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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한 미사일 도발, 외신 보고 알아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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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북한이 지난 21일 서해 해상으로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한 사실이 미국 언론 보도로 뒤늦게 확인됐다.

북한이 지난 21일 서해 해상으로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한 사실이 미국 언론 보도로 뒤늦게 확인됐다.

북한이 지난 21일 순항미사일 두 발을 발사한 사실이 사흘 만인 어제 미국 언론의 첫 보도로 확인됐다. 발사 시점은 미국 국무·국방 장관이 한국을 다녀가면서 대북 정책 공조 태세를 협의한 직후였다. 지휘소 훈련으로 축소되긴 했지만 한·미 연합 훈련이 막 끝난 뒤이기도 했다. 지난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대남 비방 담화에서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말라"고 위협한 것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순항미사일 발사에 우리 군 당국 침묵 #저강도라고 안이하게 넘길 일 아니다

 단거리 순항미사일을 쏜 것은 '저강도' 도발로 수위 조정을 한 결과로 풀이된다.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순항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쿼드 정상회의 공동성명 등을 통해 수차례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묵과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대북 정책이 완전히 공개되지 않은 시점에 섣불리 고강도 도발로 협상 여지를 좁힐 수 없는 상황에서 고른 선택지란 의미다.

 그렇다고 해서 순항미사일 위협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지난 1월 당대회에서 전술핵 개발 방침을 공언했다. 북한이 당장 쓸 수 있는 가장 실효적이고 현실적인 수단의 하나가 바로 순항미사일이다. 순항미사일에 소형 핵탄두를 장착하면 한국은 고스란히 그 위협에 노출된다. 또 유사시 미군 함대가 한반도 해상에 배치되는 것을 가정한 위협일 수도 있다. 직접 위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군 당국은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하고 넘어가야 함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나아가 북한은 미국의 대북정책 재검토가 끝나고 새로운 정책방향이 공개된 뒤 그 내용에 따라 얼마든지 도발 강도를 높일 수 있다. 저강도라고 안이하게 넘어갈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다.

 또 하나 지적할 문제는 국방 당국이 의도적으로 미사일 발사 사실을 쉬쉬하고 있는 동안 우리 국민은 외신을 통해 이를 알게 됐다는 점이다. 이는 2010년께부터 북한의 모든 종류의 도발을 합참이 즉시 발표하는 것으로 확립된 관행과 전례에 어긋난다. 군 당국은 “모든 사실을 발표하는 것은 아니다”며 마치 전략적 판단에 따라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는 식으로 해명하지만, 국민의 눈으로 보기엔 ‘북한 눈치보기’에 다름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해 4월 14일 북한 순항미사일 발사 당시 군 당국은 즉시 상세한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정부와 군이 과도하게 국민의 안보 불안심리를 자극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북한의 군사 동향은 국민의 생명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런 중대 사안을 우리 정부나 군의 발표가 아니라 외국 언론을 통해 알게 된 국민의 심정이 어떠할지 헤아려 본 적이 있는가. 이번 미사일 발사에서 드러났듯, 숨기려 해도 결국 드러날 사실을 쉬쉬해서 얻는 실익이 과연 무엇인지 정부와 군 당국은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