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굴다리 밑 통닭집이 상장사 된 비결은 신뢰·정직·차별화

중앙일보

입력 2021.03.26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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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가맹점주와의 상생에 첫발을 뗀 권원강 교촌에프앤비 창업주를 교촌치킨 당산점에서 만났다. 그는 “당산점 점주는 10년 전 10평 규모에서 시작해 지금은 매장 크기가 9배로 늘어났다”고 소개했다. 김경록 기자

가맹점주와의 상생에 첫발을 뗀 권원강 교촌에프앤비 창업주를 교촌치킨 당산점에서 만났다. 그는 “당산점 점주는 10년 전 10평 규모에서 시작해 지금은 매장 크기가 9배로 늘어났다”고 소개했다. 김경록 기자

경상북도 구미 시내 굴다리 아래서 시작한 통닭집 창업자가 30년 후 사재 100억원을 털어 사회 환원에 나선다. 그가 처음 시작한 통닭집은 월세 40만원이었다. 4인용 탁자 3개를 놓으면 남는 공간이 없었다. 대구에서 고교를 중퇴한 뒤 잡상인부터 노점상·포장마차까지 험한 일을 모두 거친 뒤였다. 5일장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택시기사도 해본 뒤 마지막 희망을 건 것이 통닭집이었다. 그 통닭집을 열었던 1991년, 그의 나이는 만 40세였다. 지금은 나이 많은 청년이란 느낌이지만 그 당시에는 어르신의 반열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적어도 쉰을 넘긴 나이다.

마흔에 시작해 30년간 치킨 외길
지난해 11월 코스피에 첫 직상장
회사 성장 위해 전문경영인 영입
가맹점 돕기 위해 100억원 출연

인생 막차 같은 거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하루에 한두 마리 파는 날의 연속이었다. 당연히 접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마저 접으면 더는 기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거의 2년을 버티다 결국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된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당시 금성사(현재 LG) 남녀 직원 2명이 통닭을 먹고 있는데 백화점 직원 10여명이 밀려들었다. 이들이 모두 앉을 자리가 없었다. 금성사 직원에게 양해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통닭집 주인은 백화점 직원들에게 자리가 없어 받을 수 없다고 정중히 돌려보냈다.

이 일화가 금성사에 퍼져지면서 그날부터 통닭집은 불티가 났다. 금성사 직원 회식과 야근 간식은 물론이고 직원 기숙사에도 거의 매일 배달을 들어가게 됐다. 통닭의 맛은 이미 일정한 수준에 올라와 있었다. 2년간 다양한 방법으로 튀겨보고 레시피를 개발하면서 소비자 입맛에 맞게 만들었다. 그냥 기름에 튀기던 통닭이 부위별로 조각을 내고 다양한 양념이 입혀져 요즘 소비자들이 즐기는 치킨으로 진화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더 물러날 곳이 없었기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한 우물을 판 그는 지난해 11월 시가총액 5000억원 규모의 상장사 대주주가 됐다.

권원강(70) 교촌치킨 창업주 얘기다. 교촌치킨은 코스닥을 거치지 않고 코스피(증권거래소)로 직상장했다. 국내에서 모든 식음료 프랜차이즈를 통틀어 처음이다. 지난 23일 교촌치킨 당산점에서 그를 만나 동네 통닭집에서 국내 최대 치킨 프렌차이즈로 키워낸 비결과 경영철학을 들어봤다. 점퍼 차림으로 나온 그는 성공한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겸손이 몸에 배어 있었다.

권원강 교촌치킨 창업자가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교촌치킨 당산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권원강 교촌치킨 창업자가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교촌치킨 당산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치킨을 팔아 모은 사재 100억원은 적지 않은 돈이다.
“코로나 사태로 가맹점주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자잿값까지 올라 이중고가 심하다. 개인 재산 100억원을 출연해 가맹점주와의 상생재단을 만들려고 한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재원을 더 확보해 활동 규모를 키워나가려고 한다. 나아가 협력업체에 대한 상생도 구상하고 있다.”

-최근 국내 기업인들의 사회환원이 줄줄이 나오는 배경을 무엇이라고 보나.
“예전과 다르다. 이제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 기업이 커나가는 건 오너 한 사람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 소비자가 끌어주고 구성원이 힘을 보태면서 전체의 힘이 모여 기업이 성장한다. 당연히 나눔의 문화가 퍼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창립 25주년이던 2016년 직원들에게 약속한 일이기도 하다. 당시 치킨이 하루에 130t 나갈 때였는데, ‘나는 개인적인 자부심은 다 채웠다. 이제는 책임지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사회환원은 그 약속의 출발이다.”

