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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법원, 첫 유죄 판결…이민걸·이규진 집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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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서 첫 유죄판결이 나왔다.

1심 “재판에 개입한 혐의 인정돼”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부장 윤종섭)가 박선숙·김수민 전 국민의당 의원 정치자금법 사건 등의 재판부 동향을 파악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이민걸(60·사법연수원 17기) 전 대법원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다. 이규진(59·18기)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등에 개입한 혐의가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반면에 통합진보당 의원 사건과 관련해 함께 재판에 넘겨진 방창현(48·28기)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와 심상철(64·11기) 전 서울고등법원장은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이 전 실장이 2016년 10~11월 서울서부지법의 한 기획법관을 통해 국민의당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법 사건 재판과 관련해 보석 허가 여부 등 재판부의 심증을 보고받은 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민걸 전 실장은 주심 판사에게 관련 사건의 보석 허가 여부와 심증을 확인해 보고하라는 위법·부당한 지시를 했다”며 “재판의 공정성에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범행”이라고 밝혔다.

이규진 전 양형위원도 광주지법 등 두 건의 재판 결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나 유죄가 인정됐다.

임종헌 전 차장은 2017년 2월 13일 법원행정처가 법원 내부망에 올린 ‘전문 분야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 조치’에도 관련돼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장 윤종섭, 중앙지법에 6년째 유임 … 김명수 ‘코드인사’ 논란

재판부는 이 조치가 임종헌 전 차장의 지시에 따라 사법부 정책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와 내부 소모임인 ‘인사모’를 와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선고의 핵심은 양승태 대법원의 컨트롤타워였던 법원행정처의 권한과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에 있었다. 이 전 실장은 2015년 8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으로 있으면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밑에서 일했다. 재판부는 양승태 대법원의 컨트롤타워였던 법원행정처가 내린 일련의 지시를 사법행정권 재량으로 볼지, 재판 개입으로 볼 것이냐 사이에서 재판 개입으로 봤다. 이에 따라 임 전 차장 재판은 물론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재판부도 양형 사유에서 “이 전 실장 등은 개인적 이익을 추구한 게 아니라 최종 의사결정권자였던 임종헌 전 차장의 지시를 따랐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이날 법정에선 임종헌 전 차장의 이름이 50여 차례나 등장했다. 그 때문에 이번 재판은 ‘사법농단’ 혐의로 함께 기소된 임종헌 전 차장의 예선전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전 실장은 지난달 28일 판사 연임을 포기해 자연인 신분으로 이날 재판에 참석했다. 항소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전 실장은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윤 재판장은 올해 법원 정기 인사에서 서울중앙지법에 6년째 유임돼 주목을 받았다. 전례없는 장기 유임을 놓고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해 강경한 입장이 김명수 대법원장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란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유정·김수민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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