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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죽음 당한 美국조 흰머리독수리···27년 미스터리 뜻밖 범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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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사냥하는 흰머리독수리. AP=연합뉴스

물고기를 사냥하는 흰머리독수리. AP=연합뉴스

1994년부터 미국 남동부 아칸소 지역을 중심으로 흰머리독수리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미국 연구팀 사이언스에 논문 #수초 제거용 제초제 브롬 성분이 #시아노박테리아 독소 생성 유도 #먹이사슬 따라 축적되면서 발병

몸이 마비되거나 경련을 일으키다가 죽은 독수리의 뇌에는 전에 볼 수 없던 변화가 눈에 띄었다.
뇌가 부어오르고 액포(미세한 주머니)가 생겨난 것이다.

미국 국조(國鳥)인 흰머리독수리가 죽어가자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원인은 쉽게 파악되지 않았다.
이듬해까지 미국 남동부에서는 아칸소를 비롯한 4개 주(州)의 10여 개 댐·저수지 근처에서 70여 마리 이상의 독수리가 숨졌다.

여기에 올빼미·물닭·청둥오리 등 다른 새들도 이 병을 앓다가 숨지는 사례까지 보고됐다.
이 병은 조류 액포성 골수병증(Avian vacuolar myelinopathy, AVM)으로 불리게 됐다.

나중에는 양서류·파충류에서도 병이 발견되면서 이 병은 액포성 골수병증(VM)이란 이름으로 굳어졌다.

새들은 주로 겨울철에 VM으로 죽어갔는데, 그 이유도 오리무중이었다.

먹이사슬을 통해 피해 확산 

시아노박테리아 독소로 인해 흰머리독수리가 죽는 과정을 나타낸 그림. 물속 수초에 붙어 자라는 시아노박테리아(A. hydrillicola)는 신경독소(AETX)를 생성한다. 물닭이나 거북이, 달팽이, 물고기가 독소에 오염된 수초를 먹으면 액포성 골수병증(VM)에 걸리게 된다. 이들 새나 물고기를 먹은 포식자, 즉 흰머리독수리 역시 액포성 골수병증에 걸리게 된다. 그래픽=사이언스

시아노박테리아 독소로 인해 흰머리독수리가 죽는 과정을 나타낸 그림. 물속 수초에 붙어 자라는 시아노박테리아(A. hydrillicola)는 신경독소(AETX)를 생성한다. 물닭이나 거북이, 달팽이, 물고기가 독소에 오염된 수초를 먹으면 액포성 골수병증(VM)에 걸리게 된다. 이들 새나 물고기를 먹은 포식자, 즉 흰머리독수리 역시 액포성 골수병증에 걸리게 된다. 그래픽=사이언스

학자들은 독수리 등의 사체를 부검해 세균·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나, 골수의 부종을 일으키는 헥사클로로펜 같은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 여부를 조사했지만, 증거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27년 동안 원인을 찾지 못해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이 병(VM)의 원인이 마침내 밝혀졌다.

미국 조지아대학의 수잔 와일드 교수 등은 25일(현지 시각)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흰머리독수리 등에서 나타난 VM은 시아노박테리아가 만든 독소가 원인"이라고 밝혔다.

시아노박테리아는 남조류라고도 불리는 광합성을 하는 원핵생물이다. 국내에서도 여름철에 발생하는 녹조의 원인 생물이기도 하다.

연구팀은 오랜 조사 끝에 수초를 제거하기 위해 뿌린 제초제에 든 브롬 성분이 발단이 된 것을 확인했다.

브롬 성분에 노출된 시아노박테리아가 독소를 생산하고, 이 시아노박테리아를 먹은 물닭·청둥오리 등 새들의 몸에 독소가 축적됐다는 것이다.
또, 새를 잡아먹은 독수리가 독소에 노출돼 독수리까지 떼죽음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독소가 먹이사슬을 따라 올라가면서 체내에 축적이 돼 피해를 준 것이다.

알고 보면 비교적 간단한 메커니즘인데, 밝히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아노박테리아 독소를 의심

낙동강에서 채집된 남조류(시아노박테리아) 아나베나(Anabaena flos-aquae)의 광학 현미경 사진. 여름철 녹조 발생의 원인 생물이다. 사슬형태로 돼 있으며 사슬 중간에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세포도 있다.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낙동강에서 채집된 남조류(시아노박테리아) 아나베나(Anabaena flos-aquae)의 광학 현미경 사진. 여름철 녹조 발생의 원인 생물이다. 사슬형태로 돼 있으며 사슬 중간에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세포도 있다.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연구팀은 병원체도 아니고 유해물질도 아니라는 점에서 시아노박테리아의 독소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연구팀은 VM이 발생한 곳이 댐·저수지 등 인공 호수이고, 이곳에서는 물속에서 자라는 침수식물인 검정말(Hydrilla  verticillata)이 자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또, 검정말 표면에서 특정 시아노박테리아가 붙어 자란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 시아노박테리아는 나중에 에토크토노스 하이드릴리콜라(Aetokthonos  hydrillicola)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시아노박테리아가 생성한 독소 때문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밝히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시아노박테리아를 실험실에서 대량 배양해 거기서 독소를 추출하려 했지만, 실제 시아노박테리아를 배양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성장 조건을 파악하기가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더욱이 실험실에서 배양한 시아노박테리아에서는 VM을 일으킬 만한 독소가 검출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고성능 분석기기를 동원해 호수 현장에 직접 나가서 시아노박테리아 독소를 검출해내기로 했다.
현장에서 분석한 결과, 브롬 원자가 포함된 대사산물 몇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브롬 대사산물은 2014년 11월 조지아주 저수지에서 VM으로 죽은 물닭 사체에서도 검출이 됐다.
독수리를 죽인 독소 후보물질을 찾아낸 것이다.

