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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개인투자자 의식해 국민연금 동원하는 일 없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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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투자자연합회 관계자들이 지난 4일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앞에서 '국내주식 과매도 규탄'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한국투자자연합회 관계자들이 지난 4일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앞에서 '국내주식 과매도 규탄'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국민연금이 26일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국내 주식, 해외 주식, 국내 채권 등의 자산 투자 비율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매년 5월에 열던 기금운용위를 이례적으로 앞당겼다. 증권가와 개인투자자들은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그간 주식 매도에 치중했던 국민연금이 매수세로 돌아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기금운용위가 올해 16.8%인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20%까지 올릴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는 정부가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주가 부양에 국민연금을 동원하겠다는 노골적인 움직임으로 봐야 한다. ‘동학개미’로 불리는 국내 개인투자자의 표를 의식해 항복 선언을 하는 셈이기도 하다. 기금운용위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기획재정부 등 4개 부처 차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그리고 민간위원들로 구성돼 있다.

국민연금 오늘 주식 비중 상향 검토 #4월 재·보궐선거 앞둔 포퓰리즘 우려

국민연금을 주축으로 하는 연ㆍ기금은 올해 들어 국내 주식을 15조원어치 이상 팔아치웠다. 증시 활황세 속에 올해 주식 목표 비율(16.8%)을 맞추기 위해 주식을 팔 수밖에 없다는 국민연금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은 이어졌다. ‘코스피 3000 고지’로 대표되는 활황세에 국민연금이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국민연금을 성토하고 매도를 금지해 달라는 글이 대거 올라왔다.

정부는 그동안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에 원칙을 꺾고 여러 차례 항복 선언을 한 바 있다. 금융위원회는 3월부터 재개하려던 공매도를 개인투자자들의 반발과 정치권의 압박 끝에 5월까지 금지하기로 했다. 공매도란 주식을 빌려 매도한 뒤 주가가 내리면 시장에서 싼값에 주식을 되사들여 빌린 주식을 갚는 방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공매도를 금지한 나라는 한 곳도 없다. 하지만 우리 금융 당국은 개인투자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포퓰리즘에 두 손을 들었다. 부산 시민의 표를 얻기 위해 여야가 짬짜미로 통과시킨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나 쌈짓돈으로 순식간에 녹아든 수십조원의 재난지원금ㆍ위로금도 다르지 않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미래다. 노후를 위해 국민이 소득의 일부를 쪼개 국가에 운용을 맡긴 돈이다. 국민연금의 임무는 기금을 안정적으로 잘 운용하면서 최대 수익을 내 후일 국민에게 노후자금을 돌려주는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해 뿌려대는 ‘고무신’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연금의 미래는 어둡다. 세계 최악의 고령화ㆍ저출산으로 가입자가 줄어들면서 2055년 기금 고갈이 예상된다. 기금운용위가 혹여 정치적 목적으로 국민의 돈을 함부로 운용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국민연금 운용은 독립성을 유지하는 게 대원칙이다. 26일 기금운용위의 결정이 운용 원칙이 아닌 포퓰리즘에 영향을 받는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