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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고무줄 공시가격 산정, 세금 불복 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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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021년 전국 시도별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안). [자료=국토교통부]

2021년 전국 시도별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안). [자료=국토교통부]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둘러싼 불신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집값 하락(-1.95%)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시가격이 올라(1.72%) 전면 재조사 요구가 터져나온 제주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주민 집단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 평균 19.08% 급등해 당장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부담이 크게 늘어난 탓도 있지만 '고무줄' 공시가격 사례가 속출하면서 신뢰가 무너진 게 큰 이유다.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의 경우처럼 같은 층 같은 면적의 두 가구 공시가격이 다르게 매겨진 게 대표적이다. 인근 부동산이 매긴 시세가 똑같은데도 두 집의 올해 공시가는 각각 8억9100만원과 9억1000만원으로 갈려, 한 집만 종부세 부과 대상(9억원 이상)이 됐다. 특히 전국 최고 상승률(70.68%)을 기록한 세종에서는 다양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세종 호려울마을 7단지는 1~2건에 불과한 실거래 건수를 그대로 반영한 탓에 공시가가 무려 133% 올라 주민들이 집단으로 이의신청에 나섰다. 이 지역 새뜸마을 14단지에서는 같은 아파트인데도 지난해 공시가격이 낮았던 윗집이 더 올라 결국 올해 윗집만 종부세를 내게 됐다.
문제는 불투명한 산출 근거다. 정부는 "시세 변동을 정확하게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각종 부동산 정책 통계의 기본으로 삼는 한국부동산원이 내놓은 지난해 서울 집값 상승률(3.01%)만 봐도 이번 공시가격 상승률(19.91%)과 큰 격차를 보인다. 이러니 정부 통계를 신뢰하기 어렵다. "공시가격은 '횟집 시가'(내 맘대로 가격 매기기)나 다름없을 정도로 투명성·전문성·중립성이 떨어진다"(정수연 제주도공시가격검증센터장), "엿장수 맘대로인 불공정 기준이자 가렴주구"(조은희 서초구청장)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공시가격 불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7년엔 한 시민이 표준지(땅) 공시가격이 적법하게 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기한 공시가격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불신이 단순한 의혹 차원을 넘어 합당한 근거가 있다는 걸 법원이 확인해준 바 있다. 2019년엔 서울 성수동의 한 단지 내 230가구 전체의 공시가격이 정정되는 초유의 사태로 불신은 더 깊어졌다. 당초 급등했던 이 단지 공시가격은 주민들의 집단 이의신청 후 오히려 전년보다 떨어지는 고무줄 산정으로 불신을 자초했다.
공시가격은 세금과 건강보험료 부과의 기준이 될 뿐 아니라 기초연금 등 각종 복지 자격 선정에 직결되는 만큼 산출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매년 오류가 반복되는데도 명쾌한 근거를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는 다음 달 참고 자료를 공개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얼렁뚱땅 넘길 생각은 말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상세한 자료를 내놓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조세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