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 XX' 악플 신고했더니···경찰 "이건 감탄사일 수 있지 않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 XX’이 감탄사일 수 있지 않느냐…”

악성 댓글에 진정을 내고 경찰서에 간 유튜버 A씨는 지난 23일 전북의 한 경찰서 B수사관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XX'는 성적 의미가 담긴 흔한 욕설이었다. A씨가 낸 진정서에 해당 욕설이 있었고, B수사관은 그 내용을 바탕으로 욕설을 언급했다. A씨는 이에 대해 “2차 가해로 느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악성 댓글에 있던 욕설이 나에겐 감탄사로 느껴지지 않았고, 경찰이 내막을 알아보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런 경찰의 조사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A씨 "악플 읽으며 ‘감탄사’라고 해"

24일 A씨와 경찰 등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지난 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A씨에 대한 악성 게시글이었다. 작성자는 A씨가 한 유튜버에게 쓴 댓글을 캡처해 첨부하고 A씨 유튜브 채널 사진을 함께 올리며 '무서웠던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아 XX 오랜만이노'라는 내용의 댓글도 달렸다. A씨에 따르면 XX는 댓글에 달린 여러 욕설 중 하나였고, 지난해 7월에도 지속적인 악성 댓글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A씨는 지난 10일 경찰서를 방문해 욕설이 포함된 댓글에 대해 모욕 혐의로 진정서를 냈다. 지난 23일은 경찰에서 추가 조사를 받는 날이었다.

A씨는 "당시 B수사관이 웃으면서 악플을 여러 차례 읽더니 이 정도는 감탄사가 아니냐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를 받아 경찰서에 가는데 왜 어떠한 구제도 받지 못하는가”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7월에도 유튜브 채널에 달린 악성 댓글로 고통을 받다가 이곳을 찾았는데, '변호사를 대동해야 사건 접수가 가능하다' '고소 접수하려면 인터넷에서 서식 찾아서 다운로드해 집에서 작성해서 오셔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경찰 로고. 뉴스1

경찰 로고. 뉴스1

경찰, "억울…물어보는 과정이었다"

경찰서 측은 2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아 XX’이 개인적인 감정인지, 모욕적 표현인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라, 모욕 관련 죄가 적용될지 판단하기 위해선 A씨가 어떻게 들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물어본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감탄사일 수 있지 않느냐'라고 했던 당시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보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이어 “수사를 위해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며 저희로선 억울한 부분이 있다. 언쟁이 있어 수사관을 바꿔서 수사했다”며 “이후에 악플에 적힌 욕설 부분이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았던 판례를 보여주며 설명했다"고 했다.

A씨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는 "수사에 미온적이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사안에 따라 법률적 검토가 필요한 경우 변호사와 같이 오라고 하는 것이지, 통상적으로 사건 접수할 때는 변호사와 같이 와야 접수 가능하다고 얘기하진 않는다"고 했다.

B수사관도 이날 “보충조서 작성을 시작하기 전 A씨와 사전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생겼던 일”이라며 “악플 내용에 관해 얘기를 하다가 A씨가 말꼬리를 잡아 다른 수사관으로 바꿔드리겠다고 하고 나왔다"고 했다. 이어 "악플 내용 중 욕설 자체가 아닌 일부 내용에 대해 감탄사가 아니냐고 얘기를 했더니, A씨가 ‘기분이 나쁘다’며 '수사관을 무슨 △이라고 게시판에 올려도 되겠냐'고 되물었다"고 했다.

악플 관련 이미지. 픽사베이

악플 관련 이미지. 픽사베이

“피고소인 면책시켜준다는 오해 여지” 

양측의 공방에 대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승재현 연구위원은 “고소인의 입장에선 경찰의 감탄사 발언은 해당 수사관이 미리 예단을 가지고 수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 상당히 부적절한 수사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악플로 고통을 받았다는 고소인 측에선 피고소인을 면책시켜준다는 오해의 여지를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승 연구위원은 “수사관은 고소인의 진술과 피고소인의 진술을 들은 후 합리적 판단을 해야 한다"며 “피고소인이 어떤 의사로 악플을 달았던 것인지 조사해보겠다고 하거나 단어 선택을 더 신중하게 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사과정에서 준수되어야 할 '수사절차법'이 조속히 입법되고, 동시에 수사인권지침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