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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오늘 아침 남편 얼굴, ‘마티스의 그림 속 아내’인가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남(95)

얼마 전 앙리 마티스 특별전 전시를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조금 더 좋아지면 가봐야지 하다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탓에 평일 오후 전시장을 찾았습니다. 운 좋게 시간대가 맞아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을 관람하는데 아내의 얼굴을 그린 그의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다 동감의 웃음이 납니다.

100년 전만 해도 화가가 모델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일반인이 캔버스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는 쉽지 않았죠. 특히 마티스는 인체를 마음대로 변형하고 색채를 거침없이 구사한 탓에 선뜻 모델이 되겠다는 여성이 더욱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마티스는 대부분의 화가처럼 아내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죠. 야수파 하면 대표주자로 떠올려지는 앙리 마티스의 아내 ‘아멜리 파레르’는 마티스의 조형 세계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고 합니다. 그를 야수파의 대표주자로 떠오르게 한 작품의 모델도 그녀였죠.

마티스는 ‘모자를 쓴 여인’(사진)의 주인공인 아내와 부부싸움 후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감정을 색으로 표현했다는 말을 남겼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마티스는 ‘모자를 쓴 여인’(사진)의 주인공인 아내와 부부싸움 후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감정을 색으로 표현했다는 말을 남겼다. [사진 wikimedia commons]

1905년 가을에 열린 살롱전에 출품한 ‘모자를 쓴 여인’은 살롱전의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이었습니다. 마티스의 아내인 파레르가 그림 속 오른손에 부채를 들고 모자를 쓴 채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은 우아하고 단아합니다. 그러나 색채가 파격적이었죠. 흔히 떠올려지는 피부색이 아닌 그림 속 아내의 얼굴은 파랑, 초록 등 얼굴을 표현하는 데 쓰이지 않는 생소하고 부자연스러운 색상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에 아내는 불같이 화를 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마티스는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색을 자유롭게 풀어 사용하며 주관적인 감정으로 재해석한 색채로 캔버스를 가득 채웠죠. 이는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나 자유분방하고 거칠어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 동물을 연상케 했고, 이는 야수파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마티스는 ‘모자를 쓴 여인’의 주인공인 아내와 부부싸움 후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감정을 그러한 색으로 표현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붉으락푸르락 정돈되지 않은 마음으로 바라본 아내의 얼굴이 마티스에게는 파랑, 초록의 느낌으로 전해진 모양입니다. 그렇게 듣고 보니 그림 속 얼굴의 색채가 충분히 이해됩니다.

어떤 날은 더없이 고맙고 감사한 존재로 여겨지다가도 또 어떤 날은 생각 없어 보이는 말 한마디에 그리 미워 보일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변할 리 없는 얼굴인데 맞이한 상황과 기분에 따라 같이 사는 사람의 얼굴이 샤방샤뱡 빛이 났다가도 마티스의 그림 속 아내처럼 변하기도 합니다. 내가 그렇다면 상대도 마찬가지죠.

상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상대방이 하기 나름인 듯 보이지만 실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사진 pixabay]

상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상대방이 하기 나름인 듯 보이지만 실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사진 pixabay]

요즘 내 아내, 남편의 얼굴은 어느 순간에 더 오래 머물러 있나요? 그리고 함께 사는 그 사람의 얼굴이 샤방샤방 빛이 나는 듯 느껴졌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나의 순간들을 생각해 봅니다. 식물 키우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나가기 전 화초를 살피는데, 며칠 전 화분에 물을 주고 나갈 준비를 하던 남편이 오늘 시간이 있냐 묻습니다. 왜냐고 묻는 내게 남편은 시간이 있으면 잠시 꽃향기를 맡고 나가는 것이 어떻겠냐 말합니다. 어느 순간 화초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거죠. 잠시나마 뭐 귀찮은 일이라도 맡기려는 거 아닌가 스치듯 생각했던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물론 매번 이런 달콤한 말을 주고받지는 않지만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해야지 생각했던 아침이었습니다.

순간의 감사함을 차곡차곡 쌓아둘 수 있다면 마티스의 그림 속 아내처럼 남편이 보이는 순간, 그 마음이 너무 길게 지속되지 않을 수 있겠죠?

혹 오늘 아침 내 아내나 남편의 얼굴이 마티스의 그림 속 아내처럼 보였다면 잠시 생각의 방향을 돌려볼까요? 그 사람의 얼굴이 반짝반짝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말이죠. 상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상대방이 하기 나름인 듯 보이지만 실은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단체 톡방에서 누군가 남긴 한 줄의 글이 와 닿습니다. ‘가정은 정원, 정글은 그냥 두어도 되지만 가정은 서로 가꾸는 정원이다.’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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