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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작사 노래, 송창식이 윤여정 생일 선물로 불러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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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호 16면

[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예스터데이 〈5〉 ‘쎄시봉 시인들’

1971년 한 파티에 초대받은 김세환·윤형주·이장희·송창식씨(왼쪽부터). 음악다방 쎄시봉 멤버들은 70년대 초반 ‘우리는’ ‘우리들의 이야기’ 등 노랫말이 아름다운 가요들을 쏟아냈다. [사진 윤형주]

1971년 한 파티에 초대받은 김세환·윤형주·이장희·송창식씨(왼쪽부터). 음악다방 쎄시봉 멤버들은 70년대 초반 ‘우리는’ ‘우리들의 이야기’ 등 노랫말이 아름다운 가요들을 쏟아냈다. [사진 윤형주]

제3회 때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에 대해 쓴다고 우리나라 최고의 테너 박인수 형과 내 친구 이동원이 부른 ‘향수’를 소개하던 중 작사가 정지용이 얼마나 위대한 시인인지 그걸 강조하느라고 정지용이 세계 최고의 서정시인이라고 쓰면서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에 이의가 있는 사람은 곧장 중앙SUNDAY 담당자에게 연락하라고 썼다.

‘길가에 앉아서’‘좋은 걸 어떡해’ 등 #윤형주·이장희, 김세환에 노래 줘 #나도 ‘내 고향 충청도’ 등 가사 써 #고교 때 국어 실력으로 ‘명시’ 쓴 셈 #미국에 가 살며 마종기 시인 만나 #이상·윤동주·엘리엇 등 시 공부

나는 그렇게 쓰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가깝게 지내던 친구로부터 내 연재가 재미있다고 격려를 해주다가 시인 정지용이 훌륭하긴 하지만 세계 최고의 시인이라고 못을 쾅쾅 박은 건 좀 지나친 처사가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내 친구는 내가 오버한 것 같다는 얘기였다.

나는 짐짓 수긍하면서 한편 잘됐다 싶었다. 내가 평소 하고 싶은 얘기를 이번 기회에 털어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지용 ‘해설피’ 영어·중국어로 표현 못해

독자님들께선 다소 재미가 떨어져도 참아주시길 바란다. ‘향수’의 작사가 정지용이 세계 최고의 서정시인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시(詩)를 써먹는, 그러니까 시를 향유하는 우리나라의 특수 구조부터 얘기해야 한다. 가령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노래의 작사다 하면 작사의 내용이 아닌 노래에 건성 따라붙는 글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내가 지금 “독자님! 정지용이 쓴 ‘향수’라는 노랫말 가사가 분명 노랫말 가사임에 틀림없지만, 독자님! 그 가사는 굉장히 훌륭한 순수시입니다. 멋진 서정시입니다”, 이렇게 얘길 하면 “정씨가 썼다는 ‘향수’의 가사가 그럼 진짜 시라구?” 되묻게 될 거다. 보통의 경우 나는 또 “독자님, 노래가사와 시가 따로 노는 건 아닙니다. 모든 노랫말 가사는 시입니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산토끼 토끼야, 학교 종이 땡땡땡, 동해 물과 백두산이, 이런 것들이 전부 훌륭한 시입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이런 김소월의 시처럼 똑같은 시입니다. 제가 쓴 저의 노래인 ‘일사후퇴 때 피난 내려와 살다 정든 곳 두메나 산골’ 이것은 멀쩡한 시이구요”라고 말할 거다.

〈중앙SUNDAY 3월 13일자 16면〉

〈중앙SUNDAY 3월 13일자 16면〉

따라서 정지용이 쓴 ‘향수’라는 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지줄대는’이 얼마나 귀엽습니까. 이런 말은 영어권에도 없는 말입니다)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휘돌아 나가고’도 영어로는 표현이 안 되는 우리만 가진 우리끼리만 알아먹을 수 있는 우리 조상님이 주신 알토란 같은 낱말들입니다)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해설피’. 아! 얼마나 아련하고 청아한 낱말입니까. ‘해설피 금빛’, 이 말도 영어나 중국어나 심지어 일본어로도 표현해낼 수 없는 우리만의 보물 같은 낱말입니다)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아! ‘게으른 울음’. 세상 어디에 어느 나라에 이런 적확한 표현력이 존재한단 말입니까)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차마’라는 낱말도 우리만의 어처구니없이 예쁜 말입니다. 물론 영어에도 없죠)”는 시 중의 시다.

