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계 노벨상 8명 받은 일본의 비결은?

중앙선데이

입력 2021.03.2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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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호 21면

전후 일본 건축

전후 일본 건축

전후 일본 건축
조현정 지음
마티

안도 다다오, 이토 도요, 반 시게루. 이런 일본 건축가들의 이름은 건축 문외한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이들이 설계한 국내 건축물이 그 사실만으로 명소가 되다시피 한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라는 점이 이들의 공통점인데, 더욱 놀라운 점은 일본에 다섯 명이나 더 있다는 사실이다. 수상자 말이다. 1979년 생긴 프리츠커상의 최다 수상국이라고 한다.

한국은? 이제나저제나 헛물만 켜고 있다. 아파트 망령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한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있는 모양이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런 궁금증을 파고들어 ‘국뽕’ 심사를 자극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현격한 차이의 원인을 짐작하게 된다.

교토 외곽의 가쓰라 이궁. 모더니즘 요소를 갖춘 대표적인 일본 건물로 꼽힌다. [사진 마티]

교토 외곽의 가쓰라 이궁. 모더니즘 요소를 갖춘 대표적인 일본 건물로 꼽힌다. [사진 마티]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인 저자는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에서 건축사를 공부했다. 일본 현대건축에 대한 한국인들의 무관심이, 한국 건축에 드리운 일본의 그림자를 부정하고 싶은 후기 식민주의적 욕망의 발로라고 꼬집었다. 차츰 이제까지의 터부에서 벗어나 지적 욕구가 커지고 있다는 전제 아래, 제목대로 전쟁 이후, 그러니까 1945년부터 현재까지 굵직한 건축가들의 작가론을 중심으로 일본 건축사를 살폈다. 단순히 나열식 열전(列傳)이 아닌 이유가 책 제목에 ‘전후’를 집어넣어 강조한 데 있다. 저자에 따르면, 전전(戰前)의 군국주의와 차별화된 민주주의, 평화주의, 경제성장을 특징으로 하는 가치 공간이 전후다. 이렇게 분류한다고 해서 책에서 거론한 건축가들이 전전과 비교하면 마냥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한 태평성대를 누렸던 건 아니다. “폐허가 된 도시의 물리적 재건을 넘어, 제국주의 과거와 전쟁 기억, 계속되는 냉전의 불안과 싸우며 일본 건축의 새로운 정체성을 정립”해야 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12쪽)

가령 전후 건축가 1세대 대표 격인 단게 겐조(1913~2005)는 일본이라는 국가를 표상하는 기념비적 건축을 도맡았던 ‘국가 건축가’였다. 히로시마 평화공원(1954년), 신도쿄도청사(1991) 등이 그의 작품이다. 하지만 그는 군국주의 협력자였다. 건축가라면 대동아 공영권의 주춧돌이 되는 새로운 건축 양식을 창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게 한때 소신이었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 그런 과거에 대한 반성의 소산으로, 지역주의적 요소를 배제한 모더니즘을 채택하면서도 농경 사회였던 야요이(弥生) 시대 이전 조몬(縄文) 시대의 생명력에서 일본적 정체성의 뿌리를 찾았다. 아이러니한 대목은 일본적이면서도 모던한 건축 디자인의 원류로 그가 꼽은 건물이 이세 신궁과 가쓰라 이궁이었다는 점이다. 천황제의 상징 건물 말이다. 그런데 바우하우스 초대 교장을 지냈던 독일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1954년 일본을 방문해 “시간을 초월한 근대성”을 갖추고 있다고 가쓰라 이궁을 극찬한다. 지금 일본 건축이 누리는 국제적 성가에는 내력이 있다는 얘기다.

안도 다다오 등 일본의 프리츠커 수상자들은 말하자면 단게 겐조의 ‘정신적 후예’들이다. 계승이나 극복, 어느 편에 섰든 말이다. 단게 자신이 1987년 일본의 첫 수상자였다. 부러운, 치열하고 역동적인 것 같기 때문에 더 부럽게 느껴지는, 일본 건축에 대한 탐구서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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