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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관 쓴소리 “내편네편 나누면 정의와 공정 세울 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이 "수사와 재판이라는 사법의 영역에서는 우리 편, 상대편으로 편을 갈라서는 안 된다"며 검찰 내 '편 가르기'를 자제해 줄 것을 주문했다. 조 대행은 "제가 주재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회의"라며 자신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피아 식별은 정치와 전쟁 영역"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지난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새도시 투기 의혹 수사를 위한 긴급 관계기관 회의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지난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새도시 투기 의혹 수사를 위한 긴급 관계기관 회의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조 대행은 24일 대검찰청 확대간부회의 모두발언에서 "정치와 전쟁에서는 피아 식별이 중요하지만, 사법의 영역에서조차 편을 나누면 정의와 공정을 세울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우리 검찰은 언제부터인가 라인, 측근 등 언론으로부터 내 편, 네 편으로 갈려져 있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고 우리도 무의식중에 그렇게 행동하고 상대방을 의심까지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를 하나 되게 만드는 것은 거창한 구호나 이념이 아니라 법리와 증거"라며 "우리 모두 겸손해야 하고 자신의 철학이나 세계관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갈등으로 한동안 중단됐던 확대간부회의를 부활시켜 '편 가르기'를 지적한 것이다. 차기 검찰총장 인선을 앞두고 조 대행이 주재하는 마지막 회의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았다.

한 검찰 간부는 "잦은 인사와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검찰 조직을 추스르기 위한 주문"이라고 해석했다. 다른 간부는 "일선에서 법과 원칙과 증거에 입각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대검이 잘 지휘하라고 당부한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친정부 검사들을 요직에 기용하고, 현 정부를 겨냥한 수사를 하는 검사들을 좌천시키는 방식으로 줄 세우는 정권을 향한 비판"이라고 봤다.

"별건 수사 극도로 제한할 것"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조 대행은 이날부터 시행되는 '별건 범죄 수사지침'에 시행에 만전을 기할 것도 당부했다. 그는 "별건 범죄 수사를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만 허용하고, 허용하는 경우에도 수사 주체를 분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혁신적인 안"이라며 "검찰이 환골탈태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새 지침은 별건 범죄를 수사하려면 검찰총장에게 승인받아야 하고, 본건 수사 검사가 아닌 다른 검사가 맡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존에 해당 지검장의 승인으로 별건 수사가 가능했던 것보다 통제가 강화된 것이다. 별건 수사가 피의자의 방어권을 제약하고, 과잉·표적 수사 논란으로 이어져 검찰수사의 공정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데 따라 대검 인권정책관실이 마련했다.

조 대행은 불구속 수사 원칙도 강조했다. 그는 "검찰개혁 취지에 비춰 직접 수사 시 대부분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관행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직접 수사를 개시했다고 해 실적을 올리려고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자백을 받기 위해서 또는 공모자를 밝히기 위해 무리하게 구속수사하는 잘못된 관행은 이제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차장은 "정의를 세우되 지나치면 가혹해지기 마련이고 가혹한 수사는 당사자에게 승복받을 수 없고 보복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개 낮춰 신뢰 얻어야" 

검찰의 조직문화 쇄신도 주문했다. 그는 "'제 식구 감싸기'라는 국민들의 따가운 질책 속에서도 반성은 일회성에 그치고 오만하고 폐쇄적으로 보이는 조직 문화와 의식 속에 갇혀 국민들에게 고개를 낮추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좀 더 겸허한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조직 문화와 의식을 스스로 바꿔나갈 때 잃어버린 국민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조 대행은 최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합동감찰 등을 통해 검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한 것을 거론하며 "대검 관련 부서에서는 추가 개선방안을 조속히 마련해달라"고도 했다. 그는 "봄은 누가 부르지 않아도 찾아오지만 봄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봄은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며 검찰을 격려하는 말로 모두발언을 마쳤다.

이날 대검에서 확대간부회의가 열린 것은 1년여 만이다. 회의에는 대검 부·국장과 과장, 선임연구관 등이 참석했다. LH 부동산 투기 수사와 관련한 각 부의 지원방안과 수사 절차상 인권·방어권 보장 방안 등에 대해 토론했다.

정유진·강광우 기자 jung.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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