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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의 야·생·화] 양현종을 보낸 KBO리그, 추신수를 만났다

중앙일보

입력

시범경기에서 역투하는 텍사스 양현종 [AP=연합뉴스]

시범경기에서 역투하는 텍사스 양현종 [AP=연합뉴스]

[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올해 메이저리그(MLB)는 그 어느 시즌보다 풍성한 화젯거리를 만들어낼 듯하다. 한국 야구 최고 스타인 류현진(34·토론토 블루제이스)이 또 한 번 최고의 한 해를 준비하고 있다. 빅리그 2년 차가 되는 김광현(33·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과 KBO리그 출신 야수 최고액을 받은 김하성(26·샌디에이고 파드리스)도 스프링캠프에 한창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MLB 진입이 불투명했던 양현종(33·텍사스 레인저스)까지 개막 26인 로스터 진입을 눈앞에 뒀다. 25일엔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시범경기 첫 선발 등판에 나선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 우뚝 선 KBO리그 출신 스타들의 모습은 늘 한국 야구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양현종의 드라마는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이다. 그는 동갑내기 친구 김광현과 국가대표 원투펀치로 활약한 KBO리그 최고 투수 중 하나다. 지난해 말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본격적으로 MLB 문을 두드렸다.

처음엔 당당하게 '메이저리그 계약'과 '선발 보장'을 원했다.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면서 마음속 마지노선도 점점 후퇴했다. 그 사이 원소속팀 KIA 타이거즈가 거액의 다년 계약을 제시했다. 에이스 대우와 경제적 여유가 보장된 한국 생활. 처자식을 둔 양현종에게는 솔깃한 대안이었다.

양현종은 결국 '꿈'을 택했다. 가족의 지지 속에 결단을 내렸다. 한국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와 텍사스와 1년짜리 스플릿 계약을 했다. MLB에서 뛰면 최대 180만달러( 연봉 130만달러, 인센티브 55만달러)를 받을 수 있지만, 마이너리그에 머물면 헐값 연봉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는 미국으로 갔다. 초청 선수 자격으로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경쟁'과 '증명'이라는 낯선 단어를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크리스 우드워드 감독은 KBO리그 최고 투수의 실력을 금세 알아봤다.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 홈런을 맞았지만, "마운드에서 노련한 경기 운영과 마인드 컨트롤이 돋보였다"며 장점을 알아챘다. 두 번째 등판에선 "롱 릴리프 역할이 어울릴 것 같다"며 빅리그 로스터 진입을 시사했다. 세 번째 등판이 끝난 뒤엔 선발 등판 기회를 줬다.

한국에서 이름 석 자만으로 다른 설명이 필요 없던 투수는 그렇게 MLB로 향하는 계단을 바닥부터 하나씩 밟아 올라가고 있다. 그가 올라설 마지막 계단이 얼마나 높을지는 아직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시범경기 도중 더그아웃에서 동료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SSG 추신수 [연합뉴스]

시범경기 도중 더그아웃에서 동료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SSG 추신수 [연합뉴스]

문제는 양현종마저 떠난 한국 프로야구였다. 국내 최고 선수들이 하나둘씩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수록, KBO리그 흥행을 걱정하는 야구계 목소리도 커졌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MLB 인기에 밀려 국내 리그가 침체했던 과거가 떠올라서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필두로 김병현, 최희섭, 서재응, 김선우 등 내로라하는 한국인 빅리거들이 MLB에서 활약하던 시절이다. 한국 프로야구를 향한 야구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식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신화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이 없었다면, 국내 야구장 관중석은 지금도 텅 비어있을지 모른다.

바로 그때 한국에 추신수(39)가 상륙했다.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새 출발 한 SSG 랜더스가 '16년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영입했다. 그는 지금까지 KBO리그를 거친 그 어떤 외국인 선수보다 화려한 MLB 경력을 자랑하는 '한국인'이다. 계약, 입국, 자가격리, 선수단 합류, 첫 타석, 첫 안타, 첫 득점, 첫 타점…. 추신수의 일거수일투족과 플레이 하나하나가 모두 화제를 모았다.

이뿐만 아니다. 추신수와 인연이 있는 1982년생 동갑내기 선수들은 물론이고, 추신수와 처음 만나는 까마득한 후배들까지 모두 '추신수'라는 이름 석 자로 한 데 묶이고 있다. 스타플레이어 기근에 목말랐던 KBO리그가 모처럼 기분 좋은 바이브로 들썩인다.

가는 곳마다 스포트라이트가 따라다니는 삶. MLB에서 잔뼈가 굵은 추신수에게도 쉬운 일은 아닐 거다. 정규시즌이 시작되면 팀과 개인의 성적에 따라 이중으로 압박을 받아야 하니 더욱 그렇다.

그래도 그는 지금 베테랑답게 잘 이겨내는 중이다. 한국에서도 좋은 플레이를 하겠다는 열정, 폭발적인 관심의 무게를 이겨내겠다는 냉정. 그 사이에서 현명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 김광현과 양현종이 없는 KBO리그에 추신수가 왔다. 올해는 MLB도, 한국 야구도 함께 '흥할' 조짐이다.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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