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만원 들여 45초만에 매진됐다, C급감성 SF '인천스텔라'

중앙일보

입력 2021.03.25 12:10

백승기 감독의 초저예산 패러디 SF 영화 '인천스텔라'. [사진 꾸러기스튜디오]

백승기 감독의 초저예산 패러디 SF 영화 '인천스텔라'. [사진 꾸러기스튜디오]

“임종하는 순간까지 이 세상 모든 장르 영화를 다 만들어보는 게 꿈입니다.”

25일 개봉 C급 감성 SF '인천스텔라'
지난해 부천영화제서 45초만에 매진
백승기 감독 “영혼 갈아 퀄리티 냈죠”

자칭 C급 영화 장인 백승기(39) 감독이 초저예산 SF 영화에 도전했다. 25일 개봉하는 ‘인천스텔라’는 제목부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천만영화 ‘인터스텔라’ 패러디. 27년 전 우주에서 정체불명 구조신호와 함께 날아든 설계도를 토대로 우주선 ‘인천스텔라’가 완공되고, 이를 타고 우주로 향한 탐사대원들이 과거의 비밀을 밝히게 된다는 내용이다.

부천영화제 45초 매진 비결 'C급 갬성'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한 글자 뺀 극중 아시아항공우주국(ASA)부터 ‘감성’을 코믹하게 발음한 미지의 별 이름 ‘갬성(STARGAM)’, 아무리 봐도 그냥 자동차 같은 우주선, 은박지‧계산기 등을 첨단 우주탐사기술로 우긴 설정에 시공을 초월한 가족애를 버무렸다. 지난해 초청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선 예매오픈 45초만에 전석 매진에 이어, 코리안 판타스틱:배급지원상까지 받았다. 18일 백 감독을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9년 전 전재산 100만원을 털어 만든 장편 데뷔작 ‘숫호구’에서 영화 ‘아바타’를 패러디한 모태솔로 청년의 코믹한 연애담을 그려 주목받은 그다. 이어 무성영화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이하 ‘놈’)에선 1300만원 초저예산으로 히말라야 로케이션 촬영까지 감행하며 인류의 기원을 파헤쳤다. 실제 중고 노트북 사기 피해 경험을 중국(실제 촬영지는 인천차이나타운) 무대 범죄 소탕 코미디로 승화시킨 ‘오늘도 평화로운’ 등 허술한 듯 기발한 상상 덕에 부천영화제에 단골 초청되며 고정팬도 생겼다.

영화 '인천스텔라' 촬영에 열중하고 있는 백승기 감독(왼쪽). [사진 꾸러기스튜디오]

영화 '인천스텔라' 촬영에 열중하고 있는 백승기 감독(왼쪽). [사진 꾸러기스튜디오]

'인터스텔라' 3300분의 1…초저예산 SF   

‘인천스텔라’는 역대 최고 제작비인 약 6000만원을 투입했단다. 고향 인천에서 줄기차게 촬영한 노하우에 힘입어 인천영상위원회 제작지원작에 선정되며 받은 5000만원에 직접 모집한 소상공인 PPL을 보탰다. ‘인터스텔라’ 제작비 1억6500만 달러의 3300분의 1꼴이지만, ‘백승기 유니버스’에선 블록버스터다. “무예산으로 CG(컴퓨터그래픽) 없이 방에 불 꺼놓고 우주라며 찍으려 했는데 감사하게도 제작 지원을 받았어요. 인천시민 세금인 만큼 허투루 안 쓰려고 영혼을 갈아서 퀄리티를 냈죠.”

영화 '인천스텔라'에서 아시아항공우주국(ASA) 최정예 대원들은 27년 전 의문의 구조신호가 알려준 우주선 설계도를 완성해 미지의 별 '갬성'으로 향한다. [사진 꾸러기스튜디오]

영화 '인천스텔라'에서 아시아항공우주국(ASA) 최정예 대원들은 27년 전 의문의 구조신호가 알려준 우주선 설계도를 완성해 미지의 별 '갬성'으로 향한다. [사진 꾸러기스튜디오]

손이용 배우 돌아가신 아버지 만나게 해주고파

그가 말하는 백승기표 영화란 “저예산으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키치적인 미쟝센으로, 인천에서, 손이용이 연기하는 영화”다. 그의 모든 연출작 주연을 도맡은 손이용은 고등학교 후배이자, 함께 2인조 댄스그룹 ‘리스키(Risky)’로 활동해온 사이. ‘인천스텔라’의 출발점도 손이용이다. 2014년 1월 손이용 배우와 히말라야에 가 ‘놈’을 찍던 무렵 첫 구상을 떠올렸다.
“손이용 배우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됐을 때에요. 생전에 히말라야를 가고 싶어하셨는데 아들이 혼자 그길을 걷게 됐죠. 영화에서라도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면 어떨까. 손 배우와 둘다 술에 취해 히말라야 중턱에 올랐는데 우주로부터 시나리오 영감이 내려왔죠. 이번 영화에서 손이용이 손으로 빛을 잡는 장면처럼요.”

