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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아파서, 가정 불화로…“상담·치료 문턱 높아 포기 일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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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호 10면

은둔형 외톨이로 사는 이유

사회적기업 K2인터내셔널 코리아가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는 청년을 지원하는 ‘은둔고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상담센터나 병원을 통해 해결하지 못하는 은둔 청년을 상담하고 관련 활동가를 양성한다. [사진 K2인터내셔널 코리아]

사회적기업 K2인터내셔널 코리아가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는 청년을 지원하는 ‘은둔고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상담센터나 병원을 통해 해결하지 못하는 은둔 청년을 상담하고 관련 활동가를 양성한다. [사진 K2인터내셔널 코리아]

32만명. 2017년 청소년정책연구원이 잠정 추정한 국내 15~39세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수다. 은둔형 외톨이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1970년대 일본에서 처음 등장했다. 집안이나 방안에 틀어박혀 세상과 담쌓고 지내는 사람을 뜻한다. 2000년대 들어 사회활동을 포기한 20~30대가 급증했고 2010년대 들어서는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에게서도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만성화된 취업난과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됐다는 패배감 의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으면서 은둔생활을 택하는 20·30세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관련 커뮤니티와 단체 채팅방, 오프라인 모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포기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우리 사회는 이들을 정상 궤도로 재진입하도록 이끌지 못하는 것일까.

중앙SUNDAY가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가까이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는 30대 남녀 3명에게 은둔형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에 관해 물었다.

방을 나서지 않고 지내게 된 계기는.
윤모씨(34·남·경기도 수원시)= 20대 중반부터 은둔형으로 지내고 있다. 만성기침을 앓기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어느 순간부터 기침이 계속 나더니 중증으로 번졌다. 병원에서는 원인도 모르고 완치도 어렵다고만 말한다. 기침이 심해지면 헛구역질까지 하니 정상적인 직장생활이 불가해졌다. 원래 헬스 트레이너로 일도 했었다.

박모씨(38·여·경기도 남양주)=어릴 적부터 가정불화가 심했다. 부모와 형제에게는 학대를 당했다. 초등학교 진학 후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학교에서 따돌림을 겪기까지 했다. 성인이 되고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화장실에 숨어 벌벌 떠는 내 모습을 보고 이상 징후를 느꼈다. 그때 회사를 바로 떠나고 방 안에서만 살기 시작했다.

김모씨(38·여·서울시 노원구)=나 역시 가족 문제가 가장 컸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없이 어머니랑만 생활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를 부양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 성인이 되고서 고시원, 반지하 전전하며 돈을 열심히 모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현타(현실을 자각하는 순간)’가 오더라. 그때가 27살이었다.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 탓에 디스크, 안구건조증이 생기면서 30살 넘어서는 활동 자체가 안될 정도로 몸이 아파졌다.

평소 외출도 일절 하지 않는가.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만 거실 생활을 안 한다. 가족 없을 때 잠깐 나와 밥 챙겨 먹는 정도다. 가족 때문에 생긴 행동이었는데 내가 말을 안 하니 가족들이 처음에는 엄청 답답해했다. 2~3년 전부터 심리치료와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원망스러운 감정은 많이 줄어들었다.

=나는 거실 생활 정도는 한다. 하지만 외출은 거의 안 한다. 일주일에 1번 정도 코인노래방 가는 게 유일하게 바람 쐬는 계기였다. 코로나19 유행하면서 그마저도 못 가고 있다. 평소 15시간씩 누워 TV보거나 휴대전화 하며 생활한다.

국내 15~39세 ‘은둔형 외톨이’ 32만 명

국내 15~39세 ‘은둔형 외톨이’ 32만 명

사실상 수입이 없는 상황인데 생활 유지는 어떻게 하나.
=혼자 산 지 10년이 넘었다. 다행히 LH 임대주택 대상자가 되어 2년 전부터 살고 있다. 월세 개념으로 내는 LH 이자 비용은 주민센터에서 받는 주거급여 월 26만 5000원으로 막고 있다. 그 외 생활비는 사실상 대출로 버티고 있다.

=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 속해 치료비나 기타 생활비를 지원받고 있다.

