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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미사일 쏴도 발표 미적거린 軍…NSC는 '탄도' 용어 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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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북한이 25일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대미 도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지난 21일 순항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어 나흘 만인 이날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도발 수위를 높였다.

日 정부, 첫 발 발사 3분 만에 발표 #군, 처음엔 "단거리 발사체" 등 표현 #2019년 5월에도 "불상 발사체" 논란 #김정은 참관 가능성…"전날 항공기 향해" #"1월 공개한 KN-23 개량형으로 추정"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25일 오전 7시 6분부터 함경남도 함주에서 탄도미사일 2발을 19분 간격으로 연이어 동해 상으로 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지난해 3월 29일 이후 1년 만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탄도미사일은 지상에서 이동식 발사대(TEL)를 이용해 발사됐다. 발사 지점에서 동쪽으로 약 450㎞를 날아갔고 최고 비행 고도는 약 60㎞로 파악됐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외신을 통해 먼저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처음 공지한 건 이날 오전 7시 25분이다. 앞서 일본 해상보안청은 북한이 첫 발을 쏜 3분 뒤 미사일 발사 정보를 공식 발표했다. 동해에서 항해 중인 선박들에 주의를 주기 위해서였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두 발 모두 일본 측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떨어지진 않았다.

북한, 25일 탄도미사일 2발 발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한, 25일 탄도미사일 2발 발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또 합참은 오전 7시 25분 공지에서 "미상 발사체"로 밝혔지만, 일본 당국은 "탄도미사일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발표에 담았다. 합참은 첫 공지에 이어 오전 11시 18분 추가 공지에선 "단거리 발사체"라고 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1시간 30여분간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 결과 발표문에도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가 진행되는 가운데 미사일 발사가 이루어진 점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고 담겼다. '탄도'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정부 소식통은 "순항미사일과 달리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 위반 사안"이라며 "정부가 그런 점을 고려해 '탄도'라는 용어를 일단 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오전 10시 30분 정례 브리핑에서도 탄도미사일 여부를 알리는 데 대해 "분석 중인 만큼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답변했다.

군이 '탄도 미사일 가능성'을 거론한 건 북한이 미사일을 쏜 뒤 4시간여가 지나서였다. 합참 관계자는 이날 오전 11시30분부터 진행된 백그라운드 브리핑에서 "현재까지 한ㆍ미 정보당국은 단거리 탄도 미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정밀 분석 중"이라고 알렸다. 발표 지연 논란에 대해선 "실시간으로 미사일 발사를 포착하고 상황을 관리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올들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놓곤 한국 군이나 정부가 아닌 외신 보도로 알려지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1일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는 뒤늦게 워싱턴포스트 등의 보도로 공개됐다. 바이든 정권 출범 직후인 지난 1월 22일 북한이 쏜 순항미사일에 대해선 한국 당국은 공식 발표조차 하지 않고 있다.〈중앙일보 3월 24일자 1면〉

군이 유독 북한 미사일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9년 5월에는 북한이 쏜 탄도미사일에 대해 "불상 발사체"라는 표현을 써 논란이 됐다. 미 국방부가 "탄도미사일"로 밝혔는데도 정부가 고집한 용어였다. 당시 "분석 중"이라던 군 당국은 석 달 뒤 국회에선 "탄도미사일이 맞다"고 답변했다.

지난 1월 14일 북항은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개량형을 공개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지난 1월 14일 북항은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개량형을 공개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이날 "군 당국이 공개한 북한 미사일의 발사 고도와 거리만 놓고 봐도 탄도미사일이 명백하다"며 "이미 국민은 외신을 통해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데 군이 저런 모습을 보이면 안보 불안감만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지침을 의식해 또 외신보다 늦게 발표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자초했다"고 꼬집었다.

복수의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쏜 탄도미사일은 신형일 가능성이 있다. 한 소식통은 "발사 궤적 등을 볼 때 지난 1월 제8차 노동당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선보인 KN-23 개량형일 가능성이 있다"면서 "통상 북한은 열병식에 신무기를 공개한 뒤 시험발사를 통해 성능을 확인하고 과시해왔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탄도미사일 발사 참관 여부도 주목된다. 한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타는 항공기가 미사일 발사 전날 원산 인근으로 향했다"며 "김 위원장이 탔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직접 참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현재 설명할 사안은 아니다"며 "단정하지 않길 바란다"고만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 탄도미사일 발사를 참관했는지도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 2017년 8월 30일 김 위원장이 '화성-12형' 중장거리 전략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참관했다며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장면.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 탄도미사일 발사를 참관했는지도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 2017년 8월 30일 김 위원장이 '화성-12형' 중장거리 전략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참관했다며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장면.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사일 도발 수위를 올린 데 대해 "철저히 준비된 행동"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이 다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가 필요에 따라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가 끝나기 전에 압박 효과를 키우려 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철재ㆍ김상진ㆍ박용한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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