정지용의 노랫말 가사는 원래 우리네 근대 시문학사상 길이 빛나던 서정시(독자님! 얘기를 자꾸 끊어서 죄송한데요. 시는 크게 서사시와 서정시 두 부류로 나뉘는데요. 서사시는 『오디세이』 같은 긴 얘기를 하는 방식의 주로 긴 시를 말합니다) 분야에 최고봉으로 숨어 있던 것을 내 친구 술 좋아하는 한량 이동원이 무슨 꿍꿍이속이 있었는지 그걸 낑낑대고 끄집어내 대중가요 전문 작곡가 최진희의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사랑의 미로여’를 작곡한 김희갑 선배에게 가져가 그 시에 가락(곡)을 붙여달라고 해서, 그걸 우리의 김희갑 선배가 애당초부터 두 명이 함께 노래하는 방식인 이중창곡 듀엣으로 만들어 우리나라 최고의 테너 박인수 형과 함께 불러 대박을 친 거다. 우리의 김희갑 선배에게도 박수를 좀 보내주시길!

분명 말하겠다. 노랫말 가사는 엄연한 시다. 다시 말하겠다. 이번엔 큰 소리로 말하겠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도 엄연한 시이고,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도 분명 시다. 시의 일종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쎄시봉 친구들은 위대한(?) 시인들이었다.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거기다 나까지 해서 웃지 마시라, 나도 시를 썼다. ‘내 생애 단 한 번만’ ‘내 고향 충청도’ ‘딜라일라’ 등은 내가 쓴 노랫말 용도의 시들이다. 송창식의 ‘우리는’, 이장희가 최인호와 공동으로 썼다는 시 ‘그건 너’, 윤형주가 쓴 ‘우리들의 이야기’ 등은 천하의 명시들이다. 최인호를 제외하고 우리들 중에 시 쓰는 걸 따로 공부한 인간은 없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때 배운 국어 실력으로 그런 명시를 써냈으니까 우린 모두 준천재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때 우리는 돈도 없었지만 욕심도 없었다.

쎄시봉 때 우리는 우리가 시를 쓸 줄 안다는 자각도 할 줄 몰랐다. 그냥 써내는 것으로 알았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왼쪽)과 재미 의사 겸 시인 마종기씨. [중앙포토

‘향수’의 시인 정지용(왼쪽)과 재미 의사 겸 시인 마종기씨. [중앙포토

김세환이 이렇다 할 노래가 없는 걸 알고 형주가 먼저 세환이한테 ‘길가에 앉아서’를 주고, 이어서 장희가 또 세환이한테 ‘좋은 걸 어떡해’를 주고, 창식이가 세환이한테 ‘사랑하는 마음’을 주고, 이번엔 장희가 형주한테 ‘비의 나그네’를 주고, 장희가 뒤늦게 나한테 준 노래가 바로 ‘불꺼진 창’과 ‘안녕’이다. 이런 얘긴 형주한테 전화를 해서 알아낸 얘기들인데 윤여정 생일 때 장희가 작사한 걸 즉석에서 생일선물로 창식이가 불러준 노래가 ‘창밖에는 비오고요’였다.

저작료가 평생 나온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그때는 병자호란 직후다. 그런 용어조차 없었다) 세환이한테 가는 노래나 평생 탐나던 창식이의 ‘우리는’, 장희의 ‘그건 너’, 형주의 ‘우리들의 이야기들’ 등을 내가 두 살 위(놈들은 모조리 나보다 두 살씩 아래다. 윤여정을 포함해서) 형이라는 이름으로 가로챌걸. 아! 후회가 막심하다.