브롬이 있어야 독소 만들어 

미국 남동부 액포성 골수병증(VM) 발생지역. VM 발생지역은 빗금으로 표시돼 있고, 독소를 생성하는 시아노박테리아가 관찰된 지역은 붉은색으로 표시됐다. 자료=사이언스

미국 남동부 액포성 골수병증(VM) 발생지역. VM 발생지역은 빗금으로 표시돼 있고, 독소를 생성하는 시아노박테리아가 관찰된 지역은 붉은색으로 표시됐다. 자료=사이언스

연구팀은 실험실에서 배양한 시아노박테리아가 독소 후보물질을 만들지 못한 것은 배지에 브롬을 첨가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판단했다.

연구팀은 다시 실험실로 돌아와 시아노박테리아 배양지에 브롬을 첨가했고, 그 결과 브롬이 포함된 대사산물이 생성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이후 이 독소 물질을 분리하고 구조를 분석해 에토크토노톡신(Aetokthonotoxin, AETX)이란 이름을 붙였다.
또, 시아노박테리아 유전자를 분석해 이 독소가 만들어지는 생합성 과정도 밝혀냈다.

연구팀은 이 독소를 건강한 닭에게 먹인 뒤 VM이 나타나는 것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시아노박테리아의 AETX 독소지만, 모든 문제의 시작은 브롬이었다.

이에 따라 인공호수 관리자들은 수초를 없애기 위해 뿌린 브롬 제초제가 원인 제공자로 지목됐다.

호수 주변에서 들어온 브롬화 난연제나 도로 제설제 등도 원인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브롬화(化) 난연제는 화재 발생 시 불이 잘 붙지 않도록 커튼 등에 첨가하는 화학물질인데, 브롬 성분이 포함된 것을 말한다.

새들이 겨울에만 죽은 까닭은

북한강 소양호. 수심이 깊은 호수는 여름철 표층과 저층의 물이 섞이지 않는 성층화 현상이 나타난다. 봄과 가을에 물이 섞이면서 저층의 영양물질이 표층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중앙포토

북한강 소양호. 수심이 깊은 호수는 여름철 표층과 저층의 물이 섞이지 않는 성층화 현상이 나타난다. 봄과 가을에 물이 섞이면서 저층의 영양물질이 표층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중앙포토

일단 호수에 들어온 브롬 성분은 여름철에는 호수의 성층화 현상 때문에 바닥에 가라앉게 된다.
성층화 현상은 호수 표층의 수온이 더 높고, 바닥(저층)이 차가워 호숫물이 섞이지 않고 층을 이룬 상태를 말하는데, 여름철에 나타난다.

늦가을이 돼 호숫물의 표면의 온도가 내려가고 바닥층의 수온과 같아지면 호숫물이 섞이기 시작한다.
이때 바닥에 고여있던 브롬 성분이 표층으로 올라오고, 이것을 바탕으로 시아노박테리아가 독소를 생성하는 것으로 연구팀은 설명했다.

새들이 겨울철에 VM으로 집중적으로 죽은 것도 늦가을부터 브롬에 노출된 시아노박테리아가 독소를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험실 내 실험에서는 브롬 농도가 높을 때, 수온이 낮아질 때 독소를 더 많이 생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브롬 등이 포함된 제초제를 호수에 뿌리는 것보다 물고기를 이용해서 수초를 제거할 것"을 제안했다.
불임 상태인 물고기를 활용하면 수초는 제거하고, 물고기 숫자가 지나치게 늘어나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조지아와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경계에 위치한 한 저수지에 미 육군 공병단이 물고기를 풀어 수초는 제거한 결과, 흰머리독수리의 폐사가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미나마타 병 환자.

일본 미나마타 병 환자.

한편, 시아노박테리아 독소로 인한 미국 흰머리독수리 떼죽음은 1950~60년대 일본 미나마타병을 연상하게 한다.
오염물질 배출과 미생물, 먹이사슬이 공통으로 등장한다.

일본의 미나마타병은 질소비료 공장에서 배출한 수은이 바다 퇴적토에서 미생물에 의해 유기수은(메틸수은)으로 바뀌고 이것이 먹이사슬을 따라 축적이 되면서 물고기를 먹은 사람들이 큰 피해를 봤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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