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안갯속에 ‘쌓인’ 선거라고요?

중앙일보

입력 2021.03.2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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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서울과 부산시장을 뽑는 재·보궐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를 앞두고 있으면 으레 많이 나오는 내용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선거의 향방이 아직까지도 베일에 ‘쌓여/싸여’ 있다” “선거 결과는 안갯속에 ‘쌓여/싸여’ 있는 상황이다” 등과 같은 표현이다. 이럴 때 ‘쌓여’와 ‘싸여’ 가운데 어느 것을 써야 할지 헷갈린다.

‘쌓여’를 고른 사람이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싸여’가 맞는 말이다. ‘쌓여’는 ‘쌓이다’를 활용한 말이고, ‘싸여’는 ‘싸이다’를 활용한 말이다. ‘쌓이다’는 여러 개의 물건을 포개어 얹어 놓는다는 뜻을 가진 ‘쌓다’의 피동사다. “책상에 먼지가 엄청 쌓여 있었다” “발밑에는 옷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처럼 쓸 수 있다. “수양이 쌓인 만큼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그 둘 사이에는 나날이 신뢰가 쌓여 갔다” 등에서와 같이 경험·기술·지식·재산·명예·신뢰 등이 많아지는 경우에도 ‘쌓이다’를 쓴다.

‘싸이다’는 “포장지에 싸인 선물” “보자기에 싸인 음식” 등에서처럼 물건이 보이지 않게 씌워져 가려지거나 둘려 말린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쓰인다. “신비에 싸인 원시림” “수심에 싸인 표정을 짓고 있다” “슬픔에 싸여 있다” 등에서와 같이 어떤 분위기나 상황에 뒤덮이는 경우에도 ‘싸이다’를 사용할 수 있다.

정리하면 ‘차곡차곡 포개지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쌓이다’, ‘뒤덮이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싸이다’를 쓰면 된다. 선거와 관련한 서두의 예문도 불확실성에 뒤덮여 있는 경우이므로 ‘베일에 싸여 있다’ ‘안갯속에 싸여 있다’가 맞는 말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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