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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성향 테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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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중앙일보 4·7 재·보궐 선거 페이지에 오픈한 정치성향 테스트에 지난 12일~23일 참여한 수십만명의 평균적 성향은 ‘중도’였다. 현안에 대한 입장을 4지 선다로 묻는 15개 질문을 던져 10점 척도로 보여준 결과다. 통계적 의미는 제한적이나 그 결과 드러난 중도 쏠림 현상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0~45%가 스스로를 중도로 분류한다는 결과와도 다르지 않다.

‘중간’이라는 답이 없는 4지 선다에서 중도(4~6점)가 되려면 질문마다 ‘다소’ ‘별로’ ‘대체로’ 등의 부사어가 달린 답을 택해야 한다. 속도 조절, 점진적 변화, 절충과 타협, 통합과 상식 등과 통하는 답들이다.

노트북을 열며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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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기마다 부풀어 오르는 중도층을 보고 깃발을 들었던 정치세력은 늘 있었다. 이른바 제3지대 중도 정당이다. 민주화 이후 DJ(김대중 전대통령)와 YS(김영삼 전 대통령) 분열에 반발해 태어난 한겨레민주당(1987년), 정주영의 통일국민당(1992년), 정몽준의 국민통합21(2002년), 문국현의 창조한국당(2007년), 안철수의 국민의당(2016년)과 그 뒤를 이은 손학규의 바른미래당 등이 명멸했다. 이중 총선에서 다수가 된 정당이나 대통령이 된 인물은 없다. 선거는 늘 거대 정당의 진영 결집 대결로 끝났고 중도층은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23일엔 서울시장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패했다.

신기루 잦은 그 사막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뚜벅뚜벅 들어가고 있다. 101세의 현자에게 “제가 정치해도 될까요”라고 물으면서다. 현자는 중도의 길을 주문한다. “지금 여권에서 꺼내는 이야기는 국민 상식과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내 편은 정의고,네 편은 정의가 아니다. 이런 이분법이 만연해 있죠.” 그가 당장 국민의힘에 결합하는 길보단 제3지대를 선호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과연 윤 전 총장은 제3지대에서 성공한 첫 정치인이 될 수 있을까. 정치성향 테스트와 여론조사는 그 가능성에 서광을 비추는 듯하다. 하지만 일교차가 크고 모래폭풍을 예측할 수 없는 게 사막이다. 무엇보다 큰 난관은 특수부 검사라는 그의 체질이다. 십수년간 취재 현장에서 만난 다수 특수통들의 세계관은 선과 악의 이분법 그 자체다. 대개 이런 식이다. ‘기업가는 잠재적 범죄자이고 털면 배임은 나온다. 특수수사는 시장의 자유와 공정을 지키는 보루다. 구속은 자백의 지름길이며 검사의 언론 플레이는 정당한 여론 형성이지 피의사실 공표가 아니다.’ 두 전직 대통령과 전직 대법원장, 글로벌 기업의 총수를 감옥에 보내는 과정에서 윤 전 총장은 그 세계관의 정수를 선보였다. 그런 그가 중도층의 언어·정서·욕망과 교감할 수 있을까. 곧 시험대에 오른다.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