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전 명명은 문 대통령 약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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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문광욱 해병대 일병(왼쪽)이 2010년 10월 23일 외박 때 아버지 문영조씨와 다정히 함께 한 모습. 문 일병은 한 달 뒤인 11월 23일, 북한의 연평 도 기습 포격에 맞서 포탄을 나르다 파편에 맞아 전사했다. [사진 문영조]

문광욱 해병대 일병(왼쪽)이 2010년 10월 23일 외박 때 아버지 문영조씨와 다정히 함께 한 모습. 문 일병은 한 달 뒤인 11월 23일, 북한의 연평 도 기습 포격에 맞서 포탄을 나르다 파편에 맞아 전사했다. [사진 문영조]

“문재인 대통령도 ‘연평도 포격전’으로 부른다고 약속하셨어요.”

전사한 문광욱 일병 아버지의 호소 #“포격 도발은 일방적 당한 느낌인데 #국방부·보훈처, 도발로 계속 표현” #오늘 6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11년 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맞서다 전사한 해병대원 고 문광욱 일병의 아버지 문영조(58)씨는 2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까지 ‘서해수호의 날’(3월 넷째 주 금요일) 행사에서는 ‘연평도 포격 도발’로 표현했다”며 “유가족으로선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문씨는 “해병대사령부에서만 ‘연평도 포격전’이라 부르고, 국방부와 국가보훈처 등이 주관하는 대부분의 행사에선 ‘연평도 포격 도발’이라고 한다”며 자신이 문 대통령과 만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2017년 3월 23일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과 전주 한옥마을에서 단독 면담을 할 때 ‘연평도 포격 도발’ 대신 ‘연평도 포격전’이란 표현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며 “문 대통령도 제 뜻에 공감해 그 이후부터 연설 등을 할 때 ‘연평도 포격전’이라고 표현하셨다”고 했다.

전북 군산이 고향인 문 일병은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에 기습적으로 포격하던 날 해병대 진지에서 포탄을 나르다 적의 포탄 파편에 맞아 숨졌다. 군장대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그해 8월 ‘한반도 평화는 내가 지킨다’며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지 석 달 만에 벌어진 비극이다.

사망 당시 문 일병은 스무 살이었다. 당시 북한의 도발로 문 일병과 서정우 하사 등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고, 군인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국립대전현충원의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 합동 묘역. 프리랜서 김성태

국립대전현충원의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 합동 묘역. 프리랜서 김성태

문씨는 해마다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왔다. 서해수호의 날은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도발(연평도 포격전)로 희생된 55명 용사들의 넋을 기리고 북한의 무력 도발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2016년 제정됐다. 6회째인 올해 행사는 26일 경기도 평택에서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린다.

4년 전 문 대통령이 전주에서 문씨를 만난 날도 ‘제2회 서해수호의 날’ 하루 전날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문씨에게 “박근혜 정부 동안 나라가 어려워지고 국민도 고통스러웠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송구하다”고 말한 바 있다. 문씨는 “당시 우리나라 영토에 (북한이 쏜) 포가 떨어지고, 북한 영토에도 우리 포가 떨어졌다”며 “실제 전쟁을 했는데 ‘연평도 포격 도발’이라고 하면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한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죽은 아이들 명예도 있고, 중·경상자들도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 다쳤다”며 “해병대의 명예와 사기 진작을 위해서도 ‘연평도 포격전’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씨 주장에 대해 국방부 측은 “공식적인 문서나 행사에서는 ‘연평도 포격 도발’이라 표현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연평도 포격전’은 해병대에서 전투 의지 고양의 의미로 쓰는 것으로 안다”며 “2010년 11월 정부에서 ‘연평도 포격 도발’로 명명했고, 국방부는 정부 차원에서 결정한 이 명칭을 공식 용어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방부 차원에서 따로 명칭 변경을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서해수호의 날’ 행사를 주관하는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보훈처는 국방부에서 쓰는 공식 명칭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면 해병대사령부는 “‘연평도 포격전’이라는 용어로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해병대사령부 관계자는 “공식적인 용어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 맞지만, 해병대 내부 행사에서는 ‘연평도 포격전’으로 쓰고 있다”며 “전사나 싸움의 함의 등을 고려해 우리가 전투에서 북한과 싸워서 이겼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군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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