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설

선거 앞두고 있다지만 이런 졸속 추경은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3.2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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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경 논의 현장. 지난 23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2021년도 제1회 추경예산안 심사를 위한 조정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15조원 규모의 추경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만 3조9000억원이 증액됐다. 여당은 3월 내 지급을 목표로 추경안을 밀어붙였다. [뉴스1]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경 논의 현장. 지난 23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2021년도 제1회 추경예산안 심사를 위한 조정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15조원 규모의 추경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만 3조9000억원이 증액됐다. 여당은 3월 내 지급을 목표로 추경안을 밀어붙였다. [뉴스1]

천문학적 규모의 나랏돈을 이렇게 속전속결로 쓰기로 한 적이 있었던가. 어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처리해야 한다”면서 밀어붙인 추가경정예산안 얘기다. 김 대표는 “오늘 추경안이 통과돼야 이달 내로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마치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밀어붙인 이번 추경의 규모는 15조원에 달한다. 코로나 충격으로 고통받는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에게는 하루라도 빨리 정부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 맞다. 빠를수록 고통이 줄고 경기 회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노골적인 선심성 지원이 뒤섞여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점이다. “선거용으로 급조된 현금 살포”라는 야당의 반발에도 여당이 거대 의석으로 밀어붙이면서 국회에서 증액된 예산만 3조9000억원에 달한다. 바닥을 드러낸 재정 형편은 안중에 없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세금 일자리와 복지예산을 남발하면서 나라 곳간에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아졌다. 기업이나 개인이라면 더 버틸 수 없는 막다른 형편에 몰려 있지만, 현 정권은 막대한 빚을 얻어 구멍 뚫린 재정을 메우고 있다.
 이번 추경 통과로 사회보장기금을 합한 통합재정수지 기준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4.5%에 달하는 89조6000억원으로 불어난다. 사회보장기금 수지를 제외한 관리재정수지 기준으로는 GDP의 6.3%에 달하는 126조원의 적자를 기록하게 됐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검토하라고 지시한 '으쌰으쌰' 전 국민 위로금까지 현실화하면 재정 건전성은 더 나빠진다. 결국 이번 추경으로 국가채무 규모는 1000조원에 이르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0%에 육박한다.
 여당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 재정 건전성이 양호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와 김소영·안동현 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들은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통화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한국이 미국·일본과 같은 기축통화국과 비교해 재정 여력이 풍부하다고 보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얘기다.
 다른 나라들도 코로나 피해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국회에서 번갯불에 콩 볶듯 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최근 1조9000억 달러의 경기부양책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지만, 야당의 꼼꼼한 검증을 받아야 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재정이 확대되자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아야 한다”면서 구체적인 재정 안정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은 어떤가. 아무리 선거를 앞두고 있어도 심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재정 건전성을 훼손해서는 곤란하다. 여당은 선심성 예산을 뿌려서라도 표심을 사려는 유혹에 사로잡힌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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