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가운데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최근 대남 비방 담화가 이번 사태를 예고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 부부장은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2+2(외교ㆍ국방장관) 회의를 위해 방한하기 이틀 전인 지난 15일 담화문을 내면서 "앞으로 4년간 발편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교롭게도 북한은 이 담화를 낸 뒤 맞은 첫 일요일 아침(21일 오전 6시 50분쯤)에 단거리 순항미사일 2발을 서해 상으로 발사했다.
3년 전 남북회담서 김정은 "새벽잠 설치지 않게 하겠다" #군 당국 함구…"통상 합참은 청와대 지침받아 발표" #"선거 앞 여당에 악재 가능성"…"바이든 행정부도 부담"
과거 북한 수뇌부는 정반대 맥락에서 비슷한 얘기를 꺼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이 우리 때문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하시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다. 앞으로 문 대통령이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통상 북한이 새벽이나 아침에 하는 미사일 시험발사를 더는 하지 않겠다는 취지였다. 정부 소식통은 "'새벽 잠'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김여정 명의로 북한이 메시지를 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북한이 미리 준비한 대로 행동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청와대 안보실 지침 따라 발표”
군 당국이 북한의 무력시위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도 발표하지 않은 배경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그간 군 당국은 북한의 주요 미사일 도발 동향을 언론을 통해 즉각 공개해왔다. 지난해 4월 14일 북한이 강원도 문천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순항미사일 수 발을 발사했을 때 합동참모본부는 관련 사실을 당일에 밝혔다.
이번에도 단거리 순항미사일 발사였지만, 군 당국은 미국 언론이 보도하고 미 국무부가 확인해준 뒤에야 시인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와 관련, 24일 합참 관계자는 "한ㆍ미가 포착한 정보를 분석하는 과정에 있다"며 "북한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공개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군 안팎에선 "군이 침묵하면 오해를 산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훈련과 2+2 회의 등으로 어느 때보다 북한 동향에 대해 국민의 우려와 관심이 높은 시기란 점에서다.
군 안팎에선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통상 합참은 미사일 발사와 같은 민감한 대북 군사동향은 즉시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장관에게 동시에 보고를 한다"며 "언론을 통한 대외 발표는 안보실 지침에 따라 작성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와관련, 한ㆍ미가 북한 순항미사일 발사를 놓고 '무시 전략'으로 나서기로 조율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출범 이후 대북 정책 재검토 과정에서 북한을 무시하는 전략을 취해온 바이든 정부 입장에서도 북한의 저강도 도발을 공개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오히려 반응을 내면 북한이 그것조차 이용할 수 있기에 큰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했을 수 있다"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당분간 중국에 집중하기 위해 북한 문제가 불거지지 않기를 바랄 것"이라고 짚었다.
정부 역시 내부적으론 북한의 저강도 미사일 도발에 대해 공개 대응하는 게 오히려 말려드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미사일 발사 비공개를 놓곤 국내 상황과 연결짓는 해석이 나온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정부가 4·7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여당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소재를 공개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군사적인 판단보다는 정무적인 판단이 앞섰다는 인상이 든다"고 말했다.
남북ㆍ북미 관계 모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북한의 도발 수위가 더 올라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신 센터장은 "이번 시험발사는 춘계 도발의 시작점으로 보인다"며 "당장 다음 달 15일 김일성 생일이 있는 만큼 북한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가 끝나면 그 내용을 두고도 북한의 군사적인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철재ㆍ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