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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살지 않는 척, 세금 안 낸 54명 적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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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노정석 국세청 조사국장이 24일 역외탈세 세무조사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국세청]

노정석 국세청 조사국장이 24일 역외탈세 세무조사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국세청]

국내에 상당 기간 거주하고 있지만 세금을 낼 땐 해외 체류자로 신고한 사람들에 대해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외국 영주권·시민권으로 신분을 ‘세탁’하거나 복잡한 국제 거래를 이용해 탈세한 혐의를 받는 54명을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외국 영주권·시민권으로 신분세탁 #복잡한 국제 거래 이용해 탈세 #해외 부동산 양도세 안 낸 사람도

이들 중 14명은 비거주자처럼 위장해 소득과 재산을 해외에 숨겨두고 세금을 회피했다고 국세청은 보고 있다. 소득세법에 따르면 외국인이나 이중 국적자라도 1년 중 절반(183일) 이상 국내에 체류하면 거주자로 보고 세금을 매긴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도 국내법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중 국적인 A씨는 가족과 함께 국내에 거주하면서 100억원대 부동산을 취득해 임대업을 하고 있다. 이런 경우 A씨는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도 국내법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국세청은 지적했다. 200억원대 부동산으로 임대업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국내에 거주하는 B씨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 국적인 B씨는 외국에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많다는 점을 내세워 비거주자로 신고했다.

국내에서 법인을 운영하는 C씨는 해외 조세회피처에 자회사를 만들었다. 자회사 지분의 100%는 C씨가 소유했다. 그런 다음 국내 법인의 핵심 무형자산(영업권·특허권처럼 물리적인 실체가 없는 자산)을 자회사로 빼돌렸다. 국내 법인은 해외 자회사의 자산을 사용하는 대가로 거액의 사용료를 냈다. C씨는 이 자회사를 이용해 유학 중인 자녀에게 돈을 보냈다. 그는 자녀에게 자회사 지분을 넘겨주기도 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D씨는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 명의로 해외 부동산을 사들였다. 그는 페이퍼컴퍼니의 지분을 자녀에게 넘겨주는 방식으로 편법 증여를 했다. 그런데 D씨와 자녀들은 외국 국적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

해외 부동산 투자에서 대규모 이익을 내고도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은 의료업체 경영자도 있었다. 그는 해외 투자에서 벌어들인 돈을 가족에게 넘겨주게 설정한 ‘가족 신탁’으로 부동산 매각 대금을 숨겼다고 국세청은 보고 있다.

국세청은 2019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역외 탈세와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자 318명을 조사한 결과 1조1627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이 중 다섯 건은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하거나 통고처분(일정 기한 내에 벌금 등을 내면 검찰 고발을 면하는 처분)을 했다고 국세청은 덧붙였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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