-동네 통닭집은 지금도 8만개가 넘는다. 어떻게 보면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손을 대고, 그나마 대다수가 문을 닫는다. 사업을 크게 키운 핵심 경영 원칙 세 가지를 꼽아달라.
“첫째는 신뢰, 둘째는 정직, 셋째는 차별화라고 본다. 30년 전 처음 시작할 때 닭 한 마리는 800~900g이었다. 그걸 하루에 한두 마리 팔았는데, 지금은 150t에 달한다. 하루에 1t 트럭 150대가 전국 가맹점으로 나간다. 결국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고 정직하게 장사를 하면서 남들과는 다른 차별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신뢰와 정직이 상술이다.”

양념을 입힐 때 붓으로 75번 발라

-결국 최고의 경쟁력은 제품일 텐데.
“교촌의 치킨은 슬로우 푸드에 가깝다. 양념을 그냥 치킨에 버무리면 쉽게 끝난다. 하지만 교촌에서는 치킨에 양념을 입힐 때 붓으로 75번을 바른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일이 많아지지만, 소비자가 그 맛을 알아본다. 전국 1272개 점포에서 모두 같은 방식으로 치킨을 튀긴다. 가맹점이 되면 오산에 있는 연구개발(R&D)센터에서 2주간 합숙을 하면서 매뉴얼대로 배운다.”

-그것만으로 차별화라고 할 수 있을까.
“전체 생산 과정을 보면 계속 차이가 벌어진다. 보통 닭 한 마리는 9~15조각으로 나눈다. 교촌에선 21조각으로 세분한다. 제조 시간이 더 많이 들고 그만큼 공이 더 들어간다는 얘기다. 양념이 고루 발라진다. 젊은 층이 많이 찾는 매운맛에 들어가는 청양고추는 착즙을 해서 쓰고, 허니 치킨에는 천연 벌꿀을 쓴다. 치킨을 먹을 때 빼놓을 수 없는 무는 자체 공장을 운영한다. 사카린과 빙초산을 쓰지 않고 설탕과 식초를 사용한다. 치킨부터 무까지 철저한 품질 제일주의와 차별화가 스며 있다.”

-튀길 때 온도까지 조절하나.
“30년 전 통닭집을 할 때 가장 많이 해봤던 실험이다. 얼마나 바싹하게 튀기느냐, 얼마나 물렁물렁하게 익히느냐가 식감과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치킨을 재료 단계에서 최종 제품을 만들어내는 모든 과정에 기술이 들어가는 셈이다. 지금도 부단히 연구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치킨은 배달이 70%에 달한다. 치킨은 신선할 때 배달하는 게 생명이다. 최단시간 배달을 위해 조리시간을 줄이고, 배달 전문업체와 특약을 맺어 차별화된 서비스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한류 전파 위해 중동 진출 추진

-치킨은 한류 문화로도 자리 잡았다. 외국인도 치맥을 즐길 정도다.“치킨은 세계적으로 치열한 시장이다. 하지만 한국인 같은 방식으로 치킨을 소비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이나 일본을 가봐도 없다. 한국식 치킨은 한국에서 1등이면 세계에서 1등인 셈이다. 그래서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중동 고객에게 시식하게 했더니 반응이 좋았다. 미국식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은 물려서 많이 먹지 못하는데, 교촌은 사흘씩 먹어도 좋다고 했다.”

-노점상부터 인생 밑바닥 일을 많이 해봤다. 고난을 뚫고 결실을 얻게 한 비결은 무엇인가.
“나이 서른에 결혼해서 본격적으로 고생하기 시작했다. 가장의 역할을 위해서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학교생활이 맞지 않아 고등학교를 중퇴했으니 번듯한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결국 통닭집을 열게 됐는데 이것만큼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매달렸다. 한 달 전기료 5만원을 낼 형편이 안 됐지만,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권원강 교촌치킨 창업자가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교촌치킨 당산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권원강 교촌치킨 창업자가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교촌치킨 당산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신규 가맹점주 50%가 30대


-요즘 실업률이 심각하다. 특히 청년실업이 문제인데, 어떤 조언이 가능할까.
“정말 해볼 만한 일이 잡히면 끝까지 깊이 들어가서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건성으로 하는 것보다 열심히 해서 한 가지만 잘하게 되면 길이 보일 것이다. 절실한 마음으로 하면 안 되는 일은 없다.“

-현업에서 퇴임하고 전문경영인(소진세 교촌에프앤비 회장)을 영입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제 2년 정도 지났는데 너무 잘한 결정이었다. 2015년에 이르면서 업계 1위에 올랐을 때부터 결심했다. 더는 내가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역시 올바른 판단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겠다.”

-프랜차이즈는 역시 가맹점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치킨 프랜차이즈는 400개에 달한다. 경쟁이 치열하다. 안정된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수익구조가 괜찮은 편이지만, 힘들고 고된 업종이다. 그래도 다른 업종에 비해서는 노력한 만큼 성과가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젊은 층이 뛰어든다. 과거 50~60대가 주류였다면, 최근 3년 사이에는 신규 가맹점주의 50%가 30대 청년층이다. 젊은 부부가 함께하는 경우도 꽤 있다.”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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