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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이 콕 찍은 발레리노→안무가 송정빈, 나빌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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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의 무용수 송정빈. '해적'으로 안무가로서의 역량도 입증했다. 장진영 기자

국립발레단의 무용수 송정빈. '해적'으로 안무가로서의 역량도 입증했다. 장진영 기자

“상대의 팔을 내가 컨트롤해야 해요. 어깨는 꺾이면 안 되고요. 잘했는데 우리 한 번 더해볼까요?”  

지난 1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은 연습복에 소박한 니트 카디건을 걸치고 단원들에게 직접 열성 지도 중이었다. 국립발레단이 23~28일 예술의전당에서 올리는 클래식 발레 ‘해적’ 리허설이다. 강 단장과 김기완 수석무용수, 조연재 단원은 방역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도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 17일 '해적' 리허설. 강수진 단장이 직접 김기완ㆍ조연재 무용수를 지도 중이다. 전수진 기자

지난 17일 '해적' 리허설. 강수진 단장이 직접 김기완ㆍ조연재 무용수를 지도 중이다. 전수진 기자

‘해적’은 국립발레단이 올해 처음 올리는 무대다. ‘해적’은 에너지가 가득하지만 전막 공연은 세계 유수 발레단들도 좀처럼 하지 못한다. 3막에 걸친 장시간 공연인 데다, 줄거리가 다른 작품들에 비교해 복잡하고 무대장치 및 소품의 스케일도 만만치 않기 때문. 그러나 국립발레단의 선택은 ‘해적’이었다. 대신 과감한 혁신을 택했다. 3막을 2막으로 줄이고, 21세기에 맞지 않는 노예 인신매매 스토리도 수정했다. 파워풀한 남성 군무로 첫 무대를 장식하고, 해피엔딩으로 극을 마무리한다. 이 모든 재창조를, 강수진 단장은 발레단의 남성 무용수, 송정빈에게 일임했다. 왜일까.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라는 게 송정빈 씨가 환히 웃으며 내놓은 답이다. 강 단장이 취임 후 집중해온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에서 발군의 안무 실력을 보여온 송정빈이지만, 전막 안무는 첫 도전이었다.

그는 “단장님께서 도전을 하는 걸 좋아하시니까 모험을 하신 것 같다”며 “좋은 기회였고, 무엇보다 우리만의 ‘해적’이나 ‘백조의 호수’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도 있었다”고 말했다. 공연 때마다 적잖은 개런티를 지불해야 하는 작품도 의미는 있지만 한국만의 ‘메이드 인 코리아’ 클래식 발레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것. 그는 또 “한국적인 요소를 녹인 우리 발레단의 ‘왕자 호동’ 같은 작품과 동시에, 세계 관객들에게 익숙한 클래식 작품을 우리 식대로 표현하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그는 ‘발레리노 송정빈’에서 ‘안무가 송정빈’으로 거듭났다.

발레리노 송정빈. 워낙 잘 웃어서 스스로를 '웃상'이라고 말한다.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높이 점프를 하고도 웃는 모습. 장진영 기자

발레리노 송정빈. 워낙 잘 웃어서 스스로를 '웃상'이라고 말한다.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높이 점프를 하고도 웃는 모습. 장진영 기자

촬영 현장에서도 베스트 컷을 위해 계속 점프하고 또 점프했다. 전수진 기자

촬영 현장에서도 베스트 컷을 위해 계속 점프하고 또 점프했다. 전수진 기자

그 스스로가 발레 무용수이다 보니 테크닉 면에서 레벨이 높은 안무도 많이 넣었다고 한다. 그는 “애들이 ‘형 이걸 어떻게 하라고’ 하면서도 결국 다 해내더라”며 “다들 연습하고 나면 집에 바로 가서 기절할 정도로 열심히 했고, 후회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번 작품은 모두의 노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동료 무용수들은 물론, 발레단 안팎에서 음악과 무대조명, 의상 담당부터 홍보까지 모든 스탭에 공을 돌리면서다. 그는 “발레단에 있으면서 롤랑 프티부터 유리 그리가로비치 등 전설적인 안무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며 “최고의 무용수들과 함께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는 점도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발레리노 송정빈. 앞으로 다양한 방면으로 성장이 기대된다. 장진영 기자

발레리노 송정빈. 앞으로 다양한 방면으로 성장이 기대된다. 장진영 기자

무용수로서의 송정빈도 성장 중이다. ‘해적’ 이후 국립발레단이 준비 중인 ‘라 바야데르’에도 주요 캐릭터로 출연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다고 겸손해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무용수로서 저는 최선은 항상 다하지만 한계점은 알고 있어요. 안무는 다른 얘기이지만요. (무용수로서 저는)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걸 잘하자’고 생각해요.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저는 캐릭터 연구나, 연기도 너무 재미있거든요. 제가 수석처럼 테크닉이 아주 특출나진 않지만 저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최대치로 스스로를 보여드리기에 후회는 없어요.”  

그는 이어 최근 화제 드라마 ‘빈센조’에 나오는 무용수 김설진을 언급하며 “안무부터 연기까지 도전하며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진짜 대단하다”며 “저도 그렇게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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