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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이 대낮 절도”VS “우리도 피해자” …하루 아침에 사라진 벼 600t 공방

중앙일보

입력

충남 예산의 미곡종합처리장에서 보관 중이던 600t의 벼를 농민들이 훔쳐갔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대낮 절도범으로 지목된 농민은 “떼인 돈을 벼로 받았을 뿐 우리도 피해자”라며 반박했다.

충남경찰청, 벼 불법 반출 고소장 접수

한순간에 사라진 벼 600t  

지난 23일 전남 영광군 영광군유통 저온저장고가 텅 비어 있다. 충남 예산 RPC에서 600t의 벼를 받아와 가득 채울 예정이었지만, 물거품이 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3일 전남 영광군 영광군유통 저온저장고가 텅 비어 있다. 충남 예산 RPC에서 600t의 벼를 받아와 가득 채울 예정이었지만, 물거품이 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24일 충남경찰청에 따르면 미곡 유통업체인 ‘영광군유통’이 충남 예산의 한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을 통해 매입해 보관 중이던 벼 600t을 농민 200여 명이 불법 반출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이 접수됐다. 영광군유통은 영광군과 영광지역 농민들이 공동 출자한 지방공기업이다.

영광군유통은 지난 1월 12일 쌀 수급 안정을 위해 풀린 정부 공공비축미 600t을 10억7000만원에 사들였다. 영광군유통이 RPC 창고에 보관 중이던 벼를 영광으로 옮기려 하자 예산지역 농민들이 가로막아 출하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대금을 모두 지급했는데도 벼 반출을 못 하던 와중에 지난 2월 4일과 6일 예산지역 농민들이 600t 전량을 창고에서 반출해 갔다. 이 벼는 농민이 가져간 뒤 대부분 판매돼 회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영광군유통 관계자는 “600t의 벼는 영광군유통이 정당하게 매입한 것이기 때문에 농민 불법 행위를 막아달라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며 “지급한 대금 10억원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영광군유통은 올해 약 10억원 어치의 벼를 재가공해 상품화할 예정이었다.

예산 농민들 “우리도 피해자”

지난 2월 충남 예산지역 농민들이 미곡종합처리장 창고에 보관 중이던 600t의 벼를 반출하는 모습. 사진 영광군유통

지난 2월 충남 예산지역 농민들이 미곡종합처리장 창고에 보관 중이던 600t의 벼를 반출하는 모습. 사진 영광군유통

이런 가운데 지난해 12월께 예산지역 농민 200여 명이 예산지역 민간 RPC에 납품한 약 13억원 어치의 벼 대금을 못 받은 사실이 불거졌다. 영광군유통이 벼 600t을 매입한 곳과 같은 업체다.

당시 예산 농민 측은 비상대책위를 꾸려 RPC에 대금 지급을 요구했지만, 받아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예산 농민들은 “우리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당시 예산 농민 비대위 관계자는 “RPC에서 보관하던 벼도 우리 농민들이 농사지어서 수매한 것이고 그걸 가져가면 우리도 돈을 받을 길이 없으니 막았던 것”이라며 “RPC 대표가 밀린 대금을 벼로 갚겠다고 해서 창고를 열어줘 가져갔을 뿐이다”고 말했다.

영광군 농민 출자법인…“농민들이 2차 피해”

지난 23일 600t의 벼를 채우지 못한 전남 영광군 영광군유통 저온저장창고가 텅 비어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3일 600t의 벼를 채우지 못한 전남 영광군 영광군유통 저온저장창고가 텅 비어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영광군유통은 벼 출하 직전에 예산군이 지역 농민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는 바람에 피해를 키웠다고 한다. 이에 예산군은 “개인 간 거래였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았다”라며 “지역 농민 200여 명이 10억원이 넘는 대금을 받지 못했던 상황이기 때문에 동향 파악만 했고 출하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

충남경찰청 관계자는 “예산 농민이 받을 돈 대신 벼를 가져갔는지 등 사실관계부터 살펴보고 법을 어겼는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영광·예산=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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