왼쪽부터 백승기 감독의 데뷔작 '숫호구'(2014), '시발,놈:인류의 시작'(2017) '오늘도 평화로운'(2019).

왼쪽부터 백승기 감독의 데뷔작 '숫호구'(2014), '시발,놈:인류의 시작'(2017) '오늘도 평화로운'(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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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제목 ‘Super Virgin(숫호구)’ ‘Super Origin(놈)’을 잇는 3부작의 마지막 ‘Super Nova’를 떠올렸건만, 몇 달 뒤 개봉한 ‘인터스텔라’와 내용이 너무 비슷했다. ‘야 이거 망했다’는 자포자기에 노트북 사기까지 겹쳐 5~6년이 흐르는 사이 차라리 정면돌파하잔 생각이 들었단다. “오마주‧표절 그 경계가 모호하잖아요. 차라리 패러디면 누가 봐도 노골적이어야 한다. 어설프게 따라하면 오히려 더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죠. 제가 좋아하는 우주 영화들을 아낌없이 다 넣었죠.”

아마겟돈·마션·빽투더퓨처…누가 봐도 패러디

아버지가 딸의 남자친구와 우주로 향하는 구성은 ‘아마겟돈’, 박스에 혼자 고립됐던 딸이 아버지의 환상을 만나는 장면은 ‘그래비티’에서 따왔다. 보랏빛 환상은 ‘컨택트’, 고립된 행성에서 감자를 먹는 건 ‘마션’, 혈혈단신 우주를 가르는 장면은 ‘캡틴마블’ 패러디다. 우주영화는 아니지만 ‘빽 투 더 퓨처’의 자동차, ‘번지점프를 하다’의 노을진 해변 왈츠 장면도 빌려왔다.

'인천스텔라'에서 '번지점프를 하다' 해변 왈츠를 패러디한 장면. [사진 꾸러기스튜디오]

'인천스텔라'에서 '번지점프를 하다' 해변 왈츠를 패러디한 장면. [사진 꾸러기스튜디오]

촬영지 헌팅도 그럴듯하다. 미지의 별 ‘갬성’은 인천공항 야산, 우뚝 솟은 고층의 ASA 본부는 월미도 근처 전망대에서 찍었다. 백 감독이 평소 인천을 오가며 눈여겨봐둔 곳들이다.
“C급 영화가 무조건 못하자, 바보인 척하자가 아니에요. 항상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데 부족한 예산 때문에 과감하게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주변을 활용해서 찍는 게 철칙이죠.”

본업은 미술교사…"인간 자체에 관심 많아"

사실 백 감독의 본업은 미술교사다. 10여 년 전 영화제작사 꾸러기스튜디오를 만든 뒤론 영화 작업 틈틈이 기간제 미술교사로 일하며 제작비를 마련했다. 최근엔 고등학교 1학년 담임까지 맡게 됐다. 학기 중 개봉이 겹친 작품은 ‘인천스텔라’가 처음이다. 교사이자, 감독, 인간 백승기의 공통점? 선한 영향력을 꿈꾼단 것이다. “지금껏 만든 4편을 쭉 놓고 보면 인류애가 주제죠. 인간 자체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영화 '인천스텔라' 우주 장면을 위해 그린매트에서 촬영 중인 모습. 가운데 빨간 승용차가 극중 우주선 '인천스텔라'다. 촬영 후 원래 주인인 지인에게 돌려줬단다. [사진 꾸러기스튜디오]

영화 '인천스텔라' 우주 장면을 위해 그린매트에서 촬영 중인 모습. 가운데 빨간 승용차가 극중 우주선 '인천스텔라'다. 촬영 후 원래 주인인 지인에게 돌려줬단다. [사진 꾸러기스튜디오]

우주 유영 장면을 위해 와이어에 매달린 주연 배우 손이용. 오토바이 헬멧 등을 활용한 우주복도 제작진이 직접 제작했다. [사진 꾸러기스튜디오]

우주 유영 장면을 위해 와이어에 매달린 주연 배우 손이용. 오토바이 헬멧 등을 활용한 우주복도 제작진이 직접 제작했다. [사진 꾸러기스튜디오]

“꾸러기스튜디오를 처음 만들 때만 해도 영화를 배운 적도, 장비도 없으니 어차피 못만들거면 세상에서 제일 못만들자. 가난이 죄가 아닌데 굳이 있는 척 말고, 모르면 모르는대로 당당히 우리 색깔을 드러내자” 했다는 그다.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게 되며 책임감이 커졌다고 했다. “저한테 영감받은 몇 안 되는 ‘영화 키즈’도 있더군요.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더 진지해졌어요.”

차기작은 응원하는 스포츠팀에 인생을 다 바쳐 열광하는 서포터즈가 주인공이다. “얼마 전 유명하지 않은 축구팀 팬분이 큰 경기장에서 혼자 북치고 노래부르고 응원하는 영상을 봤어요. 응원팀 선수가 골을 넣고 그분한테 가서 정중하게 인사하자, 그분이 아이처럼 엉엉 울더군요. 그 장면에 감동받았어요. 바꿔 말하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응원받길 바라는 게 아닐까. 응원문화도 재밌게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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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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