=아버지와 여동생 수입으로 네 식구가 살고 있다. 5월 초부터 다시 구직활동을 해보려고 이달에 운전면허 시험도 준비했다. 시험 신청지에 질병 여부를 체크하는 게 있었는데 우울증, 기분 장애를 표시했더니 면허 시험이 턱 막혔다. 5월 중순쯤 별도의 심사 결과가 있기 전까지는 시험 응시를 못 한다고 하더라. 이렇게 오래 막힐 줄 알았으면 솔직하게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은둔형으로 살아가면서 정부나 주변 사람에게 도움 요청해봤나.
=1393번호 통해 자살예방상담 콜센터를 이용한 적이 있다. 가장 쉽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콜센터였기 때문이었다. 근데 정작 통화 시간제한이 있다며 1시간도 채 이야기하지 못했다. 또 콜센터이기 때문에 마음에 맞는 상담사를 지정해 대화할 수도 없다고 하더라. 적어도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에 관해서는 공공 상담 서비스 문턱이 높으니 포기하기 일쑤다.

=주민센터와 지역 보건소 통해 미술 치료, 음악치료 등 상담 프로그램에 몇 번 참여해봤다. 하지만 치료라는 목적보다는 빨리 ‘정상’으로 만들어 사회에 진출하게 하려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 사람들 기준으로 말하면 ‘성과’가 나와야 하니까. 지역 내에서 마음에 맞는 상담사 찾기도 어렵고. 결국 사비를 들여서라도 민간 시설을 찾게 됐다.

무기력한 개인이 문제라는 시선이 여전히 강한데.
=절대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쉬쉬하게 한 게 우리 사회였다. 좋은 가정 환경, 학교 환경, 직장 환경을 잘 만들어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국가는 여전히 취직하는 사람,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처럼 ‘사람 만들기’에 집중한다. 그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이고.

=억울하다. 나는 열심히 일하며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병이 극복 안 되니 지난해 연말에는 심지어 700만원 가까이 들여 천도재까지 치렀다. 하다 하다 안되니까 정말 영적인 게 문제 아닐까 싶어서다.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 여전히 개인의 탓이라고 말할 수 있나.

=치료를 해보려고 대학병원처럼 큰 병원도 알아보고 찾아가려 시도도 했다. 하지만 진료 예약 잡기도 어렵고 거동이 힘든 상황에서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 나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데 겉모습이 멀쩡하단 이유로 친척들은 일 안 한다며 질책한다. 일이 없는 상황에서 치료비도 적지 않게 부담되고. 나도 은둔생활을 치료하고 사회생활을 빨리 재개하고 싶다. 나는 오죽 답답하겠나.

“은둔형 외톨이, 일자리뿐 아니라 복지·교육·주거 문제로 접근을”

임성수

임성수

“청년 은둔형 외톨이를 그대로 방치하게 되면 이들에게 40대, 50대 역시 없게 됩니다.”

임성수(사진)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HSAK) 대표의 말이다. 일본과 유사하게 국내 역시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청년들이 매년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사회 구성원으로 재개할 수 있는 국가적 도움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HSAK는 공공 서비스 의존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은둔 청년들의 심리 치료와 사회생활 재개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발족한 민간단체다. 스스로 은둔형 생활을 약 10개월간 지낸 임 대표는 “국가의 도움과 개입도 중요하지만 막연하게 기다리기보다는 당장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연대 설립 계기를 밝혔다.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당장은 자체적인 실태조사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가 없지 않은가. 물론 광주광역시가 올해 초 자체적인 실태조사를 했지만 이 분석이 전국 단위로 확대되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단절된 채 살아가는지 파악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일본 양상과 비교하자면.
“일본은 취업 빙하기였던 2000년대 전후로 청년들이 대거 사회와 단절된 삶을 택했다. 우리나라도 취업난이 길어지면서 그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고. 현재 일본은 은둔형 외톨이 이슈가 장기화하면서 중장년층에게까지 퍼져나가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중장년층에 비해 젊은 세대가 많이 겪고 있다 보니 다른 연령대로 확대되기 전에 빨리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가든 민간이든 이들을 찾아내는 게 쉽지 않은데.
“그러니까 은둔형 외톨이 아니겠는가. 대부분 집안에서만 생활하니까 가시적인 조사를 끌어올리기 힘들다.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이들이 직접 문 열고 상담하러 오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기관에서 먼저 찾아가 라포(상호신뢰관계) 형성에 나서야 한다.”
일자리 제공만으론 해결이 안 될 것 같은데.
“당연하다. 양질의 일자리도 풍부해야 하지만 동시에 복지 지원도 마련돼야 하고 적절한 교육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은둔을 택하는 이유가 사람마다 다양하듯이 특정한 영역만으로 풀 수 없는 문제다. 은둔형 외톨이는 고용문제이면서 동시에 복지, 교육, 주거, 문화의 문제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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