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먹고 태극기 달고 F1 달린다

중앙일보

입력 2021.03.2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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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계 최초로 F1 경기에 출전한 잭 에이큰(한국 이름 한세용). 허리춤에 태극기와 ‘한세용’이 새겨진 경기복을 입는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한국계 최초로 F1 경기에 출전한 잭 에이큰(한국 이름 한세용). 허리춤에 태극기와 ‘한세용’이 새겨진 경기복을 입는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해 12월 바레인에서 열린 포뮬러원(F1) 샤키르 그랑프리에 태극기가 등장했다. 한국인뿐 아니라 한국계로도 전무했던 F1에 최초로 출전한 잭 에이큰(26·한국명 한세용) 덕분이다. 한국계 영국인인 그는 허리에 태극기와 영국 국기가 새겨진 경기복을 입고 시속 200㎞ 이상의 속도로 질주했다. 그의 F1 데뷔 경기장이, 태극기에도 첫 무대가 된 셈이다.

한국계 첫 F1 레이서 잭 에이큰
경기복·헬멧에 태극기·한국이름
코로나로 선수 빠지며 기회 잡아
“한국 음식 즐겨, 소울푸드는 국밥”

한국인 어머니와 스코틀랜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레이싱 때마다 자신의 정체성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태극기나 한국 이름 ‘한세용’이 새겨진 경기복과 헬멧을 착용하는 식이다. 그는 최근 두 차례에 걸친 중앙일보와 코리아 중앙데일리(Korea JoongAng Daily)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1년에 한두 번씩 꼭 한국을 찾았고 한국어도 공부했다”고 말했다.

에이큰이 레이서의 길에 들어선 계기는 7살 되던 해 생일이었다. 모터스포츠 역사가 깊은 스코틀랜드 출신인 아버지는 생일 선물로 카트 레이싱을 가르쳐줬다. 카트는 연령 장벽이 낮아 대형 자동차를 운전할 수 없는 소년들에게 레이싱 입문 코스로도 통한다. 에이큰이 흥미를 보이자 아버지는 얼마 뒤 있을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또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다. 5~6세 때부터 F1 경기를 즐겨볼 정도로 자동차를 좋아했던 소년이 공부에 몰두한 이유였다.

에이큰의 F1 데뷔전 모습. [사진 윌리엄스팀]

에이큰의 F1 데뷔전 모습. [사진 윌리엄스팀]

이듬해부터 본격 레이싱 연습을 했지만, 그때만 해도 전문 레이서가 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에이큰이 12살이 될 무렵 유럽의 각종 대회에 참가한 큰 팀들이 그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여러 대회에 초청받았다. 레이싱을 취미가 아닌 잠재적 직업으로 고민하게 된 시점이었다. 학업을 놓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 부모님은 ‘주중에 학교 생활을 잘해야 주말에 경주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걸었다. 에이큰은 “다른 레이서와 비교하면 꽤 늦은 나이인 18살까지 학교에 다녔다”며 “레이싱을 너무나 하고 싶어서 시험도 잘 봐야 했다”고 회상했다.

레이싱 실력은 경주차 속도만큼 빠르게 늘었다. 2016년과 이듬해 3부 리그인 GP3 시리즈에 출전한 뒤, 2018년 F2에 진출했다. 이후 지난해, F1 명문팀인 윌리엄스에 합류해 리저브(예비) 드라이버로 이름을 올렸다. 보통 한 팀 당 두 명의 드라이버가 있는데, 이들 중 한 명이 다치는 등 운전할 수 없게 되면 경기에 투입되는 멤버다.

기회는 예기치 않은 순간 찾아왔다. 메르세데스팀 소속 루이스 해밀턴이 코로나19로 출전을 못 하게 되자, 윌리엄스팀의 조지 러셀이 그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러셀의 자리는 에이큰에게 주어졌다. 3년 연속 F2 챔피언십에서 활약한 경험과 F1 예비 드라이버로 준비한 시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데뷔전에서 그는 20명의 드라이버 중 16위를 차지했다. 그의 기대엔 못 미친 성적이었다. 경기 중 코너를 돌다 차체 앞부위가 파손되는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중도 포기하는 레이서들도 있지만, 에이큰은 완주했다. 에이큰은 “실수를 한 스스로에게 정말 실망했지만, 돌아보니 자랑스러운 일도 많았다”며 “속도도 꽤 잘 냈고, F1을 경험한 그 자체가 즐거웠다”고 말했다.

F1에 출전한 뒤 에이큰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젊은 레이서 지망생에게 롤모델도 됐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는 “바레인 경주 이후 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조언을 구해온다”며 “두 국기를 경기복에 달고 출전한 것이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한국 음식을 매우 좋아해 평소에도 가족과 함께 즐긴다는 그가 꼽은 소울푸드 중 하나는 국밥이다.

김선미 기자, 짐 불리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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