로 조용히 준비해 빠르게 움직이면 거대한 골리앗도 이길 수 있다. 실리콘밸리 생태계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창업자들과 시장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을 가진 전문가들이 시장 파괴적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멜팅 스폿이다. 우리가 이런 생태계를 갖추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글로벌 시대에 가장 잘 만들어진 생태계의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여 우리의 벤처 생태계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싱가포르는 이런 면에서 우리보다 앞서 간다. 싱가포르 국부펀드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에 투자한다. 지난해 6월에는 독일의 바이오앤테크에도 지분 투자를 해서 싱가포르가 화이자 백신을 12월에 들여오는 데 일조했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서울대 전기공학사, 계측제어공학석사, 스탠퍼드대 박사. 2014~19년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초대 원장. 2002년 실리콘밸리에 실험실벤처를 창업했다. 이 회사를 인수한 독일 기업 SAP의 한국연구소를 설립해 SAP HANA가 나오기까지의 연구를 이끌고 전사적 개발을 공동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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