윤동주 ‘서시’ 푸시킨 시보다 가슴 아려

지금부터는 내가 왜 요절 시인 이상(李箱)을 숭배하게 됐는지, 도대체 시라는 게 뭔지, 정지용은 어떻게 알게 됐는지에 관해서 쓰겠다. 쎄시봉 시대를 벗어나 나는 정식 가수가 되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빌리 그래함 목사 팀의 초청으로 미국에 가서 살게 됐는데 학생 신분으로 알바 삼아 미국 도시 순회공연 중 알게 된 사람이 바로 마종기 시인(그는 방사선과 전문의사다)이었다. 오하이오 주 털리도 시에서 공연과 간증(그때 난 신학대 재학 중이었다)을 할 때 유난히 내 말에 숨넘어가듯 깔깔깔대며 특이한 반응을 보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마종기 시인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몇 년간 수시로 만나 부부간의 친교를 다졌는데 우리는 그를 닥터 지바고를 빗댄 마바고라고 불렀다. 시인을 만나 좋은 말 상대가 되려면 최소한의 시를 배워야 한다며 나는 T. S. 엘리엇의 두꺼운 시 입문서를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하여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나를 이상야릇하게 사로잡는 이상을 다시 떠올리게 됐고 내친김에 매달려 우리 정지용(‘향수’의 작사가)이 무시무시한 시인, 급기야는 정지용이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의 서정시인이라는 결론에까지 이르게 된다. 소위 예술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문학도 그렇다. 간단하게 말해서 우기는 놈이 장땡이다. 가령 내가 그림 한 점을 그려 놓고 이것은 세계 최고의 미술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가격은 100억원이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소릴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내 그림은 다빈치의 ‘모나리자’보다 더 값나가는 그림이라고 떠들어도 법에 걸리질 않는다. 그냥 우기면 된다. 잡아떼면 되는 거다. 그래서 난 늘 자신 있게 큰소리로 외친다. “정지용은 세계 최고의 서정시인이다”라고 말이다.

이런 때 미친놈, 정신 나간 놈, 소리를 안 듣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방어책을 강구해 둬야 한다. 대책을 세워놓는 거다. 그게 바로 공부라는 거다.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서 나는 이상의 시에 관한 책을 쓰기로 작정했다. 이상을 정말 좋아하는데 이상 시에 대한 변변한 해설서가 도무지 없는 걸 알았다. (너무 난해해서 엄두를 낼 수가 없는 시라서 그렇게 됐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에라이 썅! 하고 내가 한 번 쓴다고 덤빈 거다. 너무도 난해 일변도의 시를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냥 보통 시도 들여다볼 기회가 생기고 그러다 정지용 시에 스톱! 하게 된다.

나는 한편 정지용의 시는 도대체 어느 수준인가(이상의 시는 전혀 다른 쪽 영역이었다) 찬찬히 알아보기 위해 내 나름의 방법으로 알아가기 시작한다. 우선 유명세를 타는 시인들의 리스트, 가령 T. S. 엘리엇, 보들레르, 랭보, 에드거 앨런 포의 시들과 우리 쪽 대표시인들 김기림, 김소월, 윤동주, 백석, 정지용 등의 시들과 맞비교 분석하는 방법으로 공부를 하다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랄만한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이건 맨입으로 털어놔선 안 되는데 내가 큰맘 먹고 중앙SUNDAY 독자님들께만 털어놓겠다.

그건 바로 우리네 시인들의 감성이 외국의 어떤 시인보다 월등히 깊고 넓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외국의 경우처럼 그런 방면의 정상적 교육이 모자란 탓에 우리 스스로 밖으로 표출을 맘껏들 못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를 아주 좋아한다. 그걸 윤동주의 ‘서시’와 맞대서 비교해보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푸시킨의 시는 편하게 읽히며 내려간다. 아주 쉽고 평이하다. 그러나 윤동주의 ‘서시’를 읽을 땐 시작 부분부터 읽는 이의 가슴을 에이게 한다. 푸시킨은 읽어봐야 ‘아! 좋은 소리, 좋은 내용’으로 끝나지만 윤동주의 시는 읽고 나면 읽는 이의 주먹을 쥐게 하고 마음을 비장하게 만든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의 정지용은 보들레르, 랭보, T. S. 엘리엇, 포 등을 진작에 넘어섰다. 증거가 있다. (나는 5년간 재판을 겪은 사람이다. 재판 때는 증거가 최우선이다. ㅎㅎ) 정지용의 시 ‘향수’가 증거다. 어느 누가 내 앞에 ‘향수’보다 더 멋진 서정시를 증거로 갖다 댄다면, 그래서 더 멋져 보였다면 나는 그 순간부터 붓을 꺾겠다. 빌어먹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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