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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징그러운 가해자 중심주의, 민주당의 성추행 잔혹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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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공천을 통해 시민들로부터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도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작년 10월 당시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한 말이다. 어느새 심판의 그 날이 다가왔다. 성추행을 하고도 스스로 책임지기를 거부하는 정당에 책임을 지우는 길은 그의 말대로 “시민들로부터 심판”밖에 없다.

“박원순은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나?”“박원순이 롤 모델” #성추행 부정하는 책 출판까지…조직적 가해구조 여전 #고통 호소하는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2차가해 당장 멈추고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가게 회복 돕는 게 우리의 의무

민주당 안의 가해구조

충남도지사, 부산시장, 서울시장. 민주당 지자체장들이 연이어 성추행을 저질렀다. 이쯤 되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당이라는 조직 자체에 뭔가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의 그 징그러운 조직문화는 성추행 자체만이 아니라 그 사건들을 처리하는 방식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여성운동의 대모’라는 남인순 의원은 박원순 전 시장 측에 성추행 피소 사실을 알려주었다. 단톡방에서는 피해여성을 ‘피해자’가 아닌 ‘피해호소인’이라 부르자고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에 관해 묻는 기자에게 ‘후레자식’이라 욕설을 퍼부었다.

가족장으로 예정되었던 박 전 시장의 장례는 갑자기 ‘서울시장(葬)’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피해자는 이를 보며 “절망을 느꼈다”고 했다. 성추행 2차 가해를 했던 오성규 전 비서실장은 경기도 테크노파크 원장으로 영전했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중소기업벤처부장관 시절에 승인하고,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임명했다.

민주당은 당헌까지 고쳐 후보를 공천했고, 공천을 받은 박영선 후보는 ‘피해호소인’ 3인방을 공동선대본부장과 캠프 대변인에 임명했다. 쏟아지는 비난으로 이들이 사퇴하자 “20만 표가 날아갔다는 말이 있다”며 아쉬워했다. 진성준 의원은 ‘피해호소인’이란 표현은 “불가피했다”며 이들을 두둔했다.

보궐선거로 박원순 복권 시도

퍼스펙티브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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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후보만이 아니다. 그와 경선을 벌였던 우상호 후보 또한 제 SNS에 박원순이 “롤 모델”이라며 “박원순이 우상호이고, 우상호가 박원순”이라 써 올렸다. 열성 지지자들의 표 때문에 박원순의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치러지는 보궐선거를 그의 정치적 명예회복의 장으로 바꾸어 놓으려 한 것이다.

지지자들의 상태는 더 심각하다. ‘조국백서’의 저자 김민웅 교수와 민경국 전 서울시 인사기획비서관은 피해자가 박 전시장의 생일을 맞아 보낸 친필 편지를 공개했다. 변태가 아니라면 직원이 생일 때마다 시장에게 편지를 보내야 하는 사정에서 시장실을 지배하는 구조화한 억압의 실체를 짐작할 게다.

보궐선거가 박원순의 정치적 복권의 장으로 흐르는 것을 보다 못해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자 TBS 공중파를 통해 김어준이 그것을 “정치 행위”라고 비난한다. “그걸 비판한다고 2차 가해라고 하면 안 된다.” 이런 헛소리가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중파로 흘러나간다.

친여 매체 오마이뉴스의 손병관 기자는 아예 박원순의 성추행 사실을 부정하는 책(『비극의 탄생』)까지 냈다. 그 책에 친노무현 인사 조기숙 교수가 추천사를 썼고, 나꼼수 김용민이 방송을 통해 자락을 깔아 주었다. 그 기자 역시 피해자의 기자회견이 5~6개월 전에 계획된 것이라는 음모론을 편다.

그들이 진짜 하고 싶은 말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은 공식적 사실이다. 그는 목숨을 끊음으로써 그 사실을 자인했다. 제게 닥칠 그 모든 불이익을 각오하고 피해자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의 죽음으로 수사가 중단됐지만, 검찰·법원에 이어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51명의 증언을 토대로 그의 성추행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은 피해자의 증언을 흠집내는 데 골몰할 뿐 자신들의 ‘시나리오’를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왜? 그들의 주장이 말이 되려면, 20대의 젊은 여성이 ‘난닝구’ 입은 사진이나 보내는 60대의 노인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대단히 비현실적인 가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은 결국 피해자가 박 전 시장에게 먼저 추근대다 허위 폭로를 했다는 것이리라. 그렇게 대놓고 말을 못 하니 피해자가 보낸 편지를 공개하는 식으로 변죽만 울려대는 것이다. 그걸로도 모자랐나 보다. 그의 폭로에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대안 서사까지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

박 전 시장은 왜 자살했는가? 그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선정성을 악용하는 언론과 정치권이 가하는 인신공격이 무서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반복돼선 안 된다.”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 결국 피해자의 폭로와 언론과 정치권의 선정성이 무고한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얘기.

조직적 공격당하는 피해자들

그들은 이렇게 피해자를 가해자로, 가해자를 피해자로 바꿔 놓았다. 지난 1월 ‘적폐청산 국민연대’에서는 피해여성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하자 그들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이라며 그를 선거법 위반혐의로 선관위에 고발했다.

안희정 사건 때에도 민주당 지지자들은 피해자를 조직적으로 공격한 바 있다. 안으로는 똘똘 뭉쳐 피해자를 이상한 여자로 만들어 버리고, 밖으로는 지지자들을 동원해 피해자에게 무차별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피해자를 위해 증언한 몇 안 되는 이들은 ‘배신자’로 찍혀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윤미향 사태 때는 어땠는가.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용수 할머니를 향해 “위안부가 뭔 벼슬이냐”, “진짜 위안부가 맞느냐”는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은 바 있다. 애먼 이들에게 ‘토착왜구’ 딱지를 붙이더니, 정작 위안부를 부인하는 토착왜구는 자기들이었던 셈이다. 징그러운 족속이다.

실제로 피해자성을 부인하는 이들의 논리는 위안부를 부정하는 한·일 극우파의 주장과 동일하다. ‘증언만 있을 뿐 물증이 없다’ ‘피해자의 증언이 오락가락한다’ ‘반대되는 증언도 있다.’ 세세한 것을 트집 잡아 실체적 진실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반일 종족주의’와 ‘비극의 탄생’은 남근주의 쌍생아다.

그들의 가해자 중심주의

이는 여성에 대한 남성 권력의 폭력이 진영과 국경을 넘어 ‘가해구조’로서 엄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구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들이 외려 죄인처럼 숨어 지내야 했다. 그 징그러운 구조에 균열을 내려고 ‘피해자 중심주의’의 원칙을 관철시킨 것이 하필 박 전 시장. 비극적인 역설이다.

박 전 시장이 그 ‘피해자 중심주의’에 발목을 잡혔단다. 아니다. 그의 죽음은 결코 피해자 중심적이지 않았다. 그는 유서에서 제 잘못을 인정하지도, 피해자에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외려 죽음으로써 진상의 규명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조장했다. 누구 말대로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피해자가 불이익을 무릅쓰고 거짓말할 이유는 없다. 반면 가해를 돕거나 방조한 이들에겐 거짓말할 이유가 있다. 증언의 무게가 같을 리 없다. 안희정 사건에서 봤듯이 그들은 피해자의 편을 든 이들에겐 ‘조직의 쓴맛’을 보여준다. 그런 이들의 증언만 골라 모아 아예 ‘가해자 서사’를 구성한 것이다.

가해자 중심주의는 성추행을 그레이 로맨스로 둔갑시킨다. “공직자의 로맨스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직 그의 배우자일 뿐이다.”(조기숙 교수) 피해자는 2차 가해로 고통을 받는데, 그에게 “장미빛 미래”(손병관 기자)가 펼쳐지고 있단다. 여기엔 가해자의 이해가 있을 뿐, 피해자의 배려는 없다.

박원순이 돌아온다

“용산 공원의 숲속 어느 의자엔가 (…) 박원순의 이름 석 자를 새겨넣었으면 좋겠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말이다. 그는 묻는다. “박원순은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나?” 피해자에게 박원순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박원순은 떠났어도 이렇게 가해의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사람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저를 상처 주었던 정당에서 시장이 선출되었을 때 저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든다.” 이 두려움은 현실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피해자의 두려움에서 선거법 위반만을 본다. “지금의 인터뷰는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 정경심 변호인단으로 활동한 김필성 변호사의 말이다.

손병관 기자는 피해자의 호소를 “정치적 반사이익을 받을 곳이 보은할 것으로 계산”해서 하는 행위로 본다. 그게 그가 말한 피해자의 “장미빛 미래”인가 보다. 하지만 성추행 피해자에게 “장미빛 미래”란 없다. 그저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일상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그 회복을 도울 의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당장 멈추라, 그 징그러운 가해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정정보도문]

본지 2021년 3월 24일자 28면 및 홈페이지(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18979#none)「[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징그러운 가해자 중심주의, 민주당의 성추행 잔혹사」 제하의 기사에서 "성추행 2차 가해를 했던 오성규 전 비서실장은 경기도 테크노파크 원장으로 영전했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중소기업벤처부장관 시절에 승인하고…"라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오성규 전 비서실장은 현재까지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임명된 사실이 없고,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2021.01.20자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직을 사임하여, 해당 승인 자체가 불가능하며, 실제로 승인한 사실이 없음이 확인되어 위 보도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선거기사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