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부터 밝히고 시작? 장르물 진화 이끄는 ‘괴물’ ‘마우스’

중앙일보

입력 2021.03.24 16:52

‘괴물’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만양 파출소 이동식(신하균) 경사와 한주원(여진구) 경위. [사진 JTBC]

‘괴물’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만양 파출소 이동식(신하균) 경사와 한주원(여진구) 경위. [사진 JTBC]

드라마가 범인 찾기에 푹 빠졌다. tvN 수목드라마 ‘마우스’는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상위 1%에 해당하는 프레데터 찾기가 한창이고, JTBC 금토드라마 ‘괴물’은 지난 20년간 만양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연쇄 살인마를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기존 장르물과 달라진 게 있다면 범인이 누군지 일찌감치 패를 다 까고 시작한다는 점. 마지막까지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꼭꼭 숨겨놓았던 그동안의 장르물과 달리 충분히 많은 힌트를 제공하면서 과연 이 사람이 범인이 맞는지 의심하게 한다. 왜 모든 단서가 이 사람을 향하고 있는지, 그가 범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시청자들이 역으로 따져보게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범인에 대한 단서 충분 제공
'왜 범인 됐나' 치열한 두뇌게임 벌여
결과보다 과정 중시하는 방식으로 변화

이는 한층 더 복잡해진 두뇌 싸움을 유발한다. ‘마우스’는 임산부 검사를 통해 태아에게 사이코패스 유전자가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설정으로 방송 첫 회부터 연쇄 살인마 한서준(안재욱)의 정체를 공개했다. 이후 6회 만에 그의 아들인 성요한(권화운)이 저지른 범행이 차례로 드러났고 이제 관심사는 정바름(이승기)에게 옮겨간 상황. 만약 두 사람이 99%는 사이코패스, 1%는 천재에 해당하는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무엇이 한 사람은 잔혹한 살인마로 만들고 다른 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곱씹게 한다. 사고로 정바름이 각성하거나 변모한다면 2차, 3차 범인 찾기가 펼쳐질 가능성도 있다.

증거만 있으면 범인? 다시 뒤집어보자

‘마우스’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고무치(이희준) 형사와 정바름(이승기) 순경. [사진 tvN]

‘마우스’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고무치(이희준) 형사와 정바름(이승기) 순경. [사진 tvN]

‘괴물’은 화살표는 매회 다른 인물을 향한다. 20년 전 쌍둥이 동생 이유연(문주연)의 살인 용의자로 조사를 받은 이동식(신하균) 경사는 공공의 적이다. 만양에서 새로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가장 먼저 용의 선상에 오른다. 하지만 그를 의심하게 한 증거를 하나씩 뒤집어 보면 또 다른 정황이 포착된다. 그의 유일한 친구인 박정제(최대훈) 경위부터 남달리 아껴주던 남상배(천호진) 소장 등 가족같이 지내던 동료 경찰이 속속 의심스러워지는 것. 이미 6회에서 연쇄살인범은 만양슈퍼 사장 강진묵(이규회)으로 밝혀졌지만 이유연 사건이 미제로 남으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장르물의 문법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두 작품에 열광하는 것도 이런 심리 게임의 묘미 때문이다.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두 작품 모두 범인이 누구냐는 결과론이 아니라 왜 그렇게 됐느냐는 과정에 집중하면서 몰입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고 짚었다. 이어 “‘마우스’가 반전에 반전을 노리고 이야기를 꼬아가는 바람에 사이코패스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반면 ‘괴물’은 살인 사건뿐 아니라 지방 소도시의 개발 담론에 얽힌 인간의 욕망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나, 너, 우리 모두가 괴물일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건서 개인으로…심리 파헤치는 장르물  

극 중 사고에서 깨어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정바름(이승기) 순경. [사진 tvN]

극 중 사고에서 깨어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정바름(이승기) 순경. [사진 tvN]

범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 부분.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사건에 집중했던 장르물이 범인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기 미제 사건을 다룬 ‘시그널’(2016)이나 검찰 스폰서 사건으로 촉발된 ‘비밀의 숲’(2017), 검경수사권 조정을 다룬 ‘비밀의 숲 2’(2020) 등 거대한 구조적인 문제에서 개인으로 그 범위를 좁혀 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4~5년간 장르물이 늘어나면서 전형적인 구도나 장면을 짜깁기한 작품도 많아졌다. 장르물에 대한 피로도를 높인 이유”라며 “통상 사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둘러싼 인물과 감정 묘사가 훨씬 중요하다. 이를 소홀히 하면 결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덕분에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인의 심리 묘사도 상당히 세밀한 편이다. ‘마우스’에서는 남편에 이어 아들까지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지켜보면서 무너져 내리는 성지은 역의 김정난이나 이들 손에 부모와 형을 잃은 피해자 고무치 형사 역 이희준의 호연이 돋보인다. ‘괴물’의 과감한 캐스팅도 빛을 발했다. 극을 이끌어가는 신하균-여진구를 제외하면 정육점 사장 유재이 역의 최성은, 문주서 강력팀장 오지화 역의 김신록 등 낯선 얼굴이 대부분이지만 연기 구멍 없이 하나같이 괴물 같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괴물’에서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진 만양슈퍼 사장 강진묵(이규회). [사진 JTBC]

‘괴물’에서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진 만양슈퍼 사장 강진묵(이규회). [사진 JTBC]

극본 및 연출에 대한 호평도 줄을 잇는다. ‘마우스’를 쓴 최란 작가는 사극 ‘일지매’(2008)부터 ‘신의 선물-14일’(2014)과 ‘블랙’(2017) 등 판타지로 영역을 확장해왔고, ‘괴물’의 김수진 작가는 ‘매드독’(2017) 등 독특한 장르물로 이름을 알렸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괴물’에서 만양읍이라는 폐쇄적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밀도 있게 전개해 나가는 극본도 좋지만 심나연 PD의 담담한 연출이 특히 돋보인다”고 말했다. ‘열여덟의 순간’(2019)으로 장편 데뷔한 심 PD는 첫 장르물 도전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몰입감을 높인다는 평이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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