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훈 칼럼

후보들은 두 번째 산에 오를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1.03.26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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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시민들은 투표하는 날 하루만 자유로울 뿐이다.” 대의 정치에 대한 싸늘한 회의가 처음 제기된 것은 18세기 후반 유럽에서였다(루소). 그간 필자는 한국 민주주의의 고조되는 불안과 동요 속에서 가급적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을 부채질하는 칼럼 쓰기를 자제해왔다.

성공·권력·재산의 첫 번째 산
헌신·봉사·기여의 두 번째 산
두 번째 산이 공동체 구하는 길
시민들은 삶의 위기 내몰리는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 선거운동이 막 시작된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를 지켜보면서, 필자가 느끼는 감정은 실망과 환멸 사이 어디쯤이다. 2021년 한국에서 주권자인 시민들의 삶의 세계와 선출권력의 세계 사이에는 삭막하고 광대한 사막이 가로놓여 있다.

두 개의 광고물이 위태롭게 분리된 시민과 정치엘리트의 세계를 보여준다. 첫째는 공식 선거운동과 더불어 거리 곳곳을 도배할 선거 벽보이다. 벽보에는 이미 충분히 세속적으로 성공한 후보들이 최고의 미소를 머금고 유권자를 향해 웃고 있다. 그간의 흙탕물 싸움을 잊은 듯, 60세 전후의 여야 주요 후보들의 선거벽보는 화려한 도시의 꿈과 꿀 같은 약속으로 가득하다. 이들 벽보 옆에는 세속적으로 성공해본 적도 없고, 일군 재산도 없는 젊은 군소 후보들의 사진이 조용히 걸려 있다.

두 번째 광고물에는 매일 매일 분투하는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요즘 대학 캠퍼스에는 재학 중인 후배들이 좋은 기업에 취직해 교문을 나서는 선배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플래카드들이 종종 내걸린다. 성공한 60대 시장 후보들의 쾌활한 미소와는 달리, 거기에는 꿈을 잃은 청춘들의 때 이른 체념이 적혀 있다. “취업 축하해요, ○○○선배. 학교에서는 학점의 노예. 졸업해서는 월급의 노예.”

학생들도 알고 필자도 안다. 이제 시작하는 월급으로 서울에서 가장 작은 보금자리를 꿈꾸기조차 어렵다는 것을. (LH 사태는 체념을 분노로 바꾼 사건이다). 게다가 밀려오는 자동화의 혁명 속에서 신입 회사원이 중년이 되기도 전에 일자리에서 밀려날 가능성은 대략 절반쯤 될 것이다.

문명의 격변은 두 개의 분리된 세계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①일자리가 메말라가는 노동의 종말의 세계. 로봇, 인공지능, 플랫폼은 일자리를 없애고 임금 노동자를 벼랑으로 몰고 있다. 일자리 절벽의 시대는 중앙과 지방정부의 역할이 커지는 권력 비대화의 시대로 이어진다. ②하지만 정작 선출권력에 나서는 후보들은 여전히 더 많은 성공과 권력, 명예의 사다리를 오르는 세계에 살고 있다. 전직 시장에서 다시 시장 후보로, 4선 국회의원을 거쳐 시장후보로, 이들은 끝없이 성공의 산을 오를 뿐이다.

후보자들은 주권자를 표로 계산해보는 셈을 잠시 멈추고, 삶의 두 번째 산을 올려 보아야 한다. 성공, 명예, 돈의 산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헌신, 공감, 정의의 산이다 (데이비드 브룩스, 『두 번째 산』). 더 높은 명예, 권력에 대한 의지로는 지방정부의 비효율과 무감각을 개혁하기 어렵다. 권력과 명예의 잣대로는 비대해지고 곳곳에 기름이 끼어 동맥경화에 빠진 광역 지자체의 문제를 고칠 수 없다.

①일자리와 임금의 위기, 삶의 위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00년 전 서울 강남 지역에서 누에를 치고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다 사라져갔듯이, 지금의 사무직, 전문직, 블루칼라 일자리의 상당 부분은 10~20년 안에 사라진다. 일자리가 말라가는 세상의 모습은 숫자가 말해준다. 서울시의 지난 해 4분기 청년(15~29세) 실업률은 9.1%. 10년 전보다 1.5% 상승했다. 2019년 서울에서 결혼한 이들은 23만2454쌍 (2015년에는 29만1341쌍), 이들의 주택 소유비율은 37.3%. 그해 출생률은 0.67(통계청). 2019년 서울시 65세 이상의 자살 비율은 인구 10만 명당 37명.

②일자리가 말라버린 미래의 세상은 대다수 시민들의 소득, 교육, 여가를 국가 권력이 책임지는 세상으로 변해갈 것이다. 보수 정치세력도, 진보 정치세력도 거대 정부로 가는 흐름을 멈춰 세우기는 어렵다.

문제는 비대해지는 중앙정부, 지방정부를 누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는가로 귀착된다. 투명성과 공정함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이다. 필자는 어느 시장 후보가 인생의 첫 번째 산을 넘어 두 번째 산에 오르고자 하는지를 주목하려 한다.

우리는 종종 인생의 두 번째 산을 오르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평생 모은 수백억 원을 사회단체에 내놓은 이들의 눈빛에서 승부욕과 집념, 사다리를 오르는 집요함은 볼 수 없다. 높은 지위에서 내려와 시골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들의 눈빛은 주는 이의 기쁨, 헌신하는 삶의 깊은 희열로 반짝거린다.

권력, 명예, 돈의 사다리를 오르는 이들이 선출 권력을 장악하는 한, 공공부문의 부패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어찌해볼 수 없을 만큼 비대해지고 둔탁해진 공공부문과 앙상하게 말라가는 납세자 시민들의 삶이 오래 공존할 수는 없다. 18세기 루소의 외침 이후 구체제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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