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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가 급등해도 재산공제는 그대로, 기초연금 2만명 탈락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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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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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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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데가 세종시다. 70.68% 올랐다. 호려울마을 7단지는 133% 올랐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기초연금도 영향을 받는다. 소득하위 70%에 속하는 단독가구는 30만원, 부부 노인은 48만원을 받는다.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것과 근로소득 등을 더해 월 소득인정액이 169만원(부부 270만4000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

공시가격 19.1% 급등 반발 확산 #“은퇴후 소득없이 내집에 사는데 #건보료 올리고 복지 축소하느냐” #선진국 ‘사는집=주거권’ 집 면제

세종시 A씨는 다른 소득이 없고 공시가격 3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만 있어 매달 30만원의 기초연금을 받는다. 올해 공시가격이 6억원이 됐다면 내년 4월 수급 대상에서 탈락한다. B씨는 공시가격 1억5000만원짜리 집에서 살면서 경비일 등으로 매달 215만원을 벌고 30만원의 기초연금도 받는다. 올해 공시가격이 2억5000만원으로 오르면 탈락한다.

공시가격, 기초연금

공시가격, 기초연금

별 소득이 없고 공시가격 7억5000만원짜리 아파트에 사는 서울의 C씨 부부는 48만원의 기초연금을 받고 있다. 공시가격이 9억5000만원으로 오르면 기초연금에서 탈락한다. 8억1000만~9억4000만원이 되면 연금액이 깎인다. 세종시 호려울마을 7단지 입주자대표회 김철주(58) 회장은 “지난해 4억원이던 아파트 공시가격이 순식간에 9억원 넘었다. 기초연금을 못 받고, 시니어클럽 일자리 대상에서 탈락하거나 이동통신료 감면 혜택이 사라질까 걱정하는 주민이 많다”며 “소득이 없는 1주택자인데…”라고 말했다.

한국에는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복지 잣대’가 있다. 바로 재산, 특히 주택이다. 영국·독일·호주 등은 본인이 사는 집은 복지 잣대로 따지지 않는다. 주거권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다. 호주는 집과 같은 토지대장에 속한 2헥타르(약 2만㎡) 땅까지 제외한다(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 한국은 이들과 달리 1주택도, 전월세 보증금도 따진다. 소득파악률이 낮아 재산을 보조 잣대로 사용해왔다.

건보 피부양자 재산기준 그대로

건보 피부양자 재산기준 그대로

그래서 공시가격이 오르면 40여 가지의 복지 급여나 서비스가 흔들린다. 올해는 공시가격이 19.08% 올라 영향이 훨씬 크다. 복지 급여는 기초연금·기초수급처럼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거나 건보 피부양자처럼 일정 기준으로 자르는 방식이 있다. 매년 소득·재산 변동 때문에 기초연금 수급자 1만~2만명이 탈락한다. 2019년 공시가격이 5.23% 올랐을 때 1만6000명 탈락했는데, 이번에는 최소 2만명 가량 탈락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기 전 일정액을 공제한다. 하지만 공시가격은 껑충 뛰고 재산공제는 제자리걸음이다. 기초연금 재산공제액은 2014년 1억800만원(대도시 기준)에서 2015년 1억3500만원으로 25% 오른 뒤 그대로다. 기초수급자는 2020년 10년 만에 28% 올랐다. 2017~2021년에만 서울 공시가격이 67%, 세종 92% 올랐다.

재산 500만원만 공제하니 127만세대 건보료 인상

재산 500만원만 공제하니 127만세대 건보료 인상

경기복지재단 민효상 연구위원은 “선진국은 거주하는 집을 소득으로 환산하지 않는다. 일부 복지 급여에서 재산의 커트라인을 설정해 탈락시킬 뿐”이라며 “공시가격이 오르면 재산공제도 같이 올리는 게 맞다. 공시가격에 재산공제를 연동해 자동적으로 올리고 세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증세원 생활보장팀장도 “최근 몇 년 새 수도권의 집값이 많이 올랐다. 공시가격만 올리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초연금 수급자의 63%가 주택을 갖고 있고 이 중 97%가 3억원 이하이다. 기초생보 생계급여 수급자의 10%만 부동산이 있고 저가이어서 공시가격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건강보험 피부양자도 1만8000명 탈락한다. 지금은 ①연소득이 3400만원 넘거나 ②재산(과세표준 기준)이 5억4000만~9억원에 연소득이 1000만원 넘거나③재산이 9억원 초과하면 탈락한다. 독일은 배우자와 자녀만 피부양자가 된다. 다만 재산은 안 따진다. 대만·일본 등도 재산을 거의 안 본다. 우리는 일부 형제를 인정할 정도로 후하다. 그래서 피부양자 범위를 좁히고 소득 기준을 강화하는 개혁을 진행 중이다. 집 때문에 탈락하는 건 국제 흐름이나 개혁 방향에 맞지 않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소득 변화가 없는데 공시가격만 올라 피부양자에서 탈락하게 두지 말고, 공시가격 변동에 맞춰 피부양자 재산 기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에 지역건보 가입자의 재산과표를 500만원 공제한다. 그래도 127만 세대의 건보료가 오른다. 세종시 새롬동에 사는 박모(68)씨는 “재산세가 100만원에서 237만원으로 오르는데 건강보험료(25만원) 등에 영향을 받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은 “부동산 시장이 출렁일 때마다 건보료가 춤추는데, 재산 건보료를 하루빨리 없애고 소득 중심으로 가야 한다. 500만원 공제는 ‘코끼리한테 비스킷 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 원장은 “국세청이 맘만 먹으면 소득을 파악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민효상 연구위원은 “2018년 재산 건보료를 줄이고 소득 위주 부과체계로 개혁을 시작했다. 공시가격 인상에 따라 건보료가 오르고 복지 급여 대상자가 탈락하는 것은 개혁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