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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신도시 투기, 정책 실패와 공공 독점의 ‘잘못된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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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다. 국회의원, 광역 단체장, 지자체 공무원, 지방 의원, 공기업 임직원 등의 투기 의혹도 불거졌다. 국민의 불신이 공직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정확한 실태를 드러내고 엄벌을 통해 공직사회의 기강과 윤리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데 자칫 정치 논란으로 비화해 배가 산으로 갈까 걱정이다.

공공 독점과 비대화, 관리부실 낳아 #LH 수술하고 구조와 체질 바꿔야

LH 투기 사태는 부동산 가격 급등과 이런 흐름에 편승하려는 개인의 욕망에서 시작됐다. 2017년부터 최근 4년간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격은 71.3% 상승했다. 수익률은 연 14%에 이른다. 초저금리 시대에 주식 투자로도 달성하기 어려운 숫자다. 자산가격 급등 와중에 공직사회도 한탕주의와 투기 심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구조적 문제를 제대로 짚지 않는다면 양상은 달라도 본질은 같은 사태가 되풀이될 것이다.

먼저 정책 운용 방식이다. 공급 정책의 기조는 왔다 갔다 하고, 규제 중심으로 움직이면 개발 계획뿐 아니라 정책의 정보 가치는 높아진다. 조정대상 지역 지정이나 해제 전후의 거래 당사자를 조사하면 온갖 이해당사자가 쏟아질 것이란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그동안 정부는 국민에게 집은 사는 곳(buy)이 아니라 사는 곳(live)이라는 교조적 자세를 취했다. 다주택자는 무조건 투기꾼이란 편견을 심어줬다. 그런데 투기꾼은 정작 공직 내부에 숨어 있었다. 이번 사태는 집값 안정도 달성하지 못하고, 정책도 시스템적으로 접근하지 못해 초래된 결과다. 사회적 관심을 쫓아 요란하게 부동산 대책을 25회나 쏟아냈지만, 실질적 정책은 부재했고 정보보안 시스템은 취약했다.

독점과 기능 비대로 이어진 공공 조직을 되짚어봐야 한다. LH의 전신인 한국토지공사는 공공 주도의 토지 공급을 위해 1970년대 후반에 설립됐다. 정부의 대리인으로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며 수도권 1, 2, 3기 신도시와 전국의 혁신도시 등 개발사업 시장을 사실상 독점했다.

최근 들어 공공의 개발 독점이 더 고착되고 있다. 민간은 믿지 못하고 공공이 직접 해야 공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화에 근거한다. LH는 택지개발뿐 아니라 도시재생사업, 역세권 개발사업, 항만 재개발 사업까지 시행이 가능하다. 2·4 부동산 대책으로 도심의 재건축·재개발까지 주도하게 됐다.

기능 확대는 조직 비대화로 이어졌다. 2016년 6589명이던 LH 직원은 2020년 9566명으로 늘었다. 불과 4년간 45%나 증가했다. 시장 전반의 공공 확대가 이어지고 있다. 같은 기간 주택도시보증공사 직원은 73%, 한국부동산원은 32% 증가했다. 일자리 창출을 내세워 조직을 키웠고 그 과정에서 공직자 윤리와 조직 문화는 실종됐다.

LH 투기 사태는 부동산 정책 실패와 공공 만능주의가 결합한 부산물이다. 공공 독점과 비대화는 필연적으로 비효율과 관리 부실로 이어진다. 여론을 잠재울 대책이 시급할 때마다 손쉬운 공기업을 끌어다 쓰기 바빴다. 민간과 공공의 협력 정책은 뒤로 밀렸다.

LH의 핵심 역량은 정부가 부여한 독점과 토지 수용권을 통한 신속한 개발이다. 성과만큼 부작용도 컸지만, 개발시대였기에 용인됐다. 앞으로는 수용권을 통한 재산권과 인권 침해는 사회적 저항으로 나타날 것이다. 임대주택 공급, 일자리 창출과 같은 공공 기여는 법과 제도 및 사업 협약을 통해 공공이든 민간이든 동일하게 확보할 수 있다.

비대해진 공공의 역할과 조직이 얼마나 사회적 효율성 향상에 기여했는지 치열한 검증이 필요하다. 공공 비대화가 원인인데도 주택청 신설과 같은 공공조직을 확대하겠다는 발상은 맞지 않는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공 기능을 대수술해 LH의 구조와 체질을 확 바꿔야 한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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