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친구 셋과 자전거 국토 종주 떠났다 혼자 돌아온 아들

중앙일보

입력 2021.03.24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84)

집 앞 자전거 도로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두 바퀴가 이어 달린다. 우비도 자전거도 어쩜 저리 색도 예쁘게 맞췄는지 비 오는 풍경이 색다르다.

내게도 자전거 추억이 있다. 비포장도로가 막 아스팔트 공사로 조금씩 변해 가던 시절이다. 내 가족은 금호강 둔덕에 살았는데, 동네 사람들은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니며 모래 장사를 했고 조금 잘 산다 싶으면 파란색 세발 용달차를 탔다.

아버지가 타던 커다란 짐받이 자전거는 지금의 소형 자가용이었다. 그땐 어린이용 자전거가 귀해 아이들은 쉽게 배우지 못했다. 운동신경이 발달한 친구는 커다란 짐 자전거 사이에 다리를 끼워 넣고는 자전거와 사람이 V자가 되어 넘어질 듯 말듯 서서 타고 달렸다. 우리는 묘기 보듯 그 모습을 부럽게 쳐다보았다. 그 시절 한 친구가 아버지 몰래 끌고 나온 짐 자전거로 내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줬다. 몇 번이나 무릎을 까이면서도 재밌는 시간이었다. 며칠 만에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서 아스팔트에 올라선 느낌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빙판길 미끄러지듯 하던 그 오묘한 첫 느낌.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과 친구 셋은 전국을 자전거 종주하는 계획을 짰다. 모두 그날을 위해 체력도 키우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사진 pixabay]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과 친구 셋은 전국을 자전거 종주하는 계획을 짰다. 모두 그날을 위해 체력도 키우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사진 pixabay]

빗속을 달리는 자전거를 보노라니 아들의 자전거 폐기 사건이 생각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과 친구 셋은 전국을 자전거 종주하는 계획을 짰다. 서울 출발~서해안을 따라 내려가 제주도 찍고 부산을 거쳐 동해안도로를 타고 올라가 강릉까지. 모두 그날을 위해 체력도 키우고 열심히 운동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요즘은 자전거 가격이 차 한 대 값을 버금가는 것도 있고 전문가용은 거의 백만 원대가 넘는다. 무지한 우리는 성인용 일반 자전거 중에서 조금 비싼 십만 원대 자전거를 사주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휴대폰이 없어 당일 목적지에 도착하면 공중전화로 연락을 받았다. 종일 마음이 어수선하고 애간장이 탄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그해는 비도 어찌 그리 많이 내리던지…. 거의 열흘은 쉬지 않고 내렸을 것이다. 출발 첫날도 비가 내렸다. 걱정이 되어 며칠 뒤로 미루면 안 되냐고 하니 안 된다고 했다.

소낙비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무엇을 보았니. 내 아들아, 무엇을 보았니. 내 딸들아.” 종일 염불하듯이 그 노래를 중얼거렸다. 저녁이면 노래 가사처럼 무엇을 보았고 어떤 일이 있었으며 누구를 만났다고 미주알고주알 뉴스를 전해주었다. 그런데 제주도까지 찍고 육지로 나온 날, 두 명의 자전거가 고장 나고 체력도 바닥나 거기서 포기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너희도 비도 오고 하니 그쯤에서 끝내면 안 되겠냐” 하니 가는 데까지 가보다가 결정하겠단다. 다시 며칠 동안 거치는 곳곳에서 연락을 주고받으며 부산에 도착했는데 자전거가 고장 나 고치는 중이라는 전화 목소리에서 무언가 ‘쏴~’한 감정이 느껴졌다.

“거기서 엄마랑 잠시 만나자. 내가 6시쯤 부산 도착이니 부산역에서 기다려.”

비 오는 봄날 두 바퀴로 달리는 자전거를 보면 낭만을 느끼기 보다 마음이 뭉클해진다. [사진 pixabay]

비 오는 봄날 두 바퀴로 달리는 자전거를 보면 낭만을 느끼기 보다 마음이 뭉클해진다. [사진 pixabay]

그해의 비 피해는 엄청났다. 차창 밖 풍경은 온 동네가 물에 잠긴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부산에 도착하니 친구랑 둘이 다닌다던 아들이 혼자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 목포에서 셋은 중단하고 거기서부터 혼자서 달린 것이다. 중간에 포기하면 쪽팔릴 것 같아서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단다. 그러다 자전거가 더 이상 못 탈 지경에 이른 것이다. 반가움에 아들을 부둥켜안고 울컥했다. 나는 너무 놀라고 속상해 등짝을 후려쳤다. 더 이상 고칠 수 없게 된 자전거는 쓰레기장에 버렸다.

40대를 향해 달려가는 아들이 낯선 땅에서도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잘 살아가는 비결은 그때의 두렵고 고독했던 시간이 가르쳐 준거라 한다. 여럿이 힘을 모으고, 대화하고, 결정을 내리며, 함께 사는 법도 배웠지만, 모두가 떠나고 난 후 온전히 혼자 달리며 많은 생각도 할 수 있었고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자유와 멀리서도 자식의 마음을 읽는 부모 사랑도 느꼈단다.

자전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경품 당첨으로 받은 한 번도 타지 않은 새 자전거가 창고에 처박혀 있다는 걸 알았다. 가족 실은 짐 자전거 끌고 멈추면 쓰러질 듯 열심히 인생길 달리다 보니 어느새 짐도 자전거도 다 사라지고 혼자 여유롭게 걸어도 되는 시절이 왔다. 초보 배움용으로 요긴하게 쓸 사람을 위해 당근마켓에 올려봐야겠다. 비 오는 봄날 두 바퀴로 달리는 자전거를 보며 낭만보다 마음이 뭉클해지는 건 왜